┃공정별 전력사용량 상위권
┃생산 늘수록 탄소배출 증가 악순환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소위 ‘클린룸’으로 불리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은 말 그대로 한 톨의 먼지조차 용납이 안 되는 공간이다. 그런 까닭에 상당수 산업계가 열 올리는 친환경 공정 구축에서 반도체 등의 사업장은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들 업계 역시 탄소배출 감소를 주요 과제로 안고 있다. 전력 사용량이 워낙 큰 탓에 ‘간접 배출’하는 탄소의 규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은 탄소배출 저감 기술 등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 중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구조적 한계가 있어 개선방안에 관한 보다 큰 틀의 논의가 요구된다.
‘환경’과 ‘경제’…반도체의 딜레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반도체·디스플레이가 한국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무역협회,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등에 따르면 반도체의 경우 지난해 국내 총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3%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예년에 비해서는 낮은 수치다. 통상적으로 반도체가 차지하는 국내 총 수출액 비중은 20% 내외를 기록해 왔다.
정부는 최근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 발생량과 흡수량을 일치시킴으로써 오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사실상 제로(0)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철강, 석유화학 등 이른바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주요 수출 품목인 우리의 수출 구조를 감안하면 사실 버거운 일이다. 다만 기후위기 대응이 당장의 글로벌 과제로 떠오른 만큼 불가피한 조치인 게 사실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은 반도체 등 산업의 크기만큼이나 해당 사업장의 탄소배출량이 여느 업종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많다. 철강 등 소위 굴뚝산업처럼 탄소를 직접 배출하진 않지만, 생산 과정에 상당 수준의 전력을 소모함으로써 간접 배출하는 탄소 규모가 크다. 아울러 생산 시 투입되는 화학물질이 대기를 타고 날아가 유발시키는 탄소량도 적지 않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발간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현황과 중장기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8년 국내 반도체 사업장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700만 톤으로 나타났다. 2015년 약 1200만 톤에서 500만 톤이나 급증한 것이다. 같은 기간 디스플레이 사업장에서 발생시킨 양도 약 1200만 톤 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약 7억2000만 톤이었다. 이에 비춰보면 두 업계가 이 기간 내뿜은 온실가스 비중은 국내 전체 탄소량의 약 4% 수준이다. 언뜻 비중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사업장 별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환경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 제출한 ‘2015~2019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30대 기업’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해당 통계에는 LG디스플레이(735만 톤·14위), 삼성전자(670만 톤·17위), 삼성디스플레이(510만 톤·21위)가 명단에 올랐다. 이들을 제외한 27개 기업들 전부는 철강과 발전·에너지 및 정유화학·폐기물 등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는 업종이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다.
환경 기술 R&D 뒤따라야
자료:환경부 및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장혜영의원실 재가공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형태는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유형별로 보면 ▲생산에서 필요한 전기 사용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직접 배출’ ▲생산 공정에서 이용되는 과불화탄소(PFCs)와 수소불화탄소(HFCs) 등 화학물질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면서 발생하는 ‘공정 배출’이다.
이 중 직접 배출량은 전체의 5% 미만이고 공정 배출은 약 30%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60~70%는 간접 배출로 추정된다. 이는 연구원과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결국 제품을 생산할 때 전력의 효율을 높이든지 혹은 사용을 아예 줄여 간접 배출을 완화시켜야 한다. 또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통해 공정 배출을 완화하는 방안도 수반돼야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당장 이를 해결할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은 문제다. 현실적으로 기존의 설비를 전력 효율의 조정이 가능한 장치로 교체할 수 없는 데다,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 배출 또한 제로 상태로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할 때 신규투자가 이뤄지면 필연적으로 탄소 배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이 뒤따른다.
반도체 기업의 한 관계자는 “생산이 늘면 자연히 전력 사용량 또한 증가하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나마 각종 탄소배출 저감장치를 통해 공정 배출은 완화해 나가는 추세”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단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은 현재로선 없기 때문에 반도체 성장과 탄소배출 각각의 곡선은 당분간 반비례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반도체 산업 등의 탄소배출을 완화하는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중장기적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손을 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R&D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력 생산 증가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지속적인 온실가스 감축은 현재 시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인 R&D, 고효율 저감장치 도입을 위한 인센티브 구조 확립, 복합적인 환경오염 배출 규제 정비 등이 두루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저감장치 설치를 위한 비용 보존을 포함해 도입설비 운용에 따른 생산 비용 증가에 대해서도 보조금 지급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환경오염을 완벽히 배제할 수 있는 생산방식이 불가능하다면 발생하는 환경오염물질을 산업별로 복합적으로 고려해 관리하는 접근도 요구된다”고 부연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전사 차원의 재생에너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내외 재생에너지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SK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신규 공장과 주요 사업장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 설비도 점진적으로 늘려가고 있다”며 “에너지 누수를 막고자 사업장 내 에너지 사용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데에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