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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깊어진 SK이노베이션, 합의 나설까

얻을 것 없는 배터리 소송 장기전…책임론 부각
  • 서울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 (사진 연합)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10일(현지시각) 내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결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줬다. ITC는 LG에너지솔루션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가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며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을 명령한 상태다.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결국 SK에게는 항소 등 법적 절차를 계속 밟거나 LG와 협상으로 사태를 조기 매듭짓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ITC의 판결을 계기로 양사간 협상의 계기가 마련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美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모든 상황은 당연히 SK에게 유리하지 않다. 소송전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결과를 위해 또 다시 장기전을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한 거래선 이탈 위험성이 크다. 또 잘 나가는 한국 배터리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LG와 협상을 했을 경우 거액의 합의금(2조 원대 예상)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 SK는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이 마지막 카드로 남아 있기는 하다. 우선 SK는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는 기간 동안 협상을 끝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60일 간 ITC 결정을 검토한 후 정책상의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을 발동하지 않으면 ‘10년 수입금지’ 등의 명령은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결국 앞으로 두 달이 SK가 어느 정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일단 업계는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카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2013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있었다.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를 침해했다며 애플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한 ITC의 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문제는 최근 10년간 600여 건의 ITC 소송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이 한 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특히 ITC가 포드 등 미국 기업의 보호를 위해 유예기간을 둔 점도 거부권 행사의 명분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SK 거래처인 독일 폭스바겐과 미국 포드는 각각 2년과 4년의 유예기간을 받아 그 안에 대체 공급사를 찾을 수 있는 여지를 줬다.

ITC 최종결정 직후 포드와 폭스바겐 모두 SK에 빠른 합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서 “두 공급사(LG와 SK)가 자발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미국 제조사와 노동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폭스바겐도 입장문에서 “궁극적으로는 두 공급사가 법정 밖에서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나마 미국 조지아주지사가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는 정도다.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지난 12일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LG와 SK에 대한 ITC 분쟁 판정 결과를 뒤집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켐프 주지사는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 때문에 조지아에서 진행되는 SK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건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거부권 행사를 언급했다. 특히 ITC의 최근 결정은 SK의 2600개 청정에너지 일자리와 혁신적인 제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강조하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도 집권 초기 일자리 문제에 예민할 수 있어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의 회장 취임하는 최태원 회장이 풀까?

국내 여론도 지속적으로 SK를 압박하고 있다. SK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SK이노베이션 경영진이 ITC 소송전을 무리하게 주도했다가 결국 참패하면서 거액의 합의금, 사업 차질, 글로벌 경쟁력 상실 등을 초래했다는 점은 SK그룹 내부에서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도 따가운 시선이 향하고 있다. 재계는 지난해 2월 예비 판정이 나왔을 때 SK가 합의를 도출했다면 최악의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비 판정이 최종 판정에서 바뀐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최 회장의 결단이 아쉬웠던 상황이다.

더욱이 최 회장이 오는 3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공식 취임해 재계의 새로운 수장을 맡게 되는 상황도 변수다. SK그룹 내 문제를 떠나서 국내 관련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대한상의 회장으로서의 책임감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결국 SK의 배터리 문제가 장기화되는 것은 최 회장에게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소송전 사태가 장기화되면 LG와 SK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것”이라며 “이미 중국과는 선두 자리를 놓고 매번 경쟁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 기업들까지 재정비를 하고 경쟁 대열에 합류한다면 이렇게 국내 기업 간 장기전을 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도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승소한 LG에너지솔루션과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은 전혀 다른 중간지대를 찾아 양자가 다 이긴 상황으로 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며 “두 회사가 서로에게 지불하지 않는 중단 합의를 하고 공동으로 출자한 배터리 재단 및 펀드를 만드는 걸 제안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8일 예정됐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최고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국전지산업협회 정기이사회 개최가 무산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이 크지만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여파로 이사회 개최가 무산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song@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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