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소송부터 현대차-LG 합의까지 뜨거운 ‘막전막후’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 (사진=연합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기차용 배터리 1위 자리가 LG에너지솔루션에서 중국 CATL로 다시 넘어갔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SNE리서치가 지난 1월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CATL이 점유율 31.2%를 차지하며 1위에 등극한 것이다. 최근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 LG와 CATL은 1~2위를 번갈아 차지하면서 순위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는 LG가, 9월부터 11월까지는 CATL이 점유율 1위였다. 그러다 12월에는 LG가 CATL을 다시 앞질렀다. 단순히 선의의 경쟁으로 볼 수도 있지만 LG와 SK이노베이션의 소송 전 등 계속되는 국내 기업 간 갈등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LG, 견고한 성장세 속 계속되는 악재

LG의 전기차용 배터리는 실적으로만 보면 여전히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SK와의 배터리 소송전이 장기화되고 있고 최근에는 현대자동차 코나EV의 화재 이슈까지 겹쳐 대내외적으로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까지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칫 ‘K 배터리’ 전체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내린 LG와 SK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결정에서 LG의 손을 들어줬다. ITC는 LG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SK 배터리 셀,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가 미국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며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을 명령한 상태다.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LG의 압승이었다. 하지만 LG의 분위기가 밝아 보이지 않는다. SK와의 소송전이 장기화되는 데다 현대차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들어갈 3차 배터리 공급사로 SK와 함께 CATL을 선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전기차 3종의 화재 이슈에 따른 리콜 조치를 기점으로 LG 경쟁사의 배터리 물량을 대대적으로 확대함에 따라 20년 가까운 양사의 유대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현대차 입장에서 전기차 사업 부문의 지속적인 확대에 따른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공급처 다각화’ 정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배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현대차와 LG가 1조 원에 달하는 리콜 비용 분담에 비교적 빠르게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차와 LG의 분담비율은 3대7 수준으로, 현대차는 4200여억 원을, LG는 9800여억 원을 리콜 비용으로 분담키로 했는데 LG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도 이번 리콜 분담 합의에 속도를 낸 배경이야말로 향후 현대차와 LG의 동맹 관계가 변함없다는 시그널”이라고 평가했다.

SK “사법 절차 대응 미흡”…영업비밀 침해 인정 안 해

LG와 SK의 ‘배터리 전쟁’은 장기화 국면에 들어섰다.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결과가 나왔음에도 양사의 싸움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ITC 최종결정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양사가 조속히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모든 상황이 SK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추가 소송전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결과를 위해 또 다시 장기전을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한 거래선 이탈 위험성이 크다. 또 잘 나가는 한국 배터리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국내 여론이 곱지 않았다. 물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이 마지막 카드로 남아 있지만 업계는 이 카드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도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승소한 LG와 패소한 SK는 전혀 다른 중간지대를 찾아 양사가 다 이긴 상황으로 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며 “두 회사가 서로에게 지불하지 않는 중단 합의를 하고 공동으로 출자한 배터리 재단 및 펀드를 만드는 걸 제안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ITC가 지난 5일 최종 의견서를 공개하면서 상황이 다시 격해지고 있다. ITC는 “SK는 정기적인 관행이라는 변명으로 노골적으로 악의를 갖고 문서를 삭제하고 은폐를 시도했다”며 “SK가 LG의 22개 영업비밀 침해 없이는 제품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데 10년이 걸릴 것으로 판단, 미국 수입금지 조치 기간을 10년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SK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ITC는 LG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을 실체적으로 검증한 적이 없고 문서 삭제 등 절차적 흠결을 근거로 내린 결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최우석 대표감사위원은 11일 개최한 감사위원회에서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사업을 더욱 확대해 가야 하는 시점에서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글로벌 기준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업비밀 침해가 아니라 미국의 사법 절차 대응 소홀이 원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LG “은폐 인정이 합의의 시작”…양사 갈등 장기화 국면

LG도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LG는 11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공신력 있는 미국 ITC에서 배터리 전 영역에 걸쳐 영업비밀을 통째로 훔쳐간 것이 확실하다고 최종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식의 차이가 아쉽다”며 “증거를 인멸하고 삭제하고 은폐한 측에서 이러한 결정을 인정하는 것이 합의의 시작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사의 배터리 전쟁은 다음달 10일(결정일로부터 60일)이 시한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SK에 대한 ITC의 ‘10년 간 미국 내 수입 금지’ 결정은 그대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면 ITC 결정은 전면 무효화된다.

전자의 경우 SK의 미국 항소법원을 통한 항소, 후자의 경우 양사의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민사 소송이 개시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온다 해도 양사는 추가 소송전에 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