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관계 충돌 없는 환경 문제보다 지배구조 해결이 우선

지배구조는 ESG 경영의 지속 가능성에 가장 필요한 요소다.(사진=유토이미지)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의 열기가 실로 뜨겁다. 2021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신년 경영계획에 ESG가 빠지면 뭔가 이단아의 느낌마저 든다. 로펌들도 너도나도 ESG 워킹그룹을 결성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10여년 전 탄소배출권과 기업의 사회공헌(CSR)이 휩쓸었던 기업의 ‘비영리활동’에 대한 갈증을 ESG라는 키워드가 넘치게 채우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공허하다. 분명히 환경, 사회, 지배구조(거버넌스)를 의미하는 ESG인데, 눈에 보이는 구호들은 E(환경)에 관한 것뿐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친환경 제품과 재활용과 같이 초등학교에서도 이미 충실히 배우고 있는 논의가 마치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처럼 쏟아져 나온다. 21대 국회가 ESG 관련 법안이라고 내어 놓은 13개 법안조차 환경에 관한 것뿐이다. 물론 전 지구의 생존을 위해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유행하는 ‘ESG’라는 말이 있다면, 2천년 전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었다.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사람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먼 데 보지 말고 자신과 가까운 곳부터 잘 챙기라는 말이다. 기업이 물론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도 다해야겠지만, 자신의 집안 문제라고 할 수 있는 G(거버넌스) 문제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가 S(사회)의 문제나 E(천하)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SG의 기본은 ‘G’다. 순서를 따진다면 GSE라고 불러야 한다. 왜 ESG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기업 안의 의사결정구조를 의미하는 거버넌스다. 합리적인 기업 거버넌스,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회사는, 잠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증명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기업공개를 한 대기업조차도 개인 대주주 한 명의 의사에 따라 중요한 기업의 경영상 결정이 좌우되고 이사회의 100% 동의를 거쳐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자산과 인력이 투입되는 위험한 기업 거버넌스를 갖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기업은 위험하다. 이런 기업이 많은 경제와 사회는 위험하다. 이런 기업이 많은 사회에서 환경 문제는 뒷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집안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주주들과 임직원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의사결정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회사가, 집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문제나 심지어는 전 지구의 동식물과 무생물에 관한 환경 문제 해결을 강조한다면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ESG를 외치면서 온통 천하의 환경 문제만 강조하는 것은 혹시 집안의 수신제가 문제에서 세간의 시선을 돌리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환경 문제는 곧바로 결과가 보이는 것도 아닌데, 곧바로 회사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업 거버넌스 문제부터 실행하는 것이 어떨까.

올바른 기업 거버넌스의 실행은 정말 쉽다. 일단 바뀐 법을 충실히, 그 취지에 맞춰 이행하면 된다. 지난해 개정된 상법에 따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 회사는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감사위원회 위원 1명을 선임해야 하고, 내년 7월까지는 여성 1명 이상을 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이렇게 개정된 상법의 취지는 분명하다. 개인 대주주가 관여하지 않는 사람으로 독립적인 감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남성으로 편중된 이사회를 조금이라도 다양하게 구성해 경영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견제의 역할을 하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분을 모셔서 독립적인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할지, 어디에서 훌륭한 여성 이사를 모실지 테스크포스(TF)를 짜서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회사가 이러한 분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한 명, 여성 이사 한 명조차도 어떻게든 대주주에게 우호적인 사람을 선임하려고 애를 쓴다면 이 회사가 과연 사회적 책임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아마도 ESG가 자꾸 환경에 관한 구호만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은, 환경은 누구의 이해관계도 크게 해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 문제는 그것보다 더 누군가와의 이해관계에 영향이 있을 것이니 조심스럽게만 소리를 내고, 기업 거버넌스 문제는 훨씬 첨예한 이해관계를 다뤄야 하니 섣불리 구호를 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제 기업들이 ‘수신제가’를 먼저 하고 ‘치국평천하’에 나서 주기를 기대한다. 탄소배출권, 기후금융 지지선언, 탈석탄, 탄소중립, 그린뉴딜 등도 좋다. 하지만 제왕적 기업의 거버넌스 탈피, 부실 이사회 운영기업 반대, 과소 배당 회사에 대한 투자 금지선언, 과다 연봉 경영진 퇴출 등과 같은 거버넌스 구호를 먼저 듣고 싶다. 주주와 임직원은 회사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재산권은 물론 삶이 좌우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가까운 사람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서, 협력업체들과의 상생도 외치며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하나뿐인 지구에서 모두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ESG의 거센 바람에 잊혀진 G를 띄워본다. 전세계적인 양적 완화와 갈데 없는 돈으로 만들어진 KOSPI 3000 시대에 잊혀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다시 상기시켜 본다. ESG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 G는 필수 중에 필수다.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네이버보다 높은 70조 원이 넘는 기업가치로 기업을 공개했다.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 받는 직접적인 이유는 한국회사들이 사회문제에 소홀하고 환경문제를 등한시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 것이다. 불투명하고 예측가능성이 낮으며 개인 대주주 위주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G부터 시작하자. 그러면 진정한 S도, E도 우러나올 것이다.




천준범 변호사 test@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