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각형 배터리 자체생산’ 선언 일파만파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까지 배터리 자체 생산 확대를 선언함에 따라 K-배터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사진=연합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최근 독일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이 2025년까지 세계 1위 전기차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테슬라에 이어 지난해 전기차 판매 2위를 기록한 폭스바겐의 포부다 보니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문제는 앞으로 폭스바겐이 생산하는 전기차에 주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각형 배터리를 탑재한다고 선언해 국내 배터리업계에 충격파가 크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지난 15일(현지 시간) 진행한 ‘파워 데이’ 행사에서 2030년까지 생산하는 전기차의 80%에 각기둥 모양(prismatic) 배터리셀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이어졌다. 폭스바겐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파우치형’ 주력하는 K-배터리 직격탄 맞아

이는 완성차 기업인 폭스바겐이 ‘배터리 독립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그동안 전기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를 외부 공급에 의존해왔다. 따라서 그에 따른 리스크 해소를 놓고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 편중된 배터리 공급망에 의존해서는 미래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2020년 주요국 전기동력차 보급현황과 주요 정책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테슬라가 44만2334대를 판매해 전년에 이어 1위를 유지했다. 폭스바겐그룹은 전년 대비 211.1% 증가한 38만1406대를 판매하며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22만1116대를 판매한 GM그룹, 4위는 19만8487대를 판매한 현대자동차그룹이 차지했다.

특히 폭스바겐의 전기차 판매 증가폭이 놀라운 수준이다. 지난해 판매량의 두 배가 넘는 100만 대의 전기차를 올해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폭스바겐의 야심찬 계획이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폭스바겐의 전기차 판매가 급증할수록 전기차 배터리의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요 고객인 폭스바겐을 대상으로 한 배터리 공급망이 차질을 빚게 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까지 배터리 자체 생산 확대를 선언함에 따라 K-배터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우선 LG와 SK가 당장 각형 배터리를 새로 만들지 않는 이상 매출 감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폭스바겐의 첫 번째 배터리 공장은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와의 합작을 통해 2023년 가동되기 때문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대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바 있는 제네럴모터스(GM)도 신규 배터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GM이 현재 개발 중인 리튬메탈배터리의 프로토타입 모델을 공개한 것이다. 이는 GM이 2015년 미국 배터리 개발업체인 솔리드에너지시스템즈(SES)에 투자를 결정한 결과물로, 이번에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한 상용화 시기는 가늠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마크 로이스 GM 사장은 지난 11일 열린 라이브 가상 콘퍼런스에서 “가격과 범위는 전기차를 대량으로 판매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벽”이라며 “이번 프로토타입 출시로 에너지 밀도와 비용적인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기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자체적인 배터리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이다. 폭스바겐처럼 독자 노선을 구체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기술개발에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GM의 경우에도 오히려 LG에너지솔루션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미 양사는 미국 오하이오주에 35GWh 규모 1공장을 건설 중이다. 올해 상반기 안으로 2공장 부지를 확정해 투자에 나선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 합작공장과 별도로 미국에 단독 투자도 진행한다. 2025년까지 5조 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만 독자적으로 70GWh 이상 배터리 생산 능력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관건은 각형 vs 파우치형이 아닌 차별화된 기술력

이상민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장은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를 선택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자체 생산이 가능한 노스볼트와의 합작을 통해 준비했던 부분이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며 “특히 각형 배터리에 주력하는 CATL을 통해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이 폭스바겐에 공급하는 물량이 워낙 많아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지만 이미 국내 기업들은 폭스바겐과 장기 물량 공급을 체결한 상황이고 폭스바겐 외의 다른 완성차 기업들이 모두 각형 배터리로 표준화를 시도할 것이냐 하는 측면도 다소 이른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은 관건은 기술력이 좌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배터리 자체 생산에 대해서는 시간의 문제일 뿐 서서히 기업들의 선언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소재 기술이든 디바이스 기술이든 차별화된 배터리 기술을 내놓고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그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각형 배터리의 부각으로 파우치형 배터리가 주류에서 밀려났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파우치형, 각형, 원통형 등이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최근 전기차 화재 이슈 때문에 파우치형에 대한 불신이 다소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배터리 플랫폼에는 장단점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각형 배터리에 주력하고 있는 삼성SDI의 경우 폭스바겐 공급 물량은 적지만 오히려 수혜 기업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실제로 삼성SDI는 헝가리 공장을 통해 생산 시설을 확충해 놓은 상황이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생산은 규모의 경제이고 생산설비 전환에 따른 공백이 최소화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당장 삼성SDI가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LG와 SK의 배터리 장외투쟁이 지속되는 것도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 형태가 어느 하나로 통일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고 차세대 배터리도 지속적으로 개발되기 때문에 완성차 기업이 됐든 배터리 기업이 됐든 결국 배터리 기술력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