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꿈의 배터리’ 기술 경쟁적으로 공개

전기차 배터리 생산설비.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를 대체하는 시기가 급속히 앞당겨질 가능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그 가능성의 전제 속에는 항상 배터리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배터리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도 배터리의 자체생산을 선언했다.

배터리 기술력이 전기차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전략에 기반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경쟁력은 얼마나 빨리 충전이 되고 충전 후 얼마나 멀리 주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또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등장하게 되면서 자동차의 이동수단 이상의 역할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잇따른 ‘차세대 배터리’…중국 내에서도 의문

현재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K-배터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 위상을 자랑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배터리 3사의 세계시장 점유율 합계는 2019년 16%에서 지난해 34.7%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중국의 견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은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놓치지 않고 국내업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중국 전기차 생산 기업들도 배터리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자칫 주도권을 중국에 뺏길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국 자동차기업 광저우자동차는 최근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인 ‘그래핀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아이언V’가 테스트 단계에 돌입했다고 발표했다. 광저우차는 아이언V가 오는 9월부터 양산을 시작하며 해당 배터리는 8분 만에 80% 급속충전이 가능하고 한번 완충으로 1000㎞를 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 니오도 차세대 배터리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니오는 연초 열린 니오데이에서 새로운 배터리 기술을 공개한 바 있다. 유럽 연비측정 기준(NEDC)으로 1회 충전 시 1000㎞ 이상 주행할 수 있는 150㎾h 배터리팩을 소개한 것이다. 니오는 이날 공개한 고급 전기 세단 ‘ET7’에 전고체 배터리팩 기술을 오는 4분기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이번 발표는 중국에서도 실현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어우양밍가오 중국 과학원 원사는 전기차 100인회 포럼에서 “(전기차 배터리의) 주행거리, 충전시간, 안전성 등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며 “아직까지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감소하는 등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주행거리에 연연하지 않고 배터리 성능과 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배터리 업계 전문가들도 광저우차와 니오의 배터리는 모두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로 꼽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당장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아무리 빨라도 4~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바로 중국 내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전기를 다 쓴 배터리를 미리 충전된 다른 배터리로 바꿔 끼는 방식의 전기차 사업을 공개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이런 배터리 교환 방식의 전기차 사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어 향후 배터리 교체식 전기차가 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정용 전력 등 전기차 배터리의 새로운 역할 부각

일단 전기차 배터리의 충전시간과 주행거리의 획기적인 진화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의 상용화라는 기술적 한계를 얼마나 빨리 극복하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무엇보다 충전시간과 주행거리 이상으로 중요한 안전성과 충전 인프라 구축 문제가 선결과제로 남아있다.

오히려 업계에서는 전기차에 탑재되는 고용량 구동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 및 에너지 운반체로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전기차 배터리의 새로운 역할’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에 불어 닥친 기습적 한파로 인한 전력 공급 차질 이후 ESS 및 에너지 운반체로서 전기차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텍사스 휴스턴 등에 위치한 400만 가구는 정전으로 난방설비 등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고 주민들은 자동차 공조장치 및 소형 발전기 등을 이용해 응급 상황에 대응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전기차에 탑재되는 고용량 배터리의 경우 가정에서 약 10일간 사용하는 전력을 저장할 수 있어 응급상황 전력공급 및 전력수급 안정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의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5의 배터리 용량은 72.6kWh이다. 서울시 가구당 일일 평균 전력 사용량 7.3kWh 기준으로 약 10일 간 가정에서 사용되는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 물론 100% 충전된 상태에서 완전 방전이 되는 기준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같은 수준의 전력량을 발휘할 수는 없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해 야외 등에서 전기기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V2L(Vehicle-to-Load), 정전 등의 상황에서 건물에 전력을 공급하는 V2H(Vehicle-to-Home)·V2B(Vehicle-to-Building), 전력망을 안정화하는 V2G(Vehicle-to-Grid) 등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이호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사용자의 비용과 편익 관점에서 볼 때 V2L, V2H 등은 단기 활성화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V2G의 경우 단기 활성화에는 장애요인이 존재한다”며 “전력회사 등이 V2G 참여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을 장려할 수 있지만 전기차 사용자의 비용을 모두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할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대신 향후 전기차 배터리 성능 등이 향상되고 배터리 구독경제 등 새로운 모델이 확산되면 ESS 및 에너지 운반체로서 전기차의 활용도는 점차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임연구원은 “배터리 밀도 및 전기차 에너지효율성 향상 등을 통해 주행거리 불안을 완화할 수 있고 충전시간 단축으로 ESS와 에너지 운반체에서 이동 수단으로 빠르게 전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