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vs 글로벌 IT 기업…OS 개발 놓고 파트너이자 경쟁자

현대자동차그룹 연구원들이 ‘커넥티드 카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술’을 자동차에서 테스트하는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으로 대변되는 미래자동차의 시대가 왔다. 기존 완성차가 유독 차체 디자인과 엔진 등 하드웨어를 중시했던 것과 달리 미래차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특히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애플이 현대차를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을 상대로 존재감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미래차의 두뇌사업이라 할 수 있는 운영체제(OS)에 강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품귀현상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의 중요성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확대 움직임에 따라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원래 차량용 반도체는 낮은 수익성으로 시장 주목도가 높지 않았지만 미래차 확대와 친환경차 수요 증가로 기존과는 다른 성장이 기대된다.

자동차 회사, 협업과 자체개발 ‘투 트랙 전략’

전기차를 선도해온 테슬라는 물론 기존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미래차 두뇌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IT 업계와 협업을 하는 동시에 자체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도요타 등은 자체 OS 플랫폼 개발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자동차 OS 시장은 2019년 45억 달러(약 5조1000억 원)에서 2026년 120억 달러(약 13조6000억 원)로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의 완성차 기업들조차 소프트웨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 두뇌 기능을 하는 차량용 반도체 수가 급증한 것에 기인한다.

보통 내연기관차에는 1대 당 200~300개 수준의 차량용 반도체가 탑재되지만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의 미래차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차랑용 반도체는 소프트웨어 연동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향후 미래차 시장의 패권 경쟁을 위해서는 OS 개발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완성차 기업들은 구글이나 애플, LG전자 등의 IT 기업들과의 협업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은 잠재적으로 미래차 시장에서 직접 자동차를 생산하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완성차 기업들에게는 협업 파트너인 동시에 경쟁사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생태계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완성차 기업들은 IT 업계와의 협업과 자체 개발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래의 경쟁사에게 의존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승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OS 및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소프트웨어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표준화한 기업이 미래차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기차 및 자율주행 시스템은 스마트폰처럼 소수의 플랫폼으로 정리될 것이고, 이는 표준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표준 전략이 있어야만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미래 자동차 관련 투 트랙 전략(협업·자체 개발)과 전기차 관련 경쟁력을 보유한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등이 미래차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IT 3사가 다음 달 합병키로 하면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표방하는 미래 모빌리티 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는 구글, 애플 등 글로벌 선두 IT 기업에 대응하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현대차그룹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 전용 플랫폼 개발도 OS 최적화 노린 승부수

현대차그룹은 IT 계열사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오트론을 통합해 OS 자체 개발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 통합 법인은 미래차의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은 물론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스마트시티 등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사업 부문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정보통신 기술과 자동차를 연결시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커넥티드카 확대에 따른 위탁 사업도 가능하다.

이미 지난해 11월에는 인공지능(AI) 컴퓨팅 기술 선도기업인 미국 엔비디아와 손잡고 내년까지 현대차·기아·제네시스 브랜드 전 차량에 AI를 기반으로 한 커넥티드카 운영체제(ccOS)를 도입키로 했다. ccOS는 전화와 내비게이션은 물론 뉴스나 날씨, 교통정보 등 자율주행 시대를 겨냥한 고급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가 지난해 출시한 GV80과 G80 신모델은 이미 ccOS가 탑재됐다.

해외 완성차 기업들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차세대 자동차 컴퓨팅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고 벤츠의 모회사 다임러그룹은 이미 2017년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엠비션을 설립했다. GM도 마이크로소프트(MS), 혼다와 협업하고 있다. MS는 지난 1월 혼다 등과 함께 GM의 자율주행차 자회사 크루즈에 20억 달러(약 2조2726억 원)의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특히 폭스바겐은 지난해 1월 소프트웨어 전문조직 카.소프트웨어(Car.Software)를 설립한 이후 전 차종에 적용될 운영체제 등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2025년까지 70억 유로(약 9조5000억 원)를 투입하고 기존 3000명 수준의 개발자 규모도 1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연구원은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이 가장 완성도 있는 전용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며 “GM, 도요타, 르노-닛산 등의 기업들은 배터리 시스템만 공용화하거나 내연기관에서 배터리만 하부에 장착한 플랫폼으로, 완성적인 전용 전기차 플랫폼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전용 전기차 플랫폼을 구축해야 완벽한 OS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차가 선보인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5를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연구원은 “현대차 아이오닉 5의 경우 E-GMP라는 배터리 바닥 배치 형태의 전용 플랫폼에 기반한 만큼 기존 내연기관이 가지고 있지 않던 상품성, 그리고 전기차가 추구하는 넓은 실내 공간과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차량 플랫폼에 배터리와 모터를 얹었던 기존 전기차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아이오닉 5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LG전자와 스위스 소프트웨어 기업 룩소프트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합작사 알루토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향후 LG 주요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 LG이노텍 등의 차량 분야와 밀착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글로벌 IT 기업의 경우 우월한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별개로 하드웨어 제조·생산 부문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반면 LG전자는 하드웨어 제조와 양산 능력에서도 특유의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향후 국내 미래차 시장 판세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