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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미래다] ‘박수통과’ 앞세워 주주발언 막는 주총, 이젠 OUT

  •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사진=연합 제공)
12월 결산법인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한창이다. 주총에 참석해 본 사람이라면 이른바 ‘박수 통과’라는 것을 한번쯤 경험한다. 의안에 대해 찬성과 제청 발언이 있었다는 이유로 표결 없이 원안 가결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부 주주가 바람을 잡고 다른 주주들의 박수를 유도한 뒤 주총 의장이 가결 의사봉을 두드린다 하여 흔히 ‘박수 통과’라 부른다.

예컨대 주총에 참석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 회사 측 지분율이 40%, 그 외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 등의 지분율이 30%라고 하자. 참석 주주의 과반 찬성이 필요한 의안이라면 사실상 부결될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박수 통과가 관행처럼 용인되는 것이다.

이런 박수 통과를 회사는 악용한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전횡을 비판하는 주주들의 입을 틀어막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회사 측을 두둔하는 주주들이 일조한다. 일부 기업들은 비판적 주주들에게 고함을 치고 막말을 퍼붓는 역할을 하는 ‘주총 선수’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2019년 3월 대한항공의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한번 보자. 이날 안건 중에는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대주주 일가는 이른바 ‘땅공 회항’과 ‘물컵 갑질’ 등 일련의 사건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었다. 기내 면세점 거래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여러 건의 위법 혐의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 등 국내외 자문사들은 기관투자자들에게 조 회장 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대한항공 지분 11.5%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해외 연기금 3곳은 일찌감치 반대의사를 밝힌 터였다.

당시 대한항공 정관상 이사선임 요건은 참석주주의 3분의 2(66.7%) 이상 찬성이었다. 분위기로 보면 조 회장의 이사 선임안은 부결될 가능성도 상당했다.

우기홍 대표이사 사장이 1호 의안(재무제표 승인)을 상정하자마자 시민단체 측 주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대주주 일가의 갑질과 전횡으로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는 등 실적 하락과 기업가치 훼손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회사의 대책을 요구하는 주장을 이어가자 일부 주주들이 “퇴장시키라”며 고성을 질렀다.

주총장이 소란해진 가운데 우 사장은 “원안 찬성 의견과 여러 주주의 제청이 있었기 때문에 제1호 안건이 가결됐음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반대 토론이 있다”는 주주들의 항의는 무시됐다. 2호 의안(정관 일부 변경)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통과됐다. 정관변경이 주주와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회사 측에서 먼저 설명해 달라는 주주들의 주장은 거부당했다.

이날 하이라이트인 3호 의안(조 회장 이사 재선임) 상정 직후 주주들은 앞서 질의한 내용에 대해 회사 측이 답변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함으로 맞불을 놓으며 회사 측 입장을 두둔하는 주주들 때문에 주총장이 어수선해지자 우 사장은 서둘러 표결에 붙였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그는 일부 안건의 박수 통과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했다. “주총 참석 표를 회사가 다 확인했고, 그래서 여기 있는 주주들이 찬성이나 반대를 하더라도 결과가 뒤집히지는 않는다.”

표결 결과가 뻔하면 비판 주주들의 발언을 차단하고 합당한 요구를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이날 대한항공 주총은 박수 통과를 빌미로 주주들의 입을 봉쇄하는 데 급급한 악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 현장이었다.

대한항공과 비교된 달라진 삼성전자 주총 현장

이런 점에서 보면, 올해 삼성전자 주총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높은 점수를 받을만 했다. 이 회사의 주총을 둘러싼 몇 가지 이슈와 논란을 한번 리뷰해 보자.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생중계를 동원한 온오프 주총에서 박수 통과가 사라졌다. 참석주주들에게 전자표결 단말기를 지급해 모든 의안이 표결처리됐다.

현장에서 주주들의 발언도 자유로웠다. 회사 사업에 대한 질문이 대다수였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해임을 요구하는 주주 질문에 대해서도 주총 의장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적극적으로 답변했다.

무엇보다 사전 온라인 질문방식을 도입한 점이 눈에 띄었다. 온라인 주주 게시판으로 들어온 질문들도 주총장에서 공개됐다. 경쟁기업이나 미래 M&A, 신제품 출시 계획 같은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과거와 달리 회사 측이 의미 있는 답변을 내놓는 모습이었다.

한편 이번 주총에서 삼성전자가 안건으로 올린 사외이사 및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짚어볼 부분이 있다. 삼성전자는 임기 만료된 사외이사 세 사람 가운데 박병욱(서울대 교수), 김종훈(키스위모바일 회장) 이사는 재선임하고 김선욱(전 법제처장) 이사는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재선임키로 했다.

이에 대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재선임 후보들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관련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경영진을 견제 감시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반대권고를 했다.

이들은 2018년 3월 주총에서 처음 선임된 이사들이다. 선임 당시에는 이미 국정농단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이후 기소와 재판으로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 감시와 견제의 책임을 따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아마 이런 관점에서 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키로 결정하고 주총 전에 공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직후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설치된 의결권 행사 검토 전문위원회(수탁자 책임전문위원회) 일부 위원들이 삼성전자 주총 안건에 대한 찬반 검토를 수탁위로 이관했어야 한다며 문제제기를 했다. 결국 세 명의 위원들이 항의 표시로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수탁위로 안건검토가 넘어갔을 경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어느 쪽으로 정해졌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문제는 국민연금 내에서 운용본부와 수탁위 간에 명확한 업무범위 조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프로필

중앙일보, 이데일리를 거치면서 증권, 산업 담당 데스크를 지냈다. 기업의 국내외 거래를 둘러싼 금융 뒷거래를 심층 추적해 기자협회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전문매체 ‘글로벌모니터’를 전문 기자들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1일 3분 1공시>, <기업경영에 숨겨진 101가지 진실>, <기업공시 완전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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