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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가계빚 1천 조 시대’…정책의 전환 필요한 시점

  • 우리나라의 가계대출이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상승추세를 거듭하는 것은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사진=연합 제공)
가계부채가 1700조 원을 넘기면서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워낙 많이 들었던 종소리라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가계부채를 꼽는 것을 보면 영원히 터지지 않는 불발탄은 아닌 것 같다. 정부 또한 3월 중 ‘가계부채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발표한다고 하니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4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726조 원으로 전년 말에 비해 126조원 늘었다. 이는 2016년 139조 원 이래로 최대 증가액이며 가계신용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1%를 넘어 세계 수위를 다투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도 171.3%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빚 갚고 나면 소비에 쓸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우리나라가 만성적인 내수부진을 겪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지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를 포함한 민간의 부채가 GDP 대비 장기 추세치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나타내는 신용갭은 2020년 3분기에 16.9%포인트로 기록적인 수치를 보였다. 신용갭이 2%포인트 미만이면 정상, 2~10%포인트 사이면 주의, 10%포인트를 넘으면 경보 단계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가계신용은 대출과 판매신용으로 나뉘는데 늘어난 액수 대부분이 대출이고 소비와 관련된 판매신용은 전년 말 95조7000억 원에서 95조9000억 원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대출의 대부분이 소비와 관련된 것이 아닌 것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많은 돈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출은 부동산과 주식 등 투기성 자산으로 흘러 들어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부가 25차례에 걸친 부동산대책을 발표했고 이들 중에서는 상당부분 부동산대출을 억제하는 조치가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출의 흐름은 거꾸로 가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역대적으로 낮은 금리에다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추세가 나타나면서 여기로 돈이 몰려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정책이라는 것은 이러한 돈의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정책이 잘 작동하지 않든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대출이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상승추세를 거듭하는 것은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우선 규제당국의 대출자금 용도 규제가 느슨한 것이 문제다. 은행 역시 담보만 확실하다면 어떤 용도로 돈을 빌려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최근까지도 전세대출을 이용해 부동산을 사더라도 문제를 삼지 않은 관행이 오랫동안 유지됐고 신용대출은 여전히 그러하다.

신용대출은 1년 만기 대출 상품으로 최대 10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거기에다 전세보증금이라는 한국 특유의 무이자 대출이 존재하므로 부동산 투기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상당한 규모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부와 은행의 규제가 엄격하지 않은 것이다.

장기와 원리금분할상환대출 비중이 낮은 것도 문제다. 정부는 그러한 대출비중이 높고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주택담보대출만 가지고 따지는 것으로 전세보증금, 신용대출, 집단대출, 임대사업자 대출 등을 포함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는 가계부채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단타 위주로 부동산투기에 뛰어들 유인을 높이는 것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역시 느슨하게 적용되고 있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소득 대비 전체 금융부채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나타내는 이 지표는 현재 40%로 설정돼 있으나 은행에게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이 비율이 적정한가도 따지고 들 필요가 있지만, 은행이 소득수준이 높고 대출규모가 큰 고객에게 높은 DSR 비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를 삼을 수 있다.

소득수준이 높더라도 고점에 유동성이 낮은 부동산을 단기부채를 조달해 샀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계부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시점에서 DSR 규제는 보다 엄격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주로 완화적 통화정책에 힘입어 늘어난 이러한 대출이 과연 한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가는 회의적이다. 제조업과 수출의 선전으로 한국경제는 지표상으로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체감경기를 상징하는 고용은 이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98만 명이 감소했다. 서비스업이 91만 명 감소해 고용 타격이 집중적으로 나타났고 임시·일용직은 70만 명, 자영업자는 12만 명이 감소했다. 수출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 부분은 오히려 호조를 보였지만, 경제의 취약한 부분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완화적 통화정책이 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알기 어렵다. 따라서 투기용 대출로 돈이 주로 흘러 들어가게 만드는 통화정책보다는 정말로 필요한 계층에게 돈이 집중적으로 유입되게 하는 재정정책 위주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우리나라가 풍부한 유동성의 강에서 헤엄치고 있지만 글로벌 리스크는 적지 않게 쌓이고 있다. 우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기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언제든지 과도하게 부푼 미국의 자산시장거품을 꺼뜨릴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명목GDP는 49% 증가한 반면, 저점 대비 나스닥은 900% 가까이 상승했다.

아무리 주가가 미래가치를 대표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과도하다고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준이 통제하기 어려운 시장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것은 경계할 만한 신호다. 또한 중국을 위시한 신흥국의 민간부채도 크게 쌓이고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이러한 자산과 부채버블 붕괴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정부는 초기의 소득주도 성장의 기치를 어느덧 접고 보이지 않게 부채주도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1년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어느 정도 불가피했더라도 장기적인 추세나 속도 면에서 과도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총량 지표의 호전에 취하지 말고 미리미리 가계대출에 대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할 시점으로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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