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위한 규제 vs 산업의 자율적 성장

#1.
한 시간도 넘기지 않아 신제품 3000개가 완판됐다. 라이브커머스(라이브 스트리밍과 전자상거래의 합성어)의 위력이었다. 지난 2월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아이오페는 네이버 쇼핑 라이브를 통해 신제품을 선보였다. 라이브 방송 진행자는 뷰티 크리에이터 ‘데이지’. 그를 섭외한 건 신의 한수였다. 데이지는 시청자들과의 쌍방향 소통에 능숙했다. 그의 입담 때문에 쇼핑 목적이 아닌 시청자들도 라이브 방송을 즐겨 봤다. 이날 아이오페 라이브 방송 시청자는 약 26만명에 달했다. 라이브커머스 방송이 이제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를 잡은 트렌드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2월 아이오페가 신제품 출시기념 뷰티크리에이터 '데이지'와 네이버 라이브방송을 진행했다.(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2.
지난해 한 업체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자사 제품이 여성질환 및 아토피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다고 광고했다. 해당 제품은 유산균 람노서스 GG로 기타 가공품으로 분류된다. 이 업체는 구체적인 질병명을 언급해 자사 제품이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처럼 홍보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광고를 부당 광고의 한 사례로 소개했다.

신규 커머스 산업인 라이브커머스를 두고 이해관계자와 정치권의 갈등이 가시화될 조짐이다. 라이브커머스는 온라인 방송을 통한 상품 판매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라이브커머스는 아직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성장세는 가파른 편이다.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라이브커머스가 차지한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하지만 라이브커머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기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2020년 3조원에서 2023년 8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신산업일수록 정부 개입 논쟁은 뜨겁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라이브 미디어 커머스의 쟁점과 향후 과제’란 보고서에서 현 시점을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규제와 산업의 진흥 사이에서 고민이 되는 지점’으로 규정했다. 정치권의 고민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라이브커머스를 규제한다면 글로벌 사회에서 산업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브커머스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16일 한국소비자원은 라이브커머스 방송 120건 중 30건에서 부당광고 의심 표현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는 라이브커머스
라이브커머스와 TV홈쇼핑은 생방송으로 상품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쌍방향 소통은 라이브커머스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방송 진행자는 소비자가 보낸 채팅 메시지에 즉각적으로 응답해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한다. 라이브커머스의 주요 고객층은 뉴미디어에 익숙한 2030세대다. 이들에 의해 라이브커머스 방송은 포털 사이트나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방송 진행자도 2030세대를 겨냥한 유명인이 대다수다. 유튜버,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등이 방송 진행자로 섭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마치 동네 친구처럼 소비자들과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쇼핑과 무관한 대화는 소비자로 하여금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라이브커머스가 유통업계뿐 아니라 문화 콘텐츠 업계로부터 주목을 받는 이유다.

라이브커머스는 2030세대의 인기에 힘입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있어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3년 이상 앞서 있다”며 “우리나라는 늦은 만큼 라이브커머스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이커머스, 인터넷 포털, 전통적 유통업체 등은 서둘러 라이브커머스 시장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지난해 네이버, 카카오가 라이브커머스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쿠팡이 뒤늦게 합류했다. 롯데마트, 롯데온, 신세계 등도 라이브커머스에 주력하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그립 홈페이지 화면(사진=그립 제공)

법의 사각지대 우려…규제와 육성의 갈림길
문제는 라이브커머스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16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라이브커머스의 거짓·과장 광고로 인해 소비자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은 라이브커머스 방송 120건 중 30건(25.0%)에서 부당광고 의심 표현이 확인됐다며 판매자에 대한 플랫폼 운영자의 관리?감독 책임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소비자 피해구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개정안은 통신판매중개업자에게 라이브커머스 방식으로 진행된 통신판매 영상을 녹화 등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통신판매중개의뢰자와 소비자가 해당 영상을 열람·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법 개정의 명분에는 공감하면서도 소규모 중개업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패션업체 대표는 해당 개정안에 대해 “피해와 관련해 판매자와 소비자간의 분쟁 여지를 낮춘다는 점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녹화 영상을 저장할 서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서버 용량 문제로 고통받는 소규모 중개업자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규제 적절성 문제도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시작 단계인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을 규제할 경우 해외 사업자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장의 자율적 경쟁을 통해 라이브커머스 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 산업에 대한 거부감으로 라이브커머스 산업 발전이 저해될까 두렵다”며 “‘제2의 타다’가 되지 않도록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