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주도·수익률 중시·인센티브 합치성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자본시장과 기업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비슷비슷한 용어들이 여럿 등장했었기에 ESG는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ESG도 한 때 유행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등 의문이 이어진다.
자본시장 쪽에서 보면 사회적 책임 투자, 지속가능 투자, 임팩트 투자 등이 진작부터 있었다. 한편 기업들도 사회공헌,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유가치 창출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문제 해결해 기여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면 도대체 이들과 ESG는 어떻게 다른가.
자료이미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픽사베이)
ESG의 첫 번째 특징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ESG 문제 해결은 궁극적으로 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ESG 경영’이 중요하다. 그러나 투자자가 기업의 ESG 문제 개선 활동을 장려하기 때문에 ESG 경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52조 달러 자산을 운용하는 500여개 글로벌 기관투자자 모임인 “기후행동(Climate Action) 100+”이 대표적인 예다. 이 모임은 전 세계 산업체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하는 161개 기업을 지정해 온실가스 감축을 독려함으로써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의 래리 핑크 CEO도 2018년 이래 매년 초 투자기업 CEO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기업이 ESG 문제를 잘 해결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ESG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경영진에 대해서는 주주로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ESG는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론(CSR)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CSR 연구자들이나 공유가치창출(CSV) 이론을 편 마이클 포터는 기업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증 분석에 따르면 CSR 활동이 이윤 증가를 가져왔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기업들이야 사회적 압력 때문에 CSR 활동을 해왔지만, 이윤 감소를 주주들이 좋아할 리 없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주주들이 안 좋아할 일을 경영자가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건 뻔한 이치다. 그러니 법에 정한 최소한의 것만 하고, 나머지는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활동을 하는데 그친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을 잘 엮어서 연말에 멋진 표지의 ‘지속가능 보고서’로 출간한다.
그러나 사업부서 직원들은 대부분 그런 활동이 있었는지, 그런 보고서가 나왔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이것이 투자자들의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CSR·CSV 활동의 한계다. 하지만 ESG에 긍정적 입장을 가진 투자자들이 주도한다면, 경영자들도 기업가치 극대화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에 ESG를 피하려는 성향이 없어지거나 최소한 줄어들 것이다.
둘째, ESG는 투자 수익률을 중시한다. 투자자가 주도하니 수익률을 중시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겠으나, 이전의 사회적 책임 투자나 지속가능 투자와는 결이 다르다는 뜻이다.
‘ESG 투자’라는 용어는 2004년 유엔글로벌콤팩트(UNGC)가 출간한 리포트인 “Who Cares Wins”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이 제목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기업들이 환경·사회 문제를 잘 해결하면 장기적 재무성과가 좋아진다는 실증론적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맥락에서 ESG 투자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 많은 실증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또한 ESG 투자가 수익률을 소홀히 해서, 운용자산의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수탁자 의무를 위반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최근까지 이어졌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사회적 책임 투자는 도덕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 어긋나는 산업이나 제품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러니 사회적 책임 투자자들은 사회적 가치 달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 재무성과를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지속가능 투자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재무성과도 중시하지만, 환경·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메시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ESG 투자와 다르다.
셋째, ESG는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ESG를 강요·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당신들에게도 이익이라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센티브 합치성(incentive compatibility)이 있다.
자산 운용자들은 ESG 개선과 높은 수익률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는 믿음 하에 그런 방향으로 투자하고 또 기업들을 유도한다. 특히 연기금 같은 기관 투자자들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장기적 수익성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개인 자산 보유자들도, 특히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자산이 ESG 활동을 잘 해내는 기업에 투자되기를 희망한다. 자산 보유자들의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자산 운용자의 ESG 투자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ESG 투자 참여자들은 자산 보유자, 자산 운용자, 기업 모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혹자는 기후변화,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 외부 요인 변화가 심각하게 다가오니까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외부 요인들이 자산 보유자와 운용자의 태도 변화를 촉발하였다는 건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건 외부 요인 변화는 항상 있어 왔다. 급격한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조직이나 사람은 살아남고, 끝까지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멸망의 길을 걸었다. 새로운 환경에 걸맞게 자신의 목표 또는 선호 함수를 바꾸고 그에 걸맞은 행동방식을 찾아서 실행에 옮기는 조직이라면, 이들은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센티브에 합치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센티브에 기반한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이제 많은 투자자들은 ESG 활동을 열심히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믿기 시작했고, 그렇게 믿는 투자자들 숫자도 늘고 있다. 아직 ESG 투자가 대세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다양한 요인들이 ESG 투자의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물론 장애요인과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세상에 장애요인 없는 일이 있으랴.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프로필

대통령 비서실 미래전략수석, SK브로드밴드 대표,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MD,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파리협정(2015) 체결 시 정책결정에 참여한 인연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기업 지배구조 관련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IT 인사이드> 등이 있다.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