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업의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더현대서울 사운즈포레스트 전경(사진=현대백화점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2020년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매출은 3.6% 감소했다. 온라인 유통업계가 무려 18.4%의 매출 증가율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9년에도 온라인 매출 성장세(14.2%)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부진은 코로나19로 인해 위기가 부각됐을 뿐,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G) 마케팅 교수는 “가격 경쟁에서 오프라인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최저가격을 책정하는 온라인을 이기기 힘들다”며 “오프라인 리테일의 축소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이 같은 위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최근 개점한 더현대서울은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른바 ‘리테일 테라피’(쇼핑을 통한 힐링)를 무기 삼아 승승장구 중인 온라인 유통업계에 반격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의 자연친화적인 실내 인테리어로 고객들에게 힐링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현대서울이 흥행에 성공하자 현대백화점은 목동점 한 층도 실내 정원으로 꾸몄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유럽 정원과 온실’이란 컨셉으로 나무 15그루와 자생식물 30여종을 마련했다”며 “전국적으로 리테일 테라피를 적용한 점포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6월 개점 예정인 롯데백화점 동탄점도 힐링 개념을 도입해 잔디 광장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화점 내부를 마치 정원처럼 꾸미는 개념은 상당히 파격이다. 더현대서울의 오픈 첫 주말 하루 매출은 100억원. 온라인에게 밀리는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해결책은 리테일 테라피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리테일 테라피가 각광 받는 이유는 디지털 세상에서 느끼는 허전함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황 교수는 “실재적 경험과 직접적인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부족함을 느낀다”고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대 생활과학의류학과의 익명을 요구한 A교수도 “인간은 소속감, 교감 등을 통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길 원한다”며 “이로써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리테일 테라피를 이용해 온라인 유통업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문제는 온라인 유통업계 역시 소비자들에게 리테일 테라피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화물 운송 기업 UPS의 자회사 웨어투고(Ware2Go)가 202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60%는 코로나19에 의한 격리기간 동안 리테일 테라피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쇼핑 과정에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브커머스의 경우 판매자 또는 쇼호스트는 직접 상품을 사용해보면서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준다. 이에 대해 서울대 A 교수는 “사회성 경험이라는 오프라인 요소를 온라인에 구현한 것”이라며 “온라인 유통업계에 의해 소비자가 리테일 테라피를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테일 테라피를 두고 오프라인 유통업계와 온라인 유통업계의 경쟁은 치열할 전망이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매출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특히 온라인의 매출 비중은 백화점의 3배에 달한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백화점의 변화가 반짝 효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랜드마크’로 성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케팅 전문가인 황 교수는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통한 쇼핑이 일어날 수 있다”며 “그런 환경 안에서 경험하는 정서완화를 리테일 테라피라고 명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를 통해 리테일 테라피의 현황과 전망을 들어본다.

더현대서울 워터폴가든 전경(사진=현대백화점 제공)

-리테일 테라피는 오프라인 유통업계에만 국한된 것인가.
“리테일 테라피의 개념은 소비를 통한 정서완화다. 현재는 더현대서울이나 아모레성수, 혹은 젠틀몬스터의 하우스 도산처럼 공간에서의 경험이 리테일 테라피의 중심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앞으로는 AR과 VR을 통해서도 리테일 테라피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가상 환경 안에서 소비를 통해 정서가 완화된다면 넒은 범위에서 리테일 테라피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라이브커머스는 어떤가.
“라이브커머스의 특징은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실시간’과 ‘연결’이다. 라이브커머스가 참여자들이 연결된 환경에서 다수의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정서완화를 줄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한다면 그 접근은 리테일 테라피로 볼 수 있다.”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 리테일 테라피가 가지는 한계가 있다면.
“온라인 리테일의 한계는 실재감의 결여다. 그런 이유로 아마존 같은 글로벌 유통업체들도 적극적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더현대서울을 평가한다면.
“우선 성공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굉장히 의미 있는 시도다. 한 백화점 지점이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연을 이용한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나 특별한 외식 경험, 공간의 구조 등이 단연 돋보인다. 또한 ’리:스토어’ 책을 통해 강조한 핵심이 ‘고객의 시간을 점령하는 매장’이었는데, 더현대서울이 그 개념을 현실화한 매장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점을 굳이 꼽자면 지금 단기적인 관심과 엄청난 매출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 브랜드 구성과 고객 경험을 어떻게 개선해 고객 유입을 꾸준히 유지하고 증가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앞으로 VR,AR 등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커머스 주목도가 더 높아진다면 오프라인의 위기는 지속될 것 같다.
“온라인으로의 이동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보니, 오프라인은 위기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잘 살펴보면 이런 와중에도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리테일러들도 많고, 혹은 오프라인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리테일러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이다.

모든 오프라인 기업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오프라인에서는 온라인에서 충족될 수 없는 점들을 더 차별화시키는 한편, 온라인처럼 보다 더 편리한 쇼핑환경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구매는 가격 중심의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자신의 매장에 오는 소비자들이 왜 오는지, 또한 왜 계속 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 유통업계의 적절한 전략이 있다면 무엇인가.
“물론 규모마다 매장 경험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는 접근법이 다를 수 있다. 자금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대형 리테일러들은 더현대서울, 아모레 성수 등 플래그쉽 매장의 경험에 혁신을 더해 소비자들이 찾아올만한 공간과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월마트가 2020년 12월에 선보인 미래의 오프라인 매장 컨셉은 QR코드AR, 식품 열량정보, 셀프체크아웃 등이 전격적으로 도입됐다. 매장에서 필요한 점원은 크게 줄어드는 대신 호텔급 프리미엄 서비스 개념인 컨시어지 서비스같은 보다 더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소상공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반대로 상대적으로 여력이 적은 소상공인들은 근린상권 중심으로 주변 고객들에게 밀착형 서비스를 중심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비스에서도 ‘일관성’이 중요하고 운영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고객에 따라 마음대로 추가 서비스를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매장 문도 개인 사정으로 닫거나 하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노출되는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대신 다른 것들로 고객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어떤 점일까에 대한 질문을 고객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행할 것을 권하고 싶다.”

-한국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요즘은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기술 혁신이나 새로운 서비스 등에 맞춰 단기적인 대응을 하는데 급급하기 쉬운 환경이다. 그러다보니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어려움도 있다. 아마존의 경우, 지금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은 이미 몇 년 전에 기획된 것도 많다고 한다. 급변하는 리테일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을 세우기 위해서는 보다 더 진화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서 해당 업계 종사자들이 현재의 트렌드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직접 경험하는 것도 좋은 자원이 될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로 무엇을 꼽을 수 있나.
“소비자의 역할이 변했다는 점을 이해하고, 그들을 협력자로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모바일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은 사용자일 뿐 아니라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역할이 커졌다., 이들을 통한 구전효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틱톡에 공유하는 상품 정보와 평가는 다른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된지 오래다. 결국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만들수 있는 ‘꺼리’와 ‘소재’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포토 스팟, 상품 및 서비스 프리젠테이션은 물론이고 ‘시각적 뷰’ 같은 것이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 또 해쉬태그를 할 수 있게끔 특색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말은 ‘본질’을 간과하지 말자는 것이다.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충족된 후 다른 서비스와 공간이 의미가 있다. 멋진 공간과 세련된 서비스도 좋지만, 본질적인 상품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등 핵심 비즈니스의 기본이 안되면 부수적인 요소들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끝으로 리테일 테라피 효과는 ‘실제 소비 여부’와 무관한 것인가.
“리테일 테라피의 핵심은 소비행동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고 치유하는 정서 전환이다. 그런 측면에서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해서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는 현상은 스마트하고 똑똑한 소비자의 개인적인 특성과 더 연관이 깊다. 반면 실질적인 소비형태는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심리적 결핍, 단절로 인한 고립감 등을 완화해준다. 우리가 비싸더라도 멀리 휴가를 간다든지, 잠깐이라도 경치 좋은 곳에서 맛있는 커피와 음식을 먹으며 리프레시를 하는 경우가 그렇다. 때로는 너무 디지털 세상에 파묻힌 상황을 벗어나는 환경을 찾아 시간을 보내는 것 등이 좋은 예일 것 같다.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 소비 여부도 리테일 테라피에 해당되는 것이다."

●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마케팅학 부교수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소비자유통학 박사
△미시간주립대학교 국제유통학 석사
△한양대학교 의류학 학사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