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피해액 1조3000억원 대, 5년 전 비해 다섯 배 늘어…스마트폰 이용한 신종 사기수법 성행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경찰청 서경마루에서 송재호 KT AI/DX융합사업무분장(왼쪽)과 장하연 서울경찰청장이 보이스피싱 예방 및 근절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보이스피싱 피해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전통적인 사기 수법으로 알려져왔던 보이스피싱이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면서 금융기관, 공공기관을 사칭한 문자나 전화상담을 가장해 폭증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 21일 경찰청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2019~2020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총 1조 3398억원대에 달한다. 불과 5년전인 2016년에는 1468억원대였던 것이 2020년에는 7000억원 규모로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신고된 사례만 하루 평균 87건, 피해액만 19억원 규모에 달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신종 사기수법이 계속해서 진화하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이다.

정부 재난지원금·백신접종 빙자…날로 진화하는 수법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및 백신 접종 등을 빙자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정보를 입력하도록 하거나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해 자금을 편취하는 보이스피싱 시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지난달 발표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은행 등 금융기관을 사칭해 정부의 긴급 지원자금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선별지급 대상 여부를 확인하고 비대면 대출신청을 한다는 핑계로 악성 인터넷주소(URL)를 클릭하게 하거나 회신 전화를 걸도록 유도하는 수법이다. ‘(재난지원 대출) 한시적으로 누구나 신청 가능한 특별대출’ ‘정부의 한시적인 지원제도로 4차 지원금 소진시까지만 접수’ ‘만 20세 이상 소득·재산 무관, 신용등급 1~9등급, 소득활동이 없어도 신청 가능’ 등 허위 사실을 내세워 소비자를 유혹한다.

이후 정확한 상담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주민등록번호, 소득, 직장 및 재산 현황 등 개인정보를 요구한 후 저금리 대출을 위해서는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고 추가 대출을 받은 후 바로 상환해 신용평점을 높여야 한다며 자금을 받아서 편취하는 수법이다. 또는 코로나19로 비대면 대출만 가능하다며 악성 URL을 보내 원격조종앱 설치를 유도하고 피해자의 뱅킹앱 접속을 통해 돈을 뜯어내는 방법도 사용한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점을 악용해 백신관련 투자정보 등 허위 투자정보를 미끼로 URL 클릭을 통해 악성앱 설치를 유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정부기관 및 제도권 금융회사는 전화·문자를 통한 광고, 개인정보 제공, 송금 뱅킹앱 설치 등을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라며 “특히 악성 앱이 설치된 경우는 본인 전화기로 금융회사, 금감원, 경찰 등에 전화할 경우, 사기범이 중간에서 전화를 모두 가로채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이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번 악성 앱이 설치되면 범죄자들이 피해자의 지인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링크를 누르게 만들어 2,3차 피해로도 확대된다. 만일 악성앱이 설치됐다면 모바일 백신앱(최신 버전 업데이트)으로 검사 후 삭제하거나 데이터 백업 후 휴대폰을 초기화해야 한다.

휴대폰 빌려 소액결제, 은행 앱 이용한 계좌 이체도

모르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요청해 잠깐 사이에 돈을 빼가는 수법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1월 부산에서 숙박업소를 운영중인 60대 사장 A씨는 휴대폰을 잠시 빌려달라는 투숙객 B씨의 부탁에 선뜻 응했다. B씨가 이미 사흘간 숙박한 데다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을 보여줘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휴대폰을 빌려준 후 본인이 결제하지 않은 소액결제 문자가 지속적으로 전송되자 이를 의심한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A씨에게 청구된 소액결제 금액은 158만원에 달했다. 경찰의 추적 끝에 붙잡힌 B씨는 부산과 진주, 통영 등 20곳이 넘는 숙박업소를 돌며 같은 수법으로 1년간 4535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노령층 숙박업소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을 빌려 피해자 명의로 인게임머니를 현금화해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휴대폰을 빌린 뒤 은행 앱으로 예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해 가로챈 사례도 있다. 한 20대 남성이 지난 1월 인천의 한 숙박업소 업주에게서 스마트폰을 빌려 700만원을 다른 계좌로 이체해 가로챈 혐의로 검거됐다. 그는 범행 열흘 전쯤 업주에게 스마트폰으로 대리 송금을 의뢰하면서 은행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재택 아르바이트 모집? 알고 보니 불법 사설중계기 설치

아르바이트 모집을 미끼로 ‘사설중계기’를 설치해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는 신종수법도 적발됐다. 사설중계기는 인터넷전화를 국내번호(010)으로 변조하는 장치로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외국에서 발신된 인터넷 전화의 표시번호를 ‘010’ 같은 국내 번호로 바꿔 범죄에 이용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재택 아르바이트 모집’ ‘인터넷 모니터링 부업’ 등의 광고를 내고 연락 온 이들에게 자택 등에 사설중계기를 설치하면 월 15~20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중계기 설치를 유도했다.

경찰은 최근 이같은 사설중계기 집중단속을 벌여 전국 52개소에서 사설 중계기 161대, 홈카메라 7대, 노트북 1대, 대포폰 25개 등을 압수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본인 집에 설치한 사설중계기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되는지 모르고 있다가 수사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주변에 사설중계기 설치 사례를 보면 즉시 112로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