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마이너스의 손’에서 ‘용진이형’으로
오너 마케팅의 선두주자



‘택진이형’(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을 부러워하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그는 요즘 ‘용진이형’이라 불리며 셀럽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정 부회장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친근하고 위트있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업 마케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오너 마케팅’이다. 오너 마케팅은 오너가 직접 나서서 기업 마케팅을 진두지휘하는 경영 전략을 뜻한다. 대개의 오너들이 신비주의를 지향한다면 최근 오너들은 대중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정 부회장은 본인의 캐릭터까지 활용하는 파격을 선보이면서 오너 마케팅의 선두주자로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문제는 오너 마케팅이 양날의 칼이라는 점이다. 기업 이미지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 오너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 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 부회장은 최근 다방면의 SNS 활동을 통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지만 사적인 문제로 악재를 겪은 적도 있다. 2011년 정 부회장은 20인승 벤츠 미니버스를 타고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해 출근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꼼수’ 논란을 일으켰다. 네티즌들의 원성을 이기지 못한 정 부회장은 결국 트위터를 탈퇴, 한동안 SNS 활동을 접었다.

본인 캐릭터까지 활용하는 ‘세상에 없던’ 오너의 파격
여자 농구에서 손을 뗐던 신세계가 인기 종목인 야구로 돌아왔다. 신세계의 여자 농구 해체 사건으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정 부회장은 SSG랜더스에 대한 열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지난 2월 정 부회장은 음성 채팅 앱 ‘클럽하우스’를 통해 야구단 인수 배경, 구단명 후보군과 공개 계획, 팀 상징색 등을 직접 전했다. 야구단이 10연승을 하면 시구를 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또한 SSG랜더스의 첫 공식 경기인 2021 KBO리그 개막전을 직관해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지난 4일 정 부회장은 경기 시작 약 두 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해 선수들을 격려한 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날 SSG랜더스는 롯데자이언츠를 상대로 5:3 승리를 거뒀다. 정 부회장은 팀을 승리로 이끈 최주환 선수에게 이마트 자체 브랜드인 피코크의 시그니쳐 프리미엄 한우를 이른바 ‘용진이형상’으로 선물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쳐

지난 7일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국프로야구팀 SSG 랜더스 첫 승을 기념한 케이크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에는 야구공을 연상시키는 케이크와 함께 첫 승 축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정 부회장은 사진과 함께 “케이크 선물받음”이란 멘트를 남겼다. 사진을 게시한지 약 5시간 만에 약1만2310명의 이용자가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정 부회장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정 부회장은 신사업을 런칭할 때마다 SNS를 통해 열성적으로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열띤 홍보가 화근이 되어 정 부회장에게 타격을 주곤 했다. 지난해 정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는 피코크 전문점 ‘PK피코크’, 헬스앤뷰티 스토어 ‘부츠’, 만물 잡화점 ‘삐에로쇼핑’, 라이프스타일 전문점 ‘메종피시아’ 등을 모두 철수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정 부회장의 연이은 실패는 그가 열성적으로 홍보한 만큼 대중들에게 크게 다가왔다. 정 부회장은 한동안 ‘마이너스 손’이라는 별명으로 고생했다. 그리스신화에서 마이더스는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꿔버린다. 이를 비꼬아 반대말로 마이너스라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정 부회장의 별명은 ‘용진이형’이다. 지난 2월 정 부회장은 클럽하우스를 통해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NC를 벤치마킹해서 우승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김택진 대표가 부러웠다”고 했다. NC팬들은 김택진 대표를 ‘택진이형’으로 부른다. 그러자 한 이용자가 “용진이형이라고 불러도 되나요”라고 물었고 정 부회장은 “네”고 답했다.

그가 ‘용진이형’이란 별명을 얻은 데는 스스로를 캐릭터화하는 연이은 파격이 한몫 거들었다는 평가다.. 오너에 대한 편견을 깨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그는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클럽하우스 등 각종 SNS를 통해 여러 연령대를 고루 겨냥했다. 자사 제품들만 홍보하지 않고 자신이 다녀온 여행지, 맛집, 반려견 등 소박한 일상사를 게시물로 올렸다.

지난 1월 정 부회장은 유튜버로 변신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 공식 유튜브 채널 ‘이마트 LIVE’를 통해 직접 기업 홍보에 나섰다. 지난 1월 11일에 공개된 유튜브 영상을 보면 정 부회장은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요리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요리하는 장면 간간이 성수동에 있는 이마트 본사 전경이 스치듯 나오기도 한다.

정 부회장은 캐릭터 사업에도 직접 나섰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그룹의 새 캐릭터 `JRilla(제이릴라)`를 홍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제이릴라는 알파벳 `제이(J)`와 고릴라를 뜻하는 `릴라`의 합성어다. 지난해 9월 이마트는 특허정보넷 키프리스를 통해 제이릴라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대중들은 캐릭터가 정 부회장을 닮았다며 제이(J)가 정 부회장의 영문 이니셜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이 같은 소문에 반박하면서도 올해 초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제이릴라 이미지를 올리며 "YJ랑 하나두 안 닮았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시지를 게시했다. 정 부회장은 이후에도 제이릴라와 함께 SSG랜더스필드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자사 캐릭터 홍보에 손수 나서고 있다.

중화요리에 관심을 보인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브랜드 녹두 실당면과 녹두 납작당면 제품을 소개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실당면과 납작당면은 중식 요리에 주로 사용되는 재료인데 정 부회장이 직접 면을 삶아 맛을 보는 영상을 올린 것이다. 화제가 된 것은 노브랜드 당면 제품 사이에 자신의 일러스트가 들어간 인쇄물을 공개한 장면이다. 중식 조리복장을 한 정 부회장이 한 손에 요리를 받쳐 든 캐릭터였다. 제이릴라에 이어 자신의 캐릭터를 활용한 또 다른 브랜드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은 정 부회장의 이미지 개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마이너스의 손에서 용진이 형으로 탈바꿈한 그는 자사 마케팅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이마트와 스타벅스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대기업 부회장이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마트 LIVE 캡쳐

신세계 측은 “정 부회장의 젊음, 유머러스함 등의 이미지가 회사 이미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스타벅스와 이마트의 마케팅팀에서 각각 기획안을 내 정 부회장이 참여하는 유튜브 영상을 찍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정 부회장도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전달하고자 몸소 나섰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자사 고객들에게 소탈한 이미지를 어필하면 기업 가치가 높아진다”며 “오너 마케팅은 기업이 신선한 이미지를 갖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취미뿐 아니라 인생 철학, 가치관을 담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정용진표 마케팅’은 라이벌 롯데그룹과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해 화제를 모았다. 정 부회장이 유통 경쟁사인 롯데를 자극하는 형식으로 대중들의 관심과 마케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나선 것이다.

지난달 30일 정 부회장은 클럽하우스에서 “롯데가 본업(유통)과 야구단을 잘 연결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우리는 본업과 연결할 것이다. 걔네(롯데)가 우리를 울면서 쫓아오게 될 것"이라고 도발했다. 그러자 롯데가 곧바로 반격했다. 지난 1일 롯데는 통합온라인몰 ‘롯데온’ 배너에 롯데 자이언츠 관련 이벤트를 알리며 ‘원정 가서 쓰윽 이기고 ON’이란 문구를 넣었다. ‘쓰윽’은 신세계의 온라인몰 SSG닷컴(쓱닷컴)을 연상시키는 단어다.

다음날 클럽하우스에 등장한 정 부회장은 "내가 의도한 대로 롯데가 반응했다"고 반색했다. 정 부회장은 "상대방을 자극해야 야구의 판이 커진다. 라이벌 팀을 만들어야 한다"며 자신의 도발이 야구팬과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중들은 이를 지켜보며 재미와 함께 신세계와 롯데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사진=연합뉴스)

정치인 팔로잉하다가 ‘의문의 1패’를 당하기도
정 부회장은 4ㆍ7 재보궐 선거 기간 동안 정치 편향 논란을 일으키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지난 1일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팔로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팔로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이 간접적으로 정치 성향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다음날 정 부회장은 오 후보 인스타그램도 뒤늦게 팔로잉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치적 좌우가 극단적으로 분열돼 있기 때문에 정치 색을 드러내면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오너 마케팅에서 정치 성향을 나타내는 건 피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