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신임 회장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한상의 임시의원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경제·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소통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특히 기업의 ESG 경영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요즘 어디를 가나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의 차이점에 대해 묻는다. 나는 늘 이렇게 답한다. “서로 뿌리는 같지만 그 결은 많이 다르다”고. ESG가 경제의 화두로 등장하니 이곳저곳에서 전문가들이 나타나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에 근거해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정의를 내린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혼란을 해소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가중시키는 꼴이다.

예컨대 경영전략 전문가는 ESG를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인사관리, 환경경영,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각자 전문성의 관점에서만 ESG를 설명한다. 과거 CSR, 공유가치창출(CSV), 지속가능경영, 사회적 가치 전문가들도 자신의 영역 위에 ESG 라벨링을 하니 요즘 한국에서의 ESG 담론은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혼란의 배경에는 정답 하나만 강요받았던 한국교육 시스템이 있지만, 또 한편으론 전문가들의 밥그릇 지키기와 기득권 수호 다툼도 한몫한다. 자칫 한국에서의 ESG 담론이 소모적 개념 논쟁만 하다 날이 저물까 염려된다.

그렇다면 ESG란 무엇인가. ESG는 전통적인 CSR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자 용어이다. 그 불만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기업에 대한 불만이다. 과거 CSR에 배분된 자원만큼 상응하는 실익이 투자자들에게 없었다는 데 대한 불만이다. 기업의 CSR 행위가 기업 이미지 제고나 평판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정작 그것이 중장기적 기업가치와 연결될 만큼 효과적이고 전략적이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자리 잡고 있었다.

둘째, CSR 정보공개 내용과 수준에 대한 불만이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보고하는 지속가능보고서와 ESG평가업체의 평가결과를 참고해 투자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CSR분식으로 드러나 손실을 입게 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여기에는 전통적인 재무제표가 기업의 실질적 위험 및 기회요소인 ESG성과를 알려 주지 못한 것에 대한 근본적 불만도 깔려 있었다.

즉 재무제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날로 중요해지는 탄소 배출량, 인적자본 및 혁신역량 수준, 이해관계자 관계 관리 등 ESG 요소들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투자자들의 갈증과 니즈가 ESG평가 프레임웍을 자연스럽게 등장시켰고 이제는 그것이 주류 투자무대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이다.

한편 전통적인 기업의 CSR성과는 지속가능보고서 작성 국제기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s)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시됐다. 그러나 2016년 세계 4대 회계법인인 PwC의 ‘ESG파동’(ESG Pulse)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은 자신들의 지속가능보고서에 대해 100% 신뢰하는 반면, 투자자들은 고작 29%만 신뢰한다고 답했다.

GRI가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공시 가이드라인이다 보니, 투자자 관점에서는 불요불급한 내용들이 많았다. 또한 GRI에 따른 기업보고서는 대개 기업의 홍보자료 같은 인상을 줬다. 기업의 자랑거리 위주로 편집된 내용도 내용이지만, 화려한 디자인으로 작성된 보고서가 오히려 보고서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투자자들에게는 컬러 장정본으로 인쇄된 지속가능보고서보다는 중대한 ESG요소의 성과 추이를 알려주는 숫자와 사실관계를 담은 엑셀파일이 더욱 유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의 ESG 관련 자원 배분이 중장기적 기업가치와 어떻게 연관됐는지를 설명해 준다면 그것은 보다 진정성 있고 설득력 있는 ESG 공시가 될 것이다.

이러한 투자자들의 요구와 필요를 반영해 등장한 공시 프레임웍으로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 Board)와 기후변화 재무정보 공개협의체(TCFD, Taskforce on Climate related Financial Disclosure)를 들 수 있다. SASB는 기업의 ESG성과를 놓고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시켜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들은 기업을 77개 섹터로 나눠 각 섹터별 기업의 재무성과나, 생산 및 영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ESG요소를 선별했다.

특히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고, 재무적 상관성이 존재하는 ESG요소들만 선택했다. 투자자들은 SASB에 따른 ESG 정보를 통해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한 심화된 기업분석을 할 수 있고, ‘변동성’(Volatility) 등과 같은 전통적인 위험 지표와 함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측면의 위험요소들을 판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주관여 시 어젠다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도 유용하다.

다음으로 TCFD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각국 중앙은행장들이 기후변화 이슈가 날로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금융기관들이 투자하고 대출해준 기업들의 기후변화 관련 공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이니셔티브이다.

TCFD에 따라 기업들은 기업지배구조, 경영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설정 차원에서 어떻게 기후변화 관련 위험과 기회를 관리해야 하는지를 공시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것이 재무제표와 어떤 연관관계를 갖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도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큰 도움을 준다.

이제 본 칼럼제목의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ESG는 CSR과 무엇이 다른가. ESG는 전통적 CSR 요소 중 재무상관성 및 미래 성장성과 밀접한 요소에 기업의 자원을 집중하라는 금융시장의 요청이다. CSR이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배려했다면 ESG는 ESG 투자자에 집중하는 것이다.

ESG경영은 기업으로 하여금 보여주기식 CSR, 포장된 CSR에서 벗어나 기업의 전사 전략, 혁신전략 내에 ESG요소를 통합해 4차산업혁명, 탄소중립, MZ세대(밀레니엄+Z세대)의 등장이라는 메가 트렌드에 편승해 중장기적 기업 가치를 제고시키라는 명령인 것이다. 따라서 기업 ESG경영의 출발점은 ESG장기투자자들과의 유기적 소통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요구와 니즈를 경영현장에 반영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ESG요소의 자기 규율수준을 제고시켜 나가는 것이 ESG경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기업이 ESG를 ‘CSR 시즌2’ 쯤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은 미래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아 자본유치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성장의 어려움에 직면할 것은 불문가지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