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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 뒤흔드는 ‘가치소비’의 반란

유행·신제품보다 자신만의 가치를 위해 지갑 여는 MZ세대…‘윤리소비’로 친환경·리셀 문화 이끌어
  • 지속가능한 콘셉트의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H&M이 피마자 오일로 제작된 바이오 기반 원사를 소재로 한 제품을 공개했다. 사진제공=H&M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이른바 ‘가치소비’가 전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가 몰고 온 새로운 소비 패러다임이다. 이들은 신상품이나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구매의사를 결정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지갑을 여는 이른바 가치소비 세대다.

통계상으로 볼 때 이 세대는 이미 전세계 절반 이상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역사상 가장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됐다. 특히 Z세대는 약 1430억 달러(약 159조1400억원)의 구매력을 자랑하고 있어 앞으로 전세계 소비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어갈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의 주된 키워드는 나만의 정체성을 개성있게 드러내면서 ‘공정성’과 ‘자기만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남을 의식하는 과시소비와는 다르게 실용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성격이 강하며, 무조건 저렴한 상품이 아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제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투자한다.

기후변화, 인종과 성별 평등, 노동자 권리, 식품 재료, 가짜 뉴스, 디지털 프라이버시 등에 민감한 이들 세대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드러내는 데도 익숙하다. 디지털 세대답게 막강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으며 조금 비싸거나 번거로워도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기존의 가치 체제를 전복시키며 이끌고 있는 새로운 소비 문화는 이미 세계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버린 페트병에서 섬유를 뽑는 리사이클 시장 탄생

  • 영국 대학에 원단을 제공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 사진=알렉산더 맥퀸 제공
MZ세대들은 윤리적 소비를 통한 지속 가능성에 가치를 두고 있는 세대다. 이에 환경 문제에 민감한 MZ세대를 타겟으로 한 ‘리사이클링 시장’이 뜨고 있다.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재킷, 가방, 티셔츠같은 의류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시장은 2019년 기준 약 79억달러(약 8조원)에 달하며 연평균 7.9%포인트씩 성장 중이다.

실제로 영원아웃도어의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2019년부터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의류 제품을 꾸준히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9년 페트병 370만개를 재활용해 론칭한 ‘에코 플리스 컬렉션’은 인기에 힘입어 2020년에는 페트병 1080만 개를 재활용해 생산물량을 늘렸다. 지난 1월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삼다수(제주개발공사), 효성티앤씨 등과 함께 친환경 프로젝트 ‘다시 태어나기 위한 되돌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제주 지역의 자원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협약을 통해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삼다수는 제주에서 버려지는 국내산 페트병을 수거한다.

효성티앤씨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섬유이자 국내 최초로 제주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리젠 제주’를 공급한다. 최종적으로 노스페이스가 이 재활용 섬유로 의류, 가방 등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제작한다. 이와 함께 △윤리적 다운 인증(RDS) 도입 및 확대 △친환경 인공 충전재 개발 △전 제품에 대한 퍼 프리(FUR FREE) 적용에도 나서고 있다. 영원아웃도어 관계자는 “페트병 리사이클링 소재 적용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노스페이스 에코 플리스 컬렉션이 새로운 플리스 열풍을 이끌어냈다”라며 “앞으로 생산 공정, 포장, 마케팅까지 가능한 모든 영역에 걸쳐 친환경 구현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루이비통·알렉산더 맥퀸·코치 등 명품 브랜드들의 옷감 재사용

  • 갤러리아백화점이 최근 급 부상 중인 스니커즈 트렌드에 맞춰 프리미엄 리셀링 슈즈 편집샵 '스태디엄 굿즈'를 서울 명품관에 오픈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세계 유수 브랜드들도 ‘지속 가능한 패션 산업’을 위해 뛰고 있다.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선두주자격인 H&M은 기존의 노선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H&M은 지난달 새로운 지속가능성 콘셉트 ‘이노베이션 스토리즈’를 론칭했다. 그동안 ‘패스트 패션’이 ‘입고 버리는’ 제품으로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정면으로 승부하고 있는 것이다. H&M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바이오 기반 원사와 식물 기반의 가죽 대체재 등의 신규 소재를 사용했다. 이와 함께 리사이클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선글라스 등 다양한 액세서리도 출시했다.

명품 브랜드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루이비통은 2021년 봄·여름용 시즌 제품을 공개하며 앞으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전면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재고 소재를 활용한 업사이클 제품과 기존 디자인을 활용해 소재만 바꾸는 다양한 업사이클 패션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코치도 지속 가능한 소재로 제작한 아이템을 출시했다. 코치는 당근, 클로로필, 강황 등 100% 천연염료를 사용한 베지터블 태닝 가죽 또는 과거 컬렉션에서 사용한 소재를 조합하거나 가죽 조각 재사용 등을 통해 의류를 제작하고 있다. 브랜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패션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되짚어보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브랜드의 상징적이고 책임 있는 다짐을 담고 있는 시도”라고 밝혔다.

알렉산더 맥퀸은 영국 전역의 대학교, 전문 대학교, 지역 교육기관에서 패션 및 섬유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맥퀸 자사의 원단을 제공한다. 2019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이 옷감 등의 잔여 소재를 재분배해 창작 교육을 지원한다는 새로운 계획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많은 졸업 작품, 장단기 교육 과정, 워크숍에 맥퀸의 원단이 사용됐다. 올해도 역시 영국 내 다양한 교육 기관과 패션 교육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재고를 기부할 예정이다.

리셀 문화, ‘가치소비’ 확대로 연간 31조원대 시장

MZ세대의 ‘가치소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영역은 중고제품을 되팔거나 한정판을 웃돈을 얹어 되파는 ‘리셀(re-sell)’ 문화의 확대다. 나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MZ세대에게 명품은 여전히 인기다. 그러나 이들은 신제품이나 고가의 제품에만 눈을 돌리는 대신 레트로의 유행과 함께 단종된 과거의 명품을 찾거나 한정판에 눈을 돌리는 등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샤넬, 롤렉스, 스니커즈 등에 투자한다는 의미의 ‘샤테크’ ‘롤테크’ ‘스니커테크’ 등으로 불리며 신종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리셀 시장은 전세계에서 연간 31조원대에 이를 만큼 커졌다. 중고명품의 가치를 알고 있는 MZ세대는 중고 직거래 플랫폼이나 중고명품 전문 업체에 의뢰해 판매를 하고 수익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중고명품 거래 플랫폼 필웨이는 지난달 중고명품 판매대행 서비스를 정식 론칭한 이후 전체 서비스 이용자의 66.6%가 MZ세대로 집계될 만큼 MZ세대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샤테크, 롤테크 등 중고명품을 기반으로 리셀 문화가 MZ세대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특정 모델은 새상품보다 높은 가격 책정이 이루어지는 등 중고명품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인기 브랜드일수록 감가상각이 낮아 한정판이나 인기 모델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재테크로 각광받으며 MZ세대의 중고명품 사랑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백화점, “MZ세대 잡자”…리셀 시장에 공격적 투자

이같은 리셀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글로벌 중고거래 플랫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동남아 1위 중고거래 플랫폼 캐러셀에 750억원을, 지난 2월에는 스페인 1위 중고마켓 ‘왈라팝’에 1550억원을 투자했다. 롯데쇼핑은 300억원을 투자해 ‘중고나라’ 지분을 인수했다.

백화점들은 앞다퉈 중고 물건을 판매하는 리셀 매장을 론칭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 7일 프리미엄 리셀링 슈즈 편집숍 ‘스태디움 굿즈’를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명품관에 개점했다. 스태디움 굿즈는 미국 최대 규모의 리셀링 슈즈 매장 중 하나로 전 세계 스니커즈 마니아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2019년 영국 명품 패션 플랫폼인 파페치가 3000억원대 가격으로 인수해 미국 현지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에 문을 연 스태디움 굿즈에서는 일반 매장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희소성 있는 상품들을 판매한다. 특히 리셀 시장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나이키 에어조던1’의 다양한 시리즈들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최근 개장한 백화점인 ‘더현대서울’에도 한정판 스니커즈를 전시하고 재판매하는 매장인 브그즈트랩(BGZT Lab)이 입점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역시 MZ세대를 공략 지점으로 삼아 지난해 말 스니커즈 리셀숍 ‘아웃 오브 스탁(Out of Stock)’을 선보인 바 있다.

롯데백화점 등과 협업해 온 명품 전문 라이브커머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남윤희 씨는 “MZ세대들은 명품에 대해 ‘한정판’ ‘희소성’에 대한 추구 성향이 크다. 예를 들어 구찌 브랜드 중에서도 1990년대 톰 포드가 디자인한 구찌를 선호하는 마니아 집단이 있는 등 취향이 확실해지고 있다”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리셀 문화에 가치를 두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높이 사는 문화가 자리잡다 보니 특정 제품 컬렉터들이 많이 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케아, 리셀 문화를 지속가능성 추구하는 캠페인으로 승화

이러한 ‘리셀러’ 시장의 분위기를 재빠르게 감지하고 ‘지속가능성’ 에 대한 메시지까지 얹어 자사 캠페인으로 승화시켜 성공한 기업은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국시장 매출이 33% 늘어난 이케아는 지난해부터 친환경 경영의 일환으로 ‘바이백(buy-back)’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사용하던 이케아 가구를 이케아에 되팔면, 이를 이케아가 수선해 다른 사람에게 재판매하는 서비스다. 중고 가구가 약간의 수리 과정을 거친 후 할인가로 판매되는 것이다.

서비스 이용을 원하는 고객은 이케아 웹사이트 내 바이백 서비스 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견적도 받아볼 수 있다. 이후 이케아 매장 내 교환 & 환불 코너에서 담당 이케아 코워커의 제품 평가 과정을 거쳐 최종 거래 가격과 재판매를 확정하게 된다. 매입된 가구는 이케아 전 매장의 알뜰코너를 통해 합리적인 소비와 자원 순환을 추구하는 고객들에게 더 낮은 가격에 제공된다. 기업은 폐기 처분 대상인 가구를 생산성 있게 처리하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스템이다.

프레데릭 요한손 이케아코리아 대표는 “중고 거래는 더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릴 필요가 없게 할 뿐 아니라, 누군가 썼던 제품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며 “이는 쓰레기 감축 효과를 낳아 지구에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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