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주축 사무·연구직 노조 확산…정년 보장 대신 ‘공정한 보상’이 핵심

현대자동차 노사의 교섭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올해 들어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주축으로 대기업 성과급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신개념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다. 공정과 소통을 중시하는 MZ세대가 어느덧 기업의 핵심 실무 인력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일명 ‘사무직 중심’의 새로운 노조 문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대기업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부 대기업에서 역대급 실적에도 불구하고 임직원 간 성과급과 관련해 불공정 문제가 발생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또 정년 연장 등을 중시하는 생산직 노조의 협상방식으로 인해 사무·연구직 노동자의 불만이 누적된 사회상황과도 맞물렸다. 20~30대가 주축인 이들의 불만은 공정한 보상과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 주축 노조에 반기 든 MZ세대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에서 시작된 성과급 불만이 이제는 삼성, 현대차, LG 등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임직원들과 소통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쌓인 불만을 해소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사무직 노동자들이 생산직 노동자 위주의 기존 노조에 반기를 들면서 완전히 다른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우선 LG전자와 현대차에 사무직 노조 설립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노조는 기본적으로 MZ세대가 주축이 돼 회사뿐만 아니라 생산직 중심인 기존 노조의 협상방식에도 비판적이어서 더 큰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온라인 비대면 소통창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특성상 사무직 중심 노조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31일 공식 출범한 LG전자 사무직 노조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이하 LG 사무직노조)의 조합원은 이미 3000명을 넘어섰고 해당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회원수도 8000명을 훌쩍 채웠다. 이들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해 생산직과 별도의 임금 및 단체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LG 사무직노조는 “사무직 근로자의 정당한 권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교섭단위 분리가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의 물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교섭단위 분리라는 것이 쉽게 허가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자료와 증거를 기반으로 충분한 논리와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LG 사무직노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주장하는 성과 연동 및 경쟁력 강화 인상분은 연차에 따라 결정돼 개인별 차이가 크다”며 “향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 과정에서는 사무직 노조가 직접 교섭 테이블에 나서 교섭 당자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 직원들이 주축이 된 ‘HMG사무연구노조’(가칭) 임시집행부도 노무사·노무법인을 선정하고 2개사의 사무노조위원장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시집행부가 사무직 노조 가입 의사를 밝힌 현대차 직원 1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대의 76%가 압도적으로 찬성했고 20대가 12%, 40대가 10%, 50대가 2%를 각각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집행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회원수도 이미 4000명을 넘어섰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직과 사무·연구직 노동자 모두가 중요하다. 특히 각각의 직무상 구조 자체가 다른 데다 세대 간 문화 차이로 인해 회사에 원하는 조건 자체가 상이한 경우가 많다. 현대차의 경우만 봐도 우선 저연차 직원의 기본급 인상을 통해 사무·연구직이 받는 성과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노조와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노사 구도 뒤흔들 새로운 이익집단 탄생

다양한 불만과 요구사항이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대기업 내 MZ세대의 시선은 한국 사회에서 주축을 이뤘던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를 향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대기업의 생산직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사무직 노동자가 보다 공정하고 성과 중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MZ세대가 요구하는 핵심은 생산직 중심으로 편중됐던 기업 내 지분을 실제 성과 위주로 재편해달라는 것이다. 재계에서도 기성세대가 중요시 했던 정년에 대한 개념도 젊은 세대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 젊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수혈하고 또 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무대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박현미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노조 결성 움직임을 보이는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들은 자사 내 생산직 중심의 노조가 사측과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이나 성과급 등을 결정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봤다”며 “과거에는 대부분 한 기업에서 정년을 염두에 두고 근무를 했기 때문에 고용 안정이 핵심이었다면 최근 젊은 세대는 한 회사에서 끝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고 실제 회사가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는 경우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사무직 노조를 구상하고 있는 MZ세대는 기존 노조의 주축이었던 50~60대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을 넘어 공정을 대하는 룰 자체가 다르다”며 “이제 기업들도 다양성의 시대를 맞아 노동자가 과거보다 다원화됐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성과급 등의 노사 간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됐던 SK하이닉스의 경우 사측과 노조가 협상을 진행해 새 기준을 만들었다. 노조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MZ세대가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재계의 새로운 이익집단 탄생이 어쩌면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 연구직 직원은 “기존 노조운동, 노동운동 등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타파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물론 최근 노조운동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측면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제는 젊은 세대, 여성, 사무·연구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