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업계의 수요 예측 실패와 지구촌 기후변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 시간)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와 ‘여야 간담회’에서 반도체 인프라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아산공장, 쌍용차 평택공장에 이어 한국GM도 결국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부평1공장과 부평2공장의 생산을 중단키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탓이다. 한국GM의 가동 중단은 미국 GM 본사 결정에 따른 것이며 이미 반도체 부족으로 GM과 테슬라 북미 공장 등 전 세계 자동차 공장들이 멈춰서고 있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자동차업계에 이어 이제는 중국의 가정용 전자제품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소니 등 게임업계에서 반도체 품귀 현상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규모가 훨씬 큰 중국 가전시장까지 불길이 번지는 것이다.

반도체 대란, 내년까지 지속될 듯

일반적으로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비해 덜 복잡한 구조여서 이를 생산하는 기업이 많다. 이에 업계는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생산량 부족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예측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자동차와 게임 업계에 이어 이제 가전 업계까지 반도체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중국 대형 가전기업인 메이디 그룹의 발표를 인용해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자동차와 게임콘술업계를 넘어 중국의 방대한 가전 공급기업에서도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광둥성에 본사를 둔 메이디 그룹은 세계 최대 수준의 가전제품 생산기업으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을 주로 생산한다.

메이디 그룹은 발표문을 통해 “제조업계의 반도체 공급은 중국 가전산업에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가전제품 생산 차질이 전 세계 가전제품 시장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대란 여파가 가격 인상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최근 중국 스마트폰·가전 제조기업 샤오미도 반도체 부품 가격 상승을 이유로 일부 TV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일단 이 같은 중국 상황으로 인해 전 세계 반도체와 전자제품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품 생산 물량에도 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가전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에어컨과 TV의 3분의 2가량을, 전 세계 냉장고와 세탁기의 절반가량을 각각 생산하고 있다. 당장 글로벌 1위 가전기업인 미국의 월풀은 중국 생산량의 25%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자동차, 가전제품, 스마트폰은 물론 무기까지 들어갈 정도로 핵심적이면서도 중요한 부품”이라며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도 극단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내년까지는 전 세계 반도체 품귀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 바이든 “반도체 인프라 투자” 선언…기술패권 서막

미국에서도 반도체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 시간) ‘반도체 화상회의’와 ‘여야 간담회’에서 “여야 상·하원 의원 65명에게서 반도체 지원을 주문하는 서한을 받았다”며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조2500억 달러(약 2530조 원) 규모의 인프라 예산을 제시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도로, 건설 등 기존의 인프라 투자가 아닌 기술패권을 위한 인프라 투자 개념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19개 글로벌 기업이 화상으로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반도체 공급난으로 인해 미국의 자동차 생산 공장 조업 중단이 속출하고 전자제품 생산까지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글로벌 업계 의견을 듣고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만큼 반도체 부족 현상이 전 세계 산업계를 강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반도체 부족 사태는 업계의 수요 예측 실패에 기인한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피해를 입고 파격적인 감산에 돌입한 바 있다. 당시 상황으로는 차량용 반도체 구입량도 함께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반도체기업들도 자동차 분야보다는 비대면 활성화로 수요가 보장된 IT 등의 분야에 생산력을 집중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이후 갑자기 신차, 특히 전기차 주문이 급증하면서 결국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기후변화라는 복병이 반도체 생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 TSMC를 비롯해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통신사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만의 경우 현재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맞이해 저수량 고갈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에 대만 정부는 TSMC 공장이 있는 타이중현에 있는 주요 산업단지에 물 공급을 15% 줄였고 실제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 밖에 미국 전역을 덮친 한파로 큰 피해를 입은 텍사스주 삼성 반도체 공장도 전기·용수가 끊겨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고 있다. 차량용을 포함한 전 부문의 반도체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업계는 반도체 라인 자체가 부문별로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세부적인 조건이나 품질 테스트 방식 등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일부 장비들을 바꾸거나 신설하면 생산 품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차량용 반도체가 유독 품귀현상을 보이는 것도 코로나19로 자동차 수요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 하에 기존 차량용 반도체를 IT용으로 바꿔 생산했기 때문이다.

이지형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원은 “수요 예측 실패 및 재해와 사고로 인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완성차 생산에 영향을 주는 가운데 근본적 원인인 낮은 수익성·공급망 편중이라는 차량용 반도체산업의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미래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전장 시스템 제어를 수행하는 MCU 중심에서 AP와 같은 고성능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여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에서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