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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제 살 깎는 친환경 위장술 '그린워싱'

아모레퍼시픽 자회사 이니스프리 ‘종이병’ 사태가 대표적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전 세계에 부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열풍 속에 ‘가짜’가 섞여 있다. ESG경영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까닭에, 대다수 기업들은 속속 도입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부는 시늉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환경(E) 분야에서 이 같은 현상이 잦다. 이른바 ‘그린워싱’으로 불리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이는 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제품이나 기술 등에 ‘친환경’ 타이틀을 붙여 소비자에 혼란을 일으키는 ‘위장 환경주의’를 가리킨다. ESG 경영이 필수로 자리매김하고, 시민들의 환경 감수성 등도 커가는 가운데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친환경 눈속임…소비자 안 속는다
 
  • 이니스프리 페이퍼보틀의 친환경성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일었다.(사진=커뮤니티 갈무리)
지난해 12월 한국전력은 환경 문제에 관한 불분명한 노선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한전은 2년 연속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등 환경 친화적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추진 중인 신규 석탄 사업에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가짜 친환경’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이처럼 겉으로는 친환경 가치를 내세우지만, 이면에 반(反)환경적 요소를 감추는 모습을 그린워싱이라고 한다.
 
이 같은 그린워싱은 시민의 일상 속에도 침투해 있다. 아모레퍼시픽 자회사인 ‘이니스프리’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이달 초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지난해 6월 출시한 제품이 뒤늦게 환경위장술 논란을 낳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제품은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이다.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용기를 쓰면서, 업계에서는 획기적인 친환경 제품으로 홍보돼 왔다. 표지에도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병이야)라는 문구를 강조했다.
 
하지만 사달이 났다. 한 소비자가 해당 제품을 분리배출하기 위해 전부 뜯어보니, 종이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버젓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니스프리는 플라스틱 표면을 종이로 덧씌운 뒤 이를 ‘종이병’이라고 홍보해 온 셈이다. 이 사실은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니스프리는 “제품 이름 때문에 용기 전체가 종이로 오인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들의 눈총을 살 수밖에 없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종이를 덧씌운 것을 알았다면 친환경 제품이라는 홍보에 혹해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린워싱을 분별하는 작업도 점점 세밀해져 기업들의 꼼꼼한 대응이 필요하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지난 2월 본점 지하1층에 ‘에코스토어 리필 스테이션’을 개장했다. 뉴질랜드 친환경세제 브랜드 ‘에코스토어’와 손잡고 만든 곳으로, 친환경 세탁세제 등을 구매·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세제의 전용 리필 용기는 100% 재활용 되는 사탕수수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던 신세계의 마케팅은 세제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탄소발자국을 늘려 국내에 운반된 제품을 친환경으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세제의 성분이 비교적 환경 친화적이고, 리필이 가능하다는 점만 놓고 친환경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환경 문제를 촉발한 원인은 과도한 탄소배출인데, 수입하는 과정에 드는 에너지와 발생되는 탄소의 양이 상당하다는 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성분, 그리고 플라스틱을 덜 쓴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물품 전량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ESG에서 특히 중요한 ‘환경’
외면했다가는 기업가치 훼손
 
  • ⓒhttps://www.emaze.com
그린워싱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ESG 경영 중 환경 부문의 중요도는 소비자들의관심이 특히 높아졌기 때문에 생색내기 꼼수를 부리는 기업들을 향한 감시의 눈초리가 확산되는 이유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ESG에 기반한 투자가 가장 활발한 분야가 환경이다. 블룸버그와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녹색채권의 발행 규모는 1752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전체 ESG채권 시장의 63% 수준이다.
 
국내에서도 환경 분야가 ESG에서 가장 주력해야 할 분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월 15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전경련이 설문을 통해 ESG의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서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은 절반을 훌쩍 넘는 60.0%로 가장 많았다. 사회와 지배구조가 중요하다는 의견은 각각 26.7%와 13.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워싱은 기업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트리고, 나아가 기업의 이미지 및 위상 하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서다. 송유진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기업의 그린워싱을 인식했을 경우, 제품은 물론 브랜드에도 부정적 감정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연구로 확인됐다”며 “요즘 소비자들은 소위 ‘가치소비’ 등을 중시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그린워싱 행위를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소비자들은 친환경 제품이라면 다소 비싸더라도,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를 하는 경향이 짙다”며 “그러나 그린워싱 사실을 알게 되면 ‘기만을 당했다’는 식의 격한 감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은 단기 홍보효과를 노리고 친환경 마케팅을 할 게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실제 환경 친화적이라는 근거를 갖춘 제품을 내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K-택소노미’ 등
체계적 평가 기준 마련
 
  • 환경부
해외처럼 그린워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은 ‘녹색산업 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를 마련 중이다. 택소노미는 기후변화 완화와 오염물질 배출 방지 및 관리 등 환경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올해 상반기 안으로 최종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제사회에서는 매우 정교한 체계가 수립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K-택소노미’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 환경부가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지난 12일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의 개정안을 공포했다. 환경책임 투자의 지원과 활성화를 위해 지속가능한 녹색경제 활동 여부를 판단하는 ‘녹색 분류체계’를 마련하고, 기업의 환경적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표준 평가체계를 구축하는 게 골자다. EU 등 해외사례를 고려해 국내 실정에 맞는 체계를 올해 상반기 중에 마련할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 성과 평가와 관련하여 민간평가 기관의 평가지표 및 평가방법론 분석을 토대로 표준 평가 가이드라인을 올해 상반기 중으로 마련할 것”이라며 “이러한 환경책임 투자 제도화를 시작으로 환경부가 ESG에서 환경 분야를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환경 분야에서 체계적인 환경책임투자 기반을 마련, 녹색산업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탄소중립을 앞당기는 데에도 기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chesco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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