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지원방안 수립할 것”, 홍 부총리 “총력 대응”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혼란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 상황이 계속되자 우리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각종 지원을 약속한지 하루 만에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단기사업 지원 및 메모리반도체 연구개발(R&D) 세액공재 등이 거론됐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됐던 인재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도 머리를 맞댄 상태다. 업계에서는 대책이 늦게 나온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지속가능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책 늦었지만…
인재 확보 해법도 같이 찾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우리가 계속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각종 지원 방안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는 반도체 등 국내 주력 산업분야의 대응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긴급 소집했다고 알려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관계부처 수장을 비롯해 이정배 삼성전자 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등 기업인들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국내외 반도체 시장이 그만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감산을 이어 온 반도체 업계는 예기치 않은 중국발 수요 증가, 그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자국 중심주의적 반도체 공급망 재편 등으로 위기감이 높아졌다. 반도체 시장이 강대국들의 총성 없는 전쟁터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연합(EU)과 일본 및 대만 등도 정부 주도의 반도체 지원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 와중에 안일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도체가 국내 총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국가 기간산업이지만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책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발표한 2014년~2018년 통계에서 우리 정부의 반도체 기업 지원규모는 세계 꼴찌 수준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론과 퀄컴 등 미국 기업의 매출 대비 정부 지원금액 비중이 통상 3%대, SMIC 등 중국 기업이 대개 4~6%대인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0.8%, 0.6%에 그쳤다.
‘부랴부랴’ 지원 나선 정부
세액공제 등 검토 시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기획재정부)
강대국들의 반도체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국가적 지원에 나서는 현실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늦게나마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원방안 수립’을 약속한 다음날 홍 부총리가 예산 지원 등을 거론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홍 부총리는 지난 16일 서울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에서 열린 제8차 혁신성장 BIG3(미래차·바이오헬스·시스템반도체) 추진회의 모두발언에서 “시스템반도체·미래차 부문 경쟁력과 글로벌 시장 점유를 위해 정부·기업 모두 촌각을 다투는 총력 대응이 긴요하다”며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통해 수급 안정 협력 과제를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 발언에서 보듯 정부는 미래차 등 차세대 산업과 관련한 반도체 사업을 돕겠다는 구상이다. 단기 방안과 중장기 대책을 따로 내놓을 것임을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올해 4~5월 중에는 단기간 사업화가 가능한 품목을 발굴해 '소재·부품·장비' 사업을 우선 지원하고, 내년에는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어 “중장기 차량용반도체 기술개발 로드맵도 수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모리 반도체 지원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홍 부총리는 같은 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해 “기업의 R&D 세액공제 대상에 메모리 반도체 설계·제조 기술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세제혜택 등에 있어서도 국내 반도체 기업이 해외보다 불리하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의 투자 규모에서 최대 40%를 세금에서 깎아준다. EU는 투자의 20∼40%를 보조금으로 돌려주기로 올해 초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법인세(명목세율 25%) 수준에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시설투자세액공제의 경우는 3% 수준에 그친다.
지속가능한 ‘반도체 특별법’ 제정될까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해 국내 반도체 업체의 불확실성이 가중됐다. 사진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정부가 이처럼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업계에서는 반신반의하는 시각도 엿보인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지원규모와 세제혜택 등은 수년 전부터 건의돼 온 사항인데, 글로벌 패권전쟁이 가시화한 이제야 대응에 나선 것은 ‘대증요법’에 그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무엇보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가장 커다란 위기감은 자본력보다는 인재부족에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 등 사회의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만 개선이 가능한 사항이다. 반도체 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미흡한 지원에 더해 고급 전문 인력마저 부족한 데다 인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도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공대나 소프트웨어 분야의 학생 수가 줄다 보니,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는 학생들과 교수진도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당장 정부는 인력양성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4일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 설계지원센터 등 인력양성 인프라를 구축해 차세대 반도체 실무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을 집중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올해부터는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등 반도체 기업 채용연계 계약학과가 신입생을 선발함으로써 운영을 본격화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도 기대하는 눈치다. 성윤모 산자부 장관은 같은 날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학생과 교수진을 만나 “인력양성을 포함한 반도체 업계 요청사항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국내외 반도체 산업의 여건과 타국 입법동향 등을 감안한 반도체 특별법 제정도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