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선점, 지자체 보조금 소진…국내 전기차 구매자 혜택 못 받을 수도

지난 14일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방향 화성휴게소에서 열린 현대차 초고속 전기차 충전서비스(E-pit) 개소식에서 아이오닉5와 EV6 충전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올해 국내 전기차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전기차 보조금 소진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경부의 올해 전기차 보급 목표가 7만5000대인 상황에서 지자체 예산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해져 있는 보조금 한도가 다음 달 테슬라의 신차 출고로 빠르게 소진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대차 아이오닉5 사전계약이 4만대를 돌파한 상황에서 이미 계약을 하고도 차량 인도가 늦어져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하는 구매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모터와 차량용 반도체 등 일부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당초 계획보다 생산량이 4분의 1로 뚝 떨어져 차량 출고가 늦어지고 있다.

보조금, 선착순 아닌 분기별로 지원돼야

국내 전기차 구매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보조금 정책과 생산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전기 승용차 7만5000대에 대당 1100만~19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지난해 전기차 등록 대수 3만1000여대보다 두 배 이상 많게 책정했지만 전국 지자체가 지방비로 편성한 예산은 4만5814대 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아이오닉5는 사전계약에서 4만대를 돌파했고 기아 EV6는 3만대에 육박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를 전기차 시대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순수 전기차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국내 전기차 구매자도 급증하고 있고 정부와 지자체의 전기차 보조금은 그 기세에 불을 붙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외적으로 반도체와 부품 수급난이 있었고 현대모비스 생산설비 라인 문제도 있어서 당사 전기차 생산라인의 일시 중단이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보조금은 차량이 출고되는 시점에 지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려가 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아이오닉5의 경우 출고 가격이 차종에 따라 4900만 원에서 5400만 원선이다. 전기차 보조금이 적용되면 3000만 원대 후반이면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구매자 입장에서 원가를 주고 차량을 구매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문제는 선착순 방식으로 지급하는 전기차 보조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있다. 아이오닉5 계약이 확정된 구매자는 지난 21일부터 지자체에 보조금 신청을 할 수 있고 대상자로 선정된 후 2개월 안에 차량을 인도받으면 보조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올해 보조금을 신청받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접수가 폭주하고 있다. 서울시 접수율은 75%, 부산시는 56%에 달해 전기차 출고가 늦어질수록 보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미리 접수한 대다수 구매자는 테슬라 구매자로 파악된다. 테슬라 구매자들이 먼저 차를 인도받기 때문에 보조금을 선점할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아이오닉5 등 국내 전기차 구매자들은 보조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업계 차원에서도 전기차 보조금이 현행 선착순 지원이 아닌 분기별 지원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전기차가 급격하게 대중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 지원정책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계약 취소 움직임 포착…추경예산 절실

테슬라는 빠르면 이번 달 말부터 구매자에게 모델Y를 인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지난 1~2월 38대로 주춤했지만 지난달에는 3194대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모델3에 이어 모델Y까지 본격적으로 가세하면 판매대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테슬라는 전기차 보조금을 적용받기 위해 모델3 롱레인지의 가격을 6479만 원에서 5999만 원으로 인하했다. 환경부가 지난 2월 발표한 보조금 개편안에 따르면 차량 가격이 6000만 원 미만은 보조금 100%, 6000만 원을 넘으면 50% 구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초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이 전기차 보조금 정책으로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테슬라의 가격 인하 정책과 전기차 보조금 소진이라는 변수가 발생했고 무엇보다 현대차 등 국내 전기차 생산기업들의 생산라인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한 것이 소위 ‘전기차 보조금 대란’이라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와 국내 기업들의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시그널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됐고 실제로 폭발적인 전기차 구매 열풍이 불고 있다”며 “하지만 전기차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선착순 방식의 보조금 지원정책이 오히려 국내 기업들과 국내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게 된다면 빠른 정책 변경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지자체 보조금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는 올해 지급할 국비 보조금은 이미 확보한 상황이고 지자체 보조금 전액 확보를 위해 지자체와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 지자체별로 보조금 쏠림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별 수요와 보조금 확보현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해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부의 대응에도 상당수 전기차 구매자들은 지자체 보조금을 받을 확률이 낮고 추경 편성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기존 사전계약을 취소하고 테슬라 등 다른 전기차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산 전기차를 사전계약한 한 구매자는 “국비 보조금은 마련됐지만 지자체 예산인 지방비 보조금은 보급 목표의 70%만 확보된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추경예산 확보를 한다고는 하지만 의회에서 승인도 필요할 텐데 보조금이 소진되기 전에 차량을 인도하지 못하면 사전계약을 취소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