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NXP인수설…총수 부재는 리스크 요인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K-반도체’의 초격차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정부가 직접 나서 반도체 ‘새 판 짜기’에 나선 탓이다. 이에 우리 정부 역시 각종 지원책 마련에 힘쓰기 시작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투자 계획에도 관심을 쏟는 모양새다. 여러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속속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워가는 추세를 감안하면 삼성전자도 대형 M&A를 통해 시장 지배력 확대를 노리지 않겠냐는 시각에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M&A 대상으로 몇몇 글로벌 기업들이 거론 중인 상황이기도 하다.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한 위기 속에서도 삼성전자가 공격적인 M&A에 나설지 관심이 더해지고 있다.
반도체 기업결합 심사, 국내서만 5건
공정거래위원회.(사진=연합뉴스)
올해 들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계속 격랑에 빠져들고 있다. 미래 산업의 ‘쌀’로 비유되는 반도체의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에 기업뿐 아니라 각국 정부마저 직접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특히 미국이 자국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하려는 의지까지 내비치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행보는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다. 정부가 반도체 부품의 중국 수출을 막는 등 강력한 대(對)중국 제재를 펼치는 속에서,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해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인텔이 지난 3월 200억 달러(약 22조6000억 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힌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까지의 M&A 상황만 봐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위 기업인 미국의 마이크론과 함께 웨스턴디지털이 일본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의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키옥시아는 세계 낸드플래시 공급 2위 업체다. 지분 인수가 현실화할 경우 세계 반도체 업계는 판도가 뒤바뀔 수밖에 없다.
또 미국 반도체 기업인 AMD가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1위 업체인 자일링스의 인수를 코앞에 두고 있다. 현재 기업결합에 관한 심사가 진행 중이다. AMD는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최강자로 불리는 엔비디아의 유일한 라이벌로 꼽히는 곳이다. 자일링스의 FPGA 시장 점유율은 50%를 웃돌고 있다.
이밖에도 반도체 기업의 M&A 추진은 활발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당장 국내에서 진행 중인 기업결합 심사만 5건이다. AMD의 자일링수 M&A건에 더해 ▲아날로그 디바이스(미국)의 맥심(미국) 인수 ▲글로벌 웨이퍼스(대만)의 실트로닉(독일) 인수 ▲SK하이닉스(한국)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미국) 인수 ▲엔비디아(미국)의 ARM(영국) 인수 건 등이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8%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인수금액이 10조원을 넘는 대규모 인수합병이 다수 진행되고 있다”며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는 기업결합에 대해서는 관련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심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정위는 이중 해외기업 간 결합인 맥심, 실트로닉 인수 건 등 2건에 대해서는 최근 심사를 완료했다.
NXP 이어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인수
삼성 서울 서초 사옥.(사진=연합뉴스)
반도체는 차세대 산업의 필수 요소로 꼽힌다. 때문에 최근의 반도체 시장 M&A 경쟁은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이 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ARM에 대한 M&A는 영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될 수도 있다. 영국 정부가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며 자국 경쟁시장청(CMA)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토록 했다고 한다.
지난 19일(현지시간) WSJ에 따르면 올리버 다우든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은 “영국 기술산업의 번영을 지원하고 외국의 투자를 환영하고 싶지만, 이번 거래는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 적절성을 두고 영국 정부가 부정적 기류와 함께 매우 까다로운 잣대를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각국 정부와 기업이 반도체 시장의 M&A에 열을 올리다 보니, 국내외의 시선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에 쏠렸다. 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대형 M&A가 다수 추진되는 까닭에, 삼성전자 역시 초격차 유지를 위해서는 대규모 M&A 투자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M&A는 통상 대외비인 만큼 삼성전자는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세계 2위 기업인 네덜란드의 NXP에 대한 삼성전자의 인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Barron’s)는 지난 27일 JP모건 애널리스트 말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미국에 기반을 둔 차량용반도체 회사를 찾고 있다”며 NXP를 언급했다. NXP의 본사는 네덜란드에 있지만 미국 텍사스주와 애리조나주에 주요 생산라인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NXP 인수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이전부터 관련 분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미국의 반도체 회사 퀄컴은 440억달러(약 50조원)에 NXP를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NXP는 오히려 삼성전자에 협상 의사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초격차를 선언, 약 133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2019년 밝힌 바 있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까지 대규모 M&A 투자가 없었다는 점 역시 NXP 등에 대한 인수설에 힘을 보탠다. 여러 외신과 JP모건 등의 분석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NXP외에도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스 등을 M&A 대상 후보로 보고 있다.
단 이 부회장의 부재는 악재로 거론된다. 오너 없이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힘든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수백 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액이 한 번에 집행되는 게 아니다”며 “최선의 시점에 최선의 금액을 넣는 ‘호흡조절’이 관건”이라고 전했다. 이어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통 큰 결단’보다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행보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