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한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지난달 30일까지 금융당국에 신고한 가상화폐 거래소는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은 이날 오전 국내 가상화폐 주요 4대 거래소 중 하나인 빗썸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투자자는 보호해 줄 근거가 없다며 보호에는 발을 빼고, 돈은 벌었으니 세금을 내라구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암호화폐 관련 발언에 격분한 한 청원인이 은 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국민청원글을 올리며 한 발언이다. 지난달 23일 게재된 이 청원글은 일주일만에 약 15만건의 동의를 얻고 있다. 정부의 갈지(之) 자 암호화폐 정책을 놓고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지는 현상을 대변해주고 있다.

최근 연일 20조원대를 넘긴 국내 암호화폐의 하루 거래 규모는 지난달 23일에는 28조4375억원을 기록, 코스피 거래대금(15조3876억)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국내 게임회사로는 처음으로 시가총액 30조원을 넘긴 넥슨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인수를 추진하며 비트코인 113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사이트 코인베이스는 시가총액 653억9000만달러(약 72조5175억원)를 기록하며 나스닥에 상장했다. 페이팔, 마스터카드, 테슬라같은 글로벌 기업도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채택했다.

이처럼 갈수록 커지고 다양화되는 암호화폐 시장의 규모와 영향에는 아랑곳없이 정부는 암호화폐 열풍이 불기 시작한 3년 전과 똑같이 ‘암호화폐 불법’ 기조를 고수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암호화폐 정책, 기준 없이 불법행위 단속에만 집중

정부는 현재 암호화폐와 관련해 일정한 기준을 세우기보다는 관련 부처들이 불법 행위 등을 위주로 단속에만 몰두하는 중이다. 선진국들은 속속 암호화폐를 규정하는 법 체계나 관리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단속에만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가상자산 투자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한 은 위원장의 발언과 같은 취지이다.

이같은 인식 아래 암호화폐와 관련해 정부가 대응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면 우선 관련 부처가 분산돼 있어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 먼저 국무조정실에서 암호화폐와 관련해 전반적인 총괄 감시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 불법송금 등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관련해서는 기획재정부가 맡고 있다. 자금 세탁과 의심 거래 신고, 암호화폐 사업자 등록은 금융위원회(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담당한다. 하루에만 수십조원 대 거래가 이뤄지지만 금융당국에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관리 자체가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특금법 개정·암호화폐 과세 도입했지만…

법제화를 살펴보면 지난 1년 간 정부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 시행과 암호화폐 과세를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에 과세하는 정책에 대해 그동안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은 위원장의 발언 등을 통해 부정적인 입장으로만 일관하며 제도권 안에서 보호할 수 없다는 원칙만 강조하자 정부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개정 특금법은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에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신고제 도입이 핵심이다. 기존 암호화폐 거래소는 오는 9월말까지 FIU에 신고해야 합법적인 영업이 가능한데 이를 위해서는 은행 실명계좌 확인 등의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때문에 현재 실명확인 계좌를 보유한 거래소는 200여개 업체중 4곳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최근 은 위원장이 “가상화폐 거래소가 200개가 있지만 다 폐쇄될 수 있다”는 등 강경 발언을 거듭하자 은행들은 실명계좌 확인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암호화폐 업계, ‘가상자산업권법’ 도입해달라

이에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가상자산업권법’이라도 제정해달라는 입장이다. 업권법은 특정 업종의 근거가 되는 법으로 금융법 개정 등을 통해 암호화폐 사업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도 정부의 암호화폐 정책에 대해 정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신산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지난달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상화폐업권이 자율적으로 일정한 자산과 이용자 보호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고, 필요한 정보를 보관o보고하도록 하는 업권법을 마련해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