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추구하는 조직이 강하다'라는 2002년 출간된 책이 있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 환경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경영 매뉴얼이라고 소개돼 있다. 기린(주류, 우두머리들)과 코끼리(비주류, 피고용인)의 우화를 통해 다양성의 불협화음이 기업 내에 다양성,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상호 적응 과정임을 보여준다.

구성원이 너무 이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돼 있으면, 조직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팀워크가 잘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으로만 구성된 조직 또는 같은 지역 출신들로만 구성된 조직 등처럼 너무 동질적인 사람들만 많이 모여 있으면 편향적인 사고(思考)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조직에 긴장도가 떨어지고 역동성이 부족해진다. 구성원들이 다수의 문화에 속하는 행동 방식만 따르게 되면 그들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모든 구성원이 각자 본래의 모습을 강점으로 인정받을 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조직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다양성 문화를 조성하는 게 매우 당연하게 인식돼 있다. 대부분 글로벌 기업들은 매년 다양성 보고서(Diversity Report)를 발행한다. 여성과 남성 비율은 물론 인종과 국가 출신 비율을 공개하고 장애인 평등지수와 같은 것도 발표한다. 지표별 목표를 정하고 현재 진행 상황을 공개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상당수 기업들이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또는 ESG 보고서를 발행하지만 다양성 보고서를 따로 내는 곳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 기업들은 ESG 보고서에 남성/여성으로 나눠 여성 비율, 여성 관리자 비율 등 직원 현황을 공개한다. 하지만 인종, 국적, 장애, 성소수자 등과 관련한 지표들은 거의 없다. 한국거래소가 올해 1월 발표한 'ESG 공개 가이드라인'에도 평등 및 다양성 항목에 성별·고용형태별 임직원 현황만 들어가 있다.

많은 ESG보고서를 검토한 것은 아니지만 네이버가 여성 비율 뿐 아니라 외국인 직원 수와 장애인 고용, 국가보훈자 고용을 공개하는 게 그나마 나은 정도다. 네이버는 이에 더해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국제표준에 따라 SASB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의 포용성 항목에서 여성 비율, 여성 관리자 비율 뿐 아니라 국적별 임직원 수도 공개한다. 2020년 기준 미국 8명, 중국 4명, 일본 3명, 캐나다와 프랑스 뉴질랜드가 각각 2명, 대만 독일 스웨덴 아르헨티나 영국 오스트리아 타지크공화국 호주가 각각 1명 등 총 29명이다.

또 금융·기업 데이터 제공업체인 레피니티브(옛 톰슨로이터)가 전세계 90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평가한 '글로벌 다양성·포용성 지수' 100위 내에 들어간 국내 기업은 지난해 한국가스공사가 유일했다. 아시아 기업 중 일본이 소니, 시세이도, 노무라 등 3개, 말레이시아 3개, 싱가포르 2개인 것과 대비된다.

국가 전체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마틴경제발전연구소가 개발한 글로벌창의성지수(Global Creativity Index)를 보면 한국은 2015년 기준 관용 부문에서 70위에 불과하다. 이 지수는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관용(tolerance)이 높은 지역에 인재(talent)가 모여들어 기술(technology)이 발전한다’는 ‘경제발전의 3T이론’에 기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 지수는 1위(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 3위, 100만명 당 특허 출원 수 1위)인 반면, 인재 지수는 50위, 포용성 지수는 70위였다. 특히 인재 지수에서는 전체 인구 중 대학 졸업 또는 재학 인구 비중을 따지는 교육 수준은 1위였지만, 전체 인구 중 과학, 문화. 비즈니스, 교육 등 창의성을 요하는 직업의 근로자 비중을 따지는 창의성 집단 비중 78위로 하위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집단, 가장 혁신을 잘하는 집단은 어디일까. 한때 1950~1960년대에는 미군과 함께 훈련하고 운영 체계를 배웠던 '군대'이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경제개발시대에 큰 역할을 했던 '정부 관료' 또는 '대기업'을 꼽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세계 시장의 무한 경쟁에 노출된 글로벌 기업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폭발적인 한류 대유행을 이끌어 온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출산율이 0.84명으로 사상 첫 인구 자연 감소를 경험했다. 일본에서 단카이 세대(전후 베이비붐으로 1955~1963년에 출생한 사람들)가 대규모로 은퇴하면서 인력 부족현상이 벌어졌듯이 우리나라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반 기업이나 다른 조직들에서 당장 외국인 직원들을 채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사회가 앞으로 그럴 수 있는 조직 환경,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한 일인 듯하다. 3D업종에 외국인 산업연수생만 받을 게 아니라 사무직에서도 괜찮은 외국인 직원들이 늘어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가 10만명 수준으로 늘었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도시에서 밤늦게 돌아다녀도 될 만큼 치안이 좋은 나라, 낮은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나라, 한류로 세계 각국을 휩쓰는 엔터테인먼트의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그래도 동경할 만한 나라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혁신적인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다양성이 받아 들여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데 좀 더 기여했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팔고 있다.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해야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얻고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파이팅!



정재형 여시재 자문위원 test@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