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18년
히트작 힘입어 1조클럽 달성 이후 연이은 악재로 눈물의 사퇴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눈물의 사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홍 회장은 지난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열린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공식화했다. 자사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지 3주 만이다.

홍 회장의 눈시울은 기자회견 내내 붉어져 있었다. 간간이 울먹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그에게서 당당한 수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홍 회장은 3차례나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회장직에 오른 지 18년 만에 결국 홍 회장은 불명예 퇴진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홍 회장의 임기 중 남양유업은 다사다난했다. 2009년 남양유업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 클럽’(연 매출 1조원을 넘는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계열사가 없는 단일 식품기업으로서 쉽지 않은 성과였다. 그후 남양유업은 10년간 1조 클럽을 수성했다. ‘맛있는 우유 GT’,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17차’ 등 여러 히트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양유업의 위기는 내부에서부터 시작됐다. 잇단 효자 상품에 의지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 2019년 홍 회장의 외조카인 황하나 마약 투약 논란, 지난해 온라인 댓글 조작 사건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남양유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에 빨간불이 켜졌다. 갑질 사건에 따른 불매운동으로 2013년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 그 이후 여파가 이어져 지난해에는 1조 클럽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다. 그 사이 불매운동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불가리스 사태 ‘사과 없는 사과문’에 여론 격분
불가리스 사태에 대한 남양유업의 공식 사과문은 ‘사과 없는 사과문’이란 비난을 받으며 불매운동을촉발시켰다. 남양유업은 “소비자에게 코로나 관련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 죄송하다”면서도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저감효과를 부인하지 않았다. 남양유업은 “금번 세포실험 단계 성과를 토대로 동물 및 임상 실험 등을 통해 발효유에 대한 효능과 가치를 확인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판매 중인 남양유업 불가리스. (사진=연합뉴스)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효과 연구에서 77.78%의 저감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항바이러스 면역 연구소와 충남대 수의과 공중보건학 연구실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다. 하지만 항바이러스 면역 연구소가 지난 2월 남양유업이 출범한 연구기관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양유업은 ‘셀프 실험’, ‘셀프 연구’, ‘셀프 발표’ 등 소비자들의 비아냥을 샀다.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반박했다. 질병관리청은 "특정 식품의 코로나19 예방 또는 치료 효과를 확인하려면 사람 대상의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며 "인체에 바이러스가 있을 때 이를 제거하는 기전을 검증한 것이 아니라서 실제 효과가 있을지를 예상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연구 발표를 순수 학술 목적이 아닌 자사 홍보 목적으로 보고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 3일 사의를 표명한 이광범 대표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이날 이 대표는 사내 이메일을 통해 "최근 불가리스 보도와 관련해 참담한 일이 생긴 것에 대해 임직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유의미한 과학적 연구성과를 알리는 과정에서 연구의 한계점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해 오해와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불가리스 논란을 단순한 ‘오해’로 일축시킨 것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퇴와 사과가 엇박자 나고 있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거듭된 이미지 추락...재기 도모 가능할까 관심 쏠려
남양유업의 이미지는 불가리스 논란에 이르기까지 오랜기간 추락해왔다. 2013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본사 영업사원의 욕설·막말 녹취록은 흑역사의 신호탄이었다. 녹취록에는 본사 직원이 지역 대리점에 폭언을 일삼으며 ‘물건 밀어내기’(강매)를 하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남양유업은 본사 갑질에 항의하는 대리점과 계약해지를 하는 무리수를 뒀고 이는 남양유업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오너 일가의 비위 혐의도 남양유업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2019년 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의 외손녀 황하나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자 남양유업은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그해 홍 회장은 "외조카 황하나가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숙여 사죄한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오너 리스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2019년 홍 회장은 남양유업 임직원 6명과 홍보대행사 직원 2명 등과 함께 온라인 카페 등에 경쟁사 매일유업을 비방하는 글과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홍 회장의 장남인 홍진성 상무도 지난달 회삿돈을 유용한 의혹으로 보직이 해임된 상태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결국 홍 회장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2013년 회사의 밀어내기 사건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온라인 댓글 등 논란들이 생겼을 때 회장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서 사과 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며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잇따른 대형악재와 소비자의 불신, 오너의 부재 등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남양유업이 재기를 도모할 수 있을지, 도모한다면 어떤 방법을 택할지 등이 유통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