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규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인터뷰]

송인규 교수 "외국은 기관투자가·대기업들이 암호자산 시장 주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산업위)를 신설, 이를 대통령령으로 정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4차산업위의 설립 목적은 경제성장과 사회문제해결을 함께 추구하는 포용적 성장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2019년 위원회가 내놓은 대정부 권고안은 정부가 과연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비트코인 모형 모습(사진=연합뉴스)

‘4차산업위’ 왜 만들었나...정부, 논의 없이 무조건 ‘반대’
4차산업위는 권고안에서 “암호자산 투기 열풍을 막기 위한 정부의 필요불가결했던 억제 정책에, 블록체인 및 암호자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마저 줄어들고 있다”며 “정부는 글로벌 경쟁력 관점에서 기술 활성화와 암호자산 제도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블록체인뿐 아니라 암호자산 역시 이미 세계적인 금융, IT 대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며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암호자산과 관련된 제도는 공백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4차산업위는 “암호자산에 대한 법적 지위를 조속히 마련하고 이에 대한 조세, 회계 처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관련 스타트업의 규제 샌드박스 진입을 적극 허용해 ‘선시도 후정비’의 규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4차산업위 권고안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정부는 글로벌 경쟁력 측면의 논의는 배제한 채 한 목소리로 암호자산을 단호하게 배격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가상자산을 자본시장육성법에서 정한 금융투자 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위원회의 의견”이라며 “자본법상 규제나 보호의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라며 제도화에 선을 그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암호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고 가상자산이기에 (제도권 금융 안으로)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국민이 많이 투자하고 관심을 갖는다고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은 안한다”고 말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15일 “(암호화폐는) 내재 가치가 없고, 지급 수단으로 쓰이는 데 제약이 크다는 건은 팩트(사실)”라며 암호화폐를 저평가했다.

송인규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가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블록체인투자연구소에서 주간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혜영 기자 )

가상화폐, 암호화폐, 암호자산...혼재된 용어
4차산업위의 권고와 정부의 대립에 대해 송인규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논쟁에 앞서 용어를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며 “엄밀히 말하면 가상화폐, 가상자산, 암호화폐, 암호자산 등은 모두 다른 의미”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블록체인 전문가로 손꼽히는 송 교수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기관 투자자, 대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블록체인과 투자’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송 교수는 암호화폐보다 암호자산이란 용어가 현 상황에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암호화폐가 화폐적인 성격보다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암호자산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는 “멤버십, 마일리지뿐 아니라 달러, 주식, 금도 암호화폐로 바뀔 수 있다”며 “암호화폐의 실물 같은 성격 때문에 암호화폐보다 암호자산이 현 상황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본의 규정과 유사하다. 일본은 두 차례에 걸친 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을 암호자산이란 용어로 변경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가상자산을 가상통화로 명명함으로써 지불·결제의 수단, 즉 화폐적 성격을 인정했다. 이후 2019년 가상통화를 투자 대상으로 판단하면서 암호자산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암호자산을 투자 대상은커녕 화폐로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홍 부총리는 “한국 정부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쓴다”며 “(가상자산은) 화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암호자산으로 결제가 가능한 매장은 카페, 편의점, 서점, 영화관, 피자가게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한편 4차산업위는 “우리나라는 암호자산 관련 범죄 및 소비자 피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글로벌 블록체인 및 암호자산 산업에서 경쟁력 우위를 잃어 가고 있는 듯하다”며 “해외 정부와 기업들은 빠른 공조 속에 저만치 앞서갔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를 통해 우리나라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의 현황과 문제점,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3일 오후. 1시 45분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뜬 이더리움 실시간 거래가 현황.(사진=연합뉴스)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은 어떤 관계인가.
“블록체인은 제3자(중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익명의 당사자들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암호자산은 거래의 대상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암호자산 투자 외에 블록체인은 어떤 영역에서 활용되는지.
“블록체인은 음악, 미술, 영화 등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데도 쓰인다. 이로 인해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주고 받는 것은 가능하지만 복제는 불가능해진다. 또한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와 사물인터넷 세상에서 활용도가 높다.

그런데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에 암호자산은 필수적이다. 우선 디지털 콘텐츠는 암호자산으로 발행돼 판매되고 있으며 가상 세계에서 거래를 하려면 암호자산으로 결제해야 한다. 또 사물인터넷 세상에서 사물과 거래할 수 있는 수단도 암호자산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는 암호자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
“지금 암호자산 시장이 과열인 것은 분명하고 개별 종목에 거품이 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암호자산 세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사업 경쟁력 없이, 투자에만 의존하고 있는 종목들은 사라질 것이다.”

-금융당국의 암호자산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하다.
“돈은 국가 권력의 상징 같은 것이다. 민간에서 돈을 발행하면 국가 권력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암호자산의 거래량은 이미 코스피 거래량을 추월하고 있다. 또 지난 3월 말 케이뱅크의 고객 수는 391만명으로 3개월 전보다 172만명이나 증가했다. 이같이 고객 수가 급증한 것은 암호자산거래소 업비트와의 계좌 발급 제휴 때문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매우 큰 규모로 암호자산 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일본의 경우엔 2017년 자금결제법을 개정하면서 암호자산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했고, 지난해에는 금융상품거래법도 개정해 레버리지 한도 등 금융상품화의 근거를 마련했다. 미국은 지난 4월 자국 최대 암호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나스닥 상장을 허용했다. 또한 싱가포르는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이 합법화돼 있다.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싱가포르에 가서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에 돌아와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다. 스위스에는 추크(zug)라는 작은 마을이 금융시장감독청(FINMA)의 지원 하에 크립토밸리(암호자산 도시)로 거듭났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글로벌 사회에서 (블록체인과 암호자산과 관련해) 한국은 후진국이다. 법·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고 암호자산을 불법화하고 있는 정부정책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부터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다. 자금세탁방지가 주 목적인 법률이기 때문이다.

또 특금법이 정의하는 가상자산은 매우 광범위하고, 부과하는 의무도 금융기관에 준할 정도로 과중하다. 이는 스타트업에게 맞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 목표 중 하나가 스타트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글로벌 사회에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이라는 신기술을 활용해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

-블록체인·암호자산 분야도 침체기가 있었다.
“암호자산이 2017년 말 최고점을 찍은 뒤 약 3년간 침체기를 거치면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대기업들이 사업의 주체로 합류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을 필두로 JP모건, 피델리티 등 금융사들이 참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관련된 사업을 시작, 코인도 발행했다.

둘째는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이다. 30조가 넘는 예일대의 기금운용책임자 데이비드 스웬슨이 2019년 암호자산에 투자하기 시작하자, 북미지역의 50여개 대학들도 덩달아 암호자산 투자를 시작했다. 또한 지난해부터 약 50조원의 운용자산이 세계 최대 암호자산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Grayscale)로 유입됐는데, 이곳의 주 고객은 기관투자자들이다. 그만큼 상당수의 기관투자자들이 암호자산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다. 블록체인 시장은 과거와 다르다. 3년 전엔 여러 스타트업들의 사기와 개인투자자들의 투기로 얼룩져 있었다면, 지금은 대기업과 기관투자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4차산업위는 암호자산에 대해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했다.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은 금융업의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기존의 결제업체들 중 암호자산을 결제 시스템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급증하고 있다. 가입자 2억명이 넘는 페이팔은 이미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고,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테슬라 등이 이에 합류했다. 블록체인이 만드는 세상은 신속하고 효율적이다. 가령 해외로 송금할 때 지금은 며칠씩 걸리고 비용도 든다.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송금하는 데는 10분이면 된다. 이러한 인프라는 기술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 미래를 위해, 새로운 먹거리와 일자리를 위해 블록체인·암호자산 관련 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

노유선 기자


송인규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약력
△ 現 인큐텍 대표이사, △前 삼일PwC컨설팅 전무, △ 前 템플턴 자산운용 애널리스트, △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영전문대학원(MBA) 졸업 △서울대학교 국제경영학과 졸업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