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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미래다] ‘K-ESG’ 발전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 지난 6일 취임한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ESG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국제적으로도 그 부분이 중요 요인이 되고 있어 정부가 기업들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 들어 국내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단기 과열되다 보니 혼선이 많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K-ESG 지표 정립 계획’ 발표가 대표적이다. 산자부는 추진 배경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ESG 평가와 관련해 국내외에 600여개 지표가 난립함으로써 평가대상인 기업들에게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평가기관마다 세부항목과 내용이 다르니 동일한 기업에 대해 상이한 평가 결과가 나온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ESG 지표는 우리나라 경영환경과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해 우리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우선 산자부의 첫째, 둘째 주장에 대해 뭉뚱그려 생각해 보자. 평가지표가 국내외적으로 난립하고 동일한 기업에 상이한 평가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ESG 평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ESG란 장기투자기관들이 기업의 비재무적 위험과 기회요소를 판별하기 위한 분석틀로서 등장했다. 그런데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ESG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투자자들과 평가기관마다 그들의 투자철학과 가치에 따라 주안점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환경 부문만 해도 기후변화, 대기·수질·토양·해양오염 문제, 폐플라스틱 등 다양한 이슈가 있다. 사회 영역에서도 소비자, 노사관계, 공정거래, 직장 내 다양성 및 형평성 이슈 등이 존재한다. 기업지배구조에서도 소수주주권리, 지속가능경영 체계, 이사회 독립성 및 전문성, 임원 보상 문제 등이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이 다양한 스펙트럼 내에서 자신들의 주관적 가치와 목표를 견지하면서도, 다양한 재무평가 방법론과 ESG 평가 및 데이터들의 조합과 변환을 통해 투자성과 극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평가기관 역시 그들의 가치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한 평가모형들을 구축할 수 있다. 또한 동일한 평가기관에서도 복수의 평가모형들을 만들 수 있다. 환경영역 내 기후변화에 가중치를 높인 평가모형, 사회나 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춘 평가모형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상이한 평가체계에서 상이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흡사 국내외 수많은 증권 분석가들이 각자의 상이한 분석방법에 따라 동일한 종목에 대해서도 다른 목표가격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분석가들마다 상이한 목표가를 제시하더라도 반복적으로 잘못된 가치평가를 하는 이들은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부정적 평가를 받아 결국엔 퇴출되게 되고, 반면 정확한 목표가를 제시하는 이들이 살아남아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이것이 시장의 기본원리이자 메커니즘이다.

다음으로, 해외평가기관들로부터 당하는 국내기업의 역차별 문제이다. 이 문제의식에 대해서 필자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재무이슈와 달리 비재무적 이슈인 ESG는 대륙마다, 나라마다의 문화적, 제도적, 환경적, 경제적 특성과 차이에 따라 상이한 인식과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환경 측면에서 기후변화 이슈가 지구 공동의 문제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미세먼지, 황사 등 대기오염 문제가 더욱 긴급하게 체감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사회 영역에서 미국의 경우 직장 내 인종 간 형평성 이슈가 심각하지만 우리의 경우 양성평등 이슈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기업 지배구조 논의에 있어서도, 유럽의 경우 환경 및 사회 이슈에 대한 이사회 관여가 중요한 이슈이지만 우리는 소수주주 권리 보장 문제가 더욱 심각하고도 중대하다.

따라서 각 나라별로 중요한 ESG 이슈에 대한 관점이 다르고 이슈별로 사회적 합의 수준도 상이하다. 그런데 현재 유럽이나 북미가 주도하는 글로벌 ESG 평가에는 각 지역별, 나라별 맥락과 특수성이 반영돼 있지 않아 우리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ESG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체계적인 ESG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ESG 평가산업의 시장 메커니즘과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들이 마련돼야 한다.

첫째, K-ESG 평가기준이 아닌, K-ESG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제정하고 이에 근거한 상장회사 ESG 정보공개 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야 한다. 객관적 평가는 신뢰할만한 정보와 데이터를 전제로 하기에, 제3자로부터 검증된 객관적 ESG 데이터는 평가의 출발선인 까닭이다.

유럽은 이미 2018년부터 500인 이상 상장사의 비재무정보 공개제도를 도입했고, 일본도 조만간 ESG 정보공개를 유도하기로 했다. 정보공개를 자산 2조 원 이상 모든 상장사는 당초 2030년에서 2025년으로 앞당겨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ESG를 고려하는 대다수 글로벌 장기펀드들의 국내 유입은 언감생심이고, 오히려 한국 주식시장을 외면할 것이다.

둘째, 기본적으로 정성적 판단이 중요한 ESG 평가의 특성을 고려할 때, 평가기관들의 평가대상 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성 및 ESG 전문성을 제고시켜야 한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서 평가기관들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평가기관들의 평가대상기업에 대한 자문이 제한돼야 한다. 전문성 측면에서는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인력 보유 여부 및 평가 모형에 대한 투명한 공개 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평가산업에서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싸구려 저급품이 유통되는 ‘레몬시장’ 이론을 제시했다. 즉 정부나 공공부문이 민간 영역에 개입하면 해당 영역이 레몬 사회주의화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주의 국가 쇠락 경로를 답습하듯, 해당 산업에서 양질의 제품은 사라지고 정부 지원을 받는 저가품(레몬)만 살아남게 된다. 해당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란 연목구어와 같게 된다. 정부는 룰 세터와 심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가 선수로 뛰려 하거나 특정 선수를 지원한다면, 한국에서 ESG 평가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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