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가 주목 받는 이유

중국 전기차 기업 싸이리스가 화웨이와 합작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SF5’를 EREV로 출시했다. (사진=화웨이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그동안 자동차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던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의 가능성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전기차 구매 여력이 부족한 소비자층에게 EREV가 친환경차 구매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 있는 완성차 기업들이 EREV를 출시했거나 출시할 예정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 리오토는 이미 순수 전기차가 아닌 EREV를 판매해 국토가 넓은 중국 안에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현실적 전기차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닛산도 EREV와 유사한 개념의 직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2세대 ‘e-Power’를 공개했다.

주행거리 1000㎞, 전기차 대비 가격도 저렴

EREV는 배터리 충전용 엔진을 장착한 전기차라는 점에서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순수 전기차와는 다르다. 엔진은 차를 움직이는 데 개입하지 않고 배터리를 충전하는 용도로만 쓰인다. 엔진이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달리기 때문에 배터리 힘만으로 가는 순수 전기차보다 주행거리가 훨씬 길다.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로만 차량을 구동하되 배터리 충전을 위해 엔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하이브리드(HEV)·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과도 다르다. 배터리 잔존 용량이 감소한 경우에도 엔진이 구동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구조를 가졌다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10년대 초 GM, BMW 등이 EREV 모델을 시장에 출시한 바 있지만 당시 전동화 자동차에 대한 이해 및 수요 부족으로 인해 판매 성과는 제한적이었다”며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각각의 장점을 온전히 살릴 수 있는 것이 EREV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리오토 EREV가 이미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전기차 기업 싸이리스도 화웨이와 합작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SF5’를 EREV로 출시했다. 일본도 닛산에 이어 마쓰다가 전기차 ‘MX-30’에 주행거리 연장용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EREV를 출시할 계획이다. 중국과 일본 중심으로 EREV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이 책임연구원은 “EREV는 전기차 특유의 뛰어난 가속력과 부드러운 주행감을 살릴 수 있고 배터리 충전용 엔진은 회전수와 부하가 거의 일정한 상태로 작동하기 때문에 높은 열효율도 장점”이라며 “탑재된 배터리 용량에 의해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가 제한되는 전기차와 달리 주행 중 배터리를 지속적으로 충전하기 때문에 내연기관차 수준의 주행가능거리 구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싸이리스의 SF5는 배터리 및 연료탱크 완충 상태에서 유럽 연비측정(NEDC) 기준 최대 1000㎞ 가량 주행이 가능하다. 이처럼 EREV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장점을 온전히 살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 비교적 작은 구동배터리와 소형 엔진을 조합해 전기차 대비 제조원가를 낮출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EREV는 내연기관차 수준의 긴 주행가능거리와 전기차보다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면서 기존 하이브리드차와 달리 배터리 중심의 차기 때문에 결국 전기차에 더 가깝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다만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 등의 자동차기업들이 수년간 순수 전기차 개발에 주력하고 있고 생산라인도 그에 맞춰져 있어 EREV 시장이 급물살을 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기차 인프라 부족한 지역이 타깃…중국은 동남아 공략

EREV는 전기차 시장에서 교환형 전기차 배터리와 유사한 입지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교환형 전기차 배터리 역시 EREV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전기를 다 쓴 배터리를 미리 충전된 다른 배터리로 바꿔 끼는 방식의 전기차 사업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이런 배터리 교환 방식의 전기차 사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향후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가 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이 충전 인프라가 미비한 국가에 전기차와 배터리 교환형 사업 모델을 패키지로 수출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이 1차적인 타깃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교환형 방식이 차세대 배터리가 본격화되기 전 간극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더 나아가 하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역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심지어 이 방식 자체가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는데 촉매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EREV도 현실적으로 전기차 보급이 여의치 않은 시장을 공략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충전 인프라가 미비하거나 화석연료 가격이 낮아 전기차 보급 이점이 부족한 국가, 전기차 구매 여력이 부족한 소비자층에서 EREV는 또 다른 친환경차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됐던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난 연말연시 특수를 기대했지만 상당수 공장들이 전력난에 발목을 잡히면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전력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것은 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경우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이후 베트남 현지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경제 호황을 누리는 듯 했다. 하지만 전력난이 심각해 공장 이전 행보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현재도 많은 기업들이 자동차 친환경화를 위해 EREV를 포함한 다양한 접근법을 탐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책 당국은 순수 전기차만이 유일한 해답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순수 전기차가 친환경성에서 우위를 갖는 전제조건인 전력 생산·부품 제조에서의 탄소 배출 저감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한 친환경차 정책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