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에 번지는 ‘이재용 사면론’…민심의 향방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경제계·정치계·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이재용 사면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 움직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친인 홍라희 여사의 경기여고 51회 동기들도 가세해 주목을 받고 있다. 홍 여사의 고교 동기들이 이 부회장 사면을 건의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나선 것이다.

홍 여사는 이 부회장의 모친이자 삼성가(家)의 맏어른이다. 그런 점에서 홍 여사의 지인들이 이 부회장의 사면을 호소하는 상황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해 관계자인 홍 여사의 친구들이 나섰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어릴 때부터 지켜본 친구의 아들을 향한 안타까운 심정을 전달하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는 ‘측은지심’이 호소력을 자극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지는 듯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가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의견도 많이 듣고 있다. 경제계뿐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사면을 탄원하는 의견을 많이 보내고 있다”며 “충분히 많은 국민의 의견을 들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여론의 움직임도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4개 여론조사 기관이 공동으로 조사한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한 찬반 조사에서 찬성 응답이 65%에 달해 반대 응답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론의 흐름이 문 대통령의 숙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관건이다.

삼성 반도체 투자의 걸림돌은 ‘사법 리스크’

삼성 내부에서는 ‘이재용 체제’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삼성 일가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주식 지분 상속을 마무리하고 이 부회장의 경영권이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상황이다. 삼성의 최대 현안은 이제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에 쏠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전날 삼성전자 등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 2차 화상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평택공장에서 열린 ‘K-반도체 벨트 전략 보고대회’에서 향후 10년 간 무려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1위가 되겠다는 목표 달성에 박차를 가하고 세계 최대 규모 평택캠퍼스 3라인을 내년 하반기까지 완공해 메모리 반도체 부문 초격차 전략을 가속화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재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앞으로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지속적인 회의를 여는 등 당분간 미국 내 투자 압박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 장기화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각계에서 제기하는 사면론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내용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우려다.

이미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단체가 지난달 26일 이 부회장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국내 7대 종교 지도자들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이 부회장 특별사면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했고 정치권에서는 이 부회장 사면과 관련한 공방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홍라희 여사의 경기여고 51회 동기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국민청원에 나섰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이 국민청원은 청원 동의자가 14일 현재 2만7000명을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경기여고 동기들이 잔잔한 국민청원에 나선 까닭은?

이런 상황에서 홍 여사의 경기여고 51회 동기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국민청원에 나섰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이 국민청원은 청원 동의자가 14일 현재 2만7000명을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이들은 국민청원에서 “대통령님께서 우리 국민 모두가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어렵고 힘든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시급히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했다.

동기들은 이어 “현재 우리나라 최고, 최상의 인적자원은 대기업에 집중돼 있고 그 정점에 삼성그룹이 있다”며 “그 삼성의 총수는 지금 영어의 몸으로 대통령님께서 국익을 우선하는 충정의 심정으로 이 부회장이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실 것을 간청한다”고 덧붙였다.

이 국민청원에는 홍 여사 동기생들의 입장과 이 부회장이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모성애가 담겨 있다는 점, 그리고 국익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하는 점 등이 잔잔하게 강조됐다.

이윤경 경기여고 51회 동창회 기대표는 “지난달 29일 동창회(경운회)의 연례 정기총회가 있었는데 총회에서 긴급제안이 올라왔다”며 “삼성의 인적·물적 재원이 전 세계적으로 어딜 내놔도 부족할 것이 없다는 사실, 특히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는 정말 특출나기 때문에 이런 자원을 이 엄중한 시기에 국익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삼성에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국민청원을 진행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 기대표는 “이 부회장의 모친과 중·고등학교 6년을 함께 공부했고 비슷한 또래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함께 해온 세월이 길었던 것도 이 청원에 분명 작용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팬데믹 극복을 위한 백신 확보를 위해, 반도체 등의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삼성의 이 부회장에게 우리나라를 위해 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대통령께 간청하는 마음으로 청원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사면 찬성 64% vs 반대 27%’…사면 or 가석방 가능성은?

정치권 등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과 별개로 가석방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법무부가 오는 19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대규모 가석방을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전국 54개 교정기관은 이날 514명의 가석방을 실시할 계획이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형기 자체를 종료시키는 반면 가석방은 구금 상태에서만 풀려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석가탄신일을 계기로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회자되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지난 13일 K-반도체 전략 회의를 위해 삼성전자 평택공장 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참석한 것을 놓고 섣부른 기대감과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문제는 국민정서에 달려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이 제기될 때 문 대통령은 국민정서를 앞세워 완곡하게 선을 긋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평택 공장을 찾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찬성하는 여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목을 끌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부회장의 사면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4%로 나타난 것이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4개 기관 합동 전국지표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에서도 찬성이 49%에 달해 반대 45%보다 높게 나타났다. 중도층에서는 찬성(64%) 응답이 반대(28%) 응답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모든 연령대와 지역에서도 사면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반대 의견에 앞섰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