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미국 금융시장에 인플레 공포가 엄습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소비자 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시장 예상치(3.6%)를 크게 웃돌았다. 2008년 9월 이후 거의 13년만의 최고치이다. 전월 대비 CPI 상승률은 0.8%이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지수를 일컫는 근원 CPI는 전년대비 3.0%, 전월대비 0.9%가 각각 올랐다.

39년만에 최고의 가속페달 밟은 ‘인플레 쓰나미’...나팔바지를 꺼내라 ?

글로벌 분석기관 BCA리서치는 “가장 주목할 점은 지난 4월 근원 CPI의 전월대비 상승률이 0.9%를 기록하여 연율 기준 11%를 돌파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82년 4월 이후, 39년이래 최고의 가속 페달을 밟은 것이다. 금리 인상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채가격 하락, 주가 급락, 달러가치 상승 등의 공포심리가 작용해 월스트리트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상승했다. VIX는 S&P(스탠더드 앤드 푸어)500의 옵션시장에 반영된 시장의 공포 또는 예상되는 변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 12일(현지시간) VIX는 전장보다 5.75포인트(26.3%) 급등한 27.59를 기록했다.

미국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이날 1.69%로 물가 발표전보다 7bp(1bp=0.01%p) 상승하며 장을 마쳤다. 나스닥 등 뉴욕 증시는 2%대 하락하고,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한 달러지수는 90.752로 전장대비 0.64% 올랐다.

한편 시장의 기류를 가장 먼저 파악한다는 스마트 머니, 글로벌 기관 투자가들도 물가 전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3위의 운용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SSGA)가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플레이션 여론 조사에서 추세적 상승이라는 응답과 일시적이란 전망이 엇비슷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은 일시적 기저 효과에 따른 물가 상승론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경기가 악화된 것에 따른 반대급부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한 것이다. 파월 의장은 올해 하반기 이후 물가 상승세가 완화될 것이라고 방어벽을 쳤다. 시장이 감지하는 위기감과는 다소 거리가 먼 해석이다.

반면 투자 귀재인 워런 버핏과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장기적 물가 상승을 주장하면서 반론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 40년 이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던 1970년대의 이른바 ‘대(大)인플레이션’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월스트리트에서는 “나팔바지를 다시 꺼내 입어야 하는가”라는 말이 회자가 되고 있을 정도다.

결국 그동안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해왔던 바이든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지난 11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처음으로 인플레 우려를 공식화한 것이다.

일단 미국에 대한 경제 전망은 긍정적이다. JP모건과 TS롬바르드는 2분기 성장률을 전기대비 9.5%로 내놓았다.1분기 속보치인 6.4%과 비교해 무려 3%포인트 이상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대해서도 바닥을 치고 하반기 회복을 쏘아올릴 것이란 낙관이 확산되고 있다. 백신 보급이 가속화되고 재고보충과 주문 개선이 제조업을 개선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9월 독일 총선에서 녹색당이 승리할 경우 기후 인프라 투자를 위해 균형재정을 버리고 재정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독일의 변화는 유로존 주변국의 재정 지출을 유도할 것으로 분석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5월에 주식을 팔아라?”...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 전환이 관건

증권업계에서는 “5월에 주식을 팔고 떠나라”는 격언이 있다. 계절적으로 5월~10월에는 채권 투자수익률이 낫다는 점을 감안한 조언이다. 이달 초 득세했던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의 목소리는 물가 쇼크에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기술적 분석가들은 2009~2010년 그래프와 유사성을 대조하며, 미국 증시의 현 수준이 고점에서 약세로 들어서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시장의 부담 요인으로 글로벌 통화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가장 먼저 지목되고 있다. 이미 캐나다는 자산매입 축소를 의미하는 테이퍼링(tapering)을 발표했다. 영국도 간접적인 양적긴축(QT)에 들어갔다. 테이퍼링의 다음 후보로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이 꼽히고 있다.

미국의 연준은 2분기 경제 지표를 확인한 후 테이퍼링 발표 시점을 결정할 것이다. 빠르면 오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또는 9월 세계 중앙은행 연찬회인‘잭슨홀’ 미팅에서 발표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모퉁이를 돌아 회복 사이클 중반부에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경기 사이클을 보면서 통화정책의 변경 시점을 저울질할 것이다.

JP모건은 “중기적 증시 전망은 여전히 우호적이나 기술적 조정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자본재, 자동차, 반도체, 화학 업종을 묶은 경기순환주의 경우 그동안 상승폭이 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력한 1분기 기업 이익에 대한 밋밋한 시장 반응, 고점을 찍고 하락 반전한 제조업 지수(ISM)도 기술적 조정 심리를 건드릴 수 있다.

미국 증시 비중을 줄이고 유럽, 영국, 일본으로 갈아 타라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전략가들은“ 물가 등으로 단기 소동은 나타날 수 있으나 중기적 경제 전망이 탄탄한 만큼 1년 기준 주식이 채권보다 유리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다만 성장업종보다 은행 등 가치주의 비중을 늘리는 게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