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칼럼

SK텔레콤 T타워.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전자의 현재 발행주식총수는 59억6000여만 주다. 이 가운데 자기주식(자사주)은 몇 주나 보유하고 있을까. 답은 ‘0’이다. 발행주식수가 60억 주에 육박하는데 자기주식이 단 1주도 없다니?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삼성전자도 한때 자기주식이 발행주식총수의 13.4%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다. 2017년 1분기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그해 무려 4조 8000억 원 어치의 자기주식을 모두 소각했다. 당시 자기주식 전량 소각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이에 앞서 SK텔레콤 이야기를 해보자. 이 회사는 최근 보유 중인 자기주식 941만8000여 주(발행주식총수의 11.7%) 가운데 868만5000여 주(2조7000억 원 상당)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나머지 일부 잔여주식을 임직원 성과급 등으로 지급하면 SK텔레콤 역시 내년 초에는 자기주식 ‘0’ 기업이 될 것이다.

SK텔레콤은 무엇 때문에 자기주식을 대량 소각하는 것일까. 기업분할과 관련이 있다. SK텔레콤은 통신회사다. 아울러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ADT캡스, 원스토어, 11번가, 티맵모빌리티 등의 자회사 지분을 보유관리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회사 관리조직을 따로 떼 내어 회사를 새로 만들 계획이다. 신설법인은 SK그룹의 중간지주회사가 돼 SK브로드밴드를 제외한 주요 자회사 지분을 모두 가져간다. 남아 있는 존속회사 SK텔레콤은 통신사업을 하면서 자회사로 SK브로드밴드를 거느린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SK텔레콤을 통신회사와 중간지주사로 나누는 셈이다.

시장에서 중장기적으로는 중간지주사와 그룹 전체 지주사인 SK가 합병할 것으로 내다봤다. SK텔레콤의 자기주식은 이 합병을 손쉽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장에서 예상한 시나리오는 이랬다.

분할 전 SK텔레콤이 가진 자산과 부채 가운데 자기주식(지분율 11.7%)은 중간지주사의 자산으로 귀속시킨다. 자기주식은 분할 과정에서 통신회사 지분으로 변한다. 그래서 분할이 끝나면 중간지주사는 통신회사 지분을 11.7% 가지게 된다.

이것을 흔히 ‘자기주식의 마법’이라고 부른다. 이런 방법은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할 뿐 일반주주 가치를 훼손한다고 하여, 분할과정에서 자기주식 활용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그림1 참조> 이후의 합병 시나리오는 이렇다. SK는 통신회사 지분(26.8%)을 모두 중간지주사로 넘긴다. 통신회사에 대한 중간지주사 지분은 38.5%로 확대(자기주식 때문에 생긴 기존 지분 11.7%+26.8%)된다.

SK는 통신회사 지분을 넘겨준 대가로 중간지주사로부터 신주를 받는다. 중간지주사에 대한 SK 지분율은 50% 이상으로 커진다. 이렇게 중간지주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면 최태원 회장의 SK 지배력 희석을 최소화하면서 SK와 중간지주사간 합병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병 이후 SK그룹의 지배구조는 <그림2>와 같아진다. 중간지주사 밑에 있던 SK하이닉스 등 주요 유망 계열사들이 SK 밑으로 온다. 이 시나리오에 대해 시장 일각에서는 SK와 대주주 최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재편이기 때문에 일반소액주주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제기돼 왔다.

이런 와중에 SK텔레콤이 자기주식 거의 대부분을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SK와 중간지주사 간 합병에 용이하게 써 먹을 수 있는 자기주식을 소각하겠다는 것은 합병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시장은 해석한다. 자기주식 소각은 주주이익 환원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불린다.

다시 삼성전자로 돌아가 보자.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완료된 이후 합병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계속 제기됐다. 삼성전자 자기주식 비율이 13%를 넘어서자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강력하게 대두됐다. 주요 계열사 주가도 요동쳤다.

삼성전자에서 사업부문(반도체, 휴대폰, 디지털IT기기 등)을 떼 내 신설회사를 만들고 기존 삼성전자는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지주회사(삼성전자홀딩스)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주식의 마법을 통해 삼성전자홀딩스가 삼성전자사업회사 지분을 13.4%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전망이나 오해들을 해소하고 주주이익 환원 방침을 확실하게 선언하겠다며, 2017년 초 보유한 4조6000여억 원의 자기주식 전량을 소각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삼성그룹 지주사 전환설은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프로필

중앙일보, 이데일리를 거치면서 증권, 산업 담당 데스크를 지냈다. 기업의 국내외 거래를 둘러싼 금융 뒷거래를 심층 추적해 기자협회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전문매체 ‘글로벌모니터’를 전문 기자들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1일 3분 1공시>, <기업경영에 숨겨진 101가지 진실>, <기업공시 완전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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