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만에 편의점 맥주시장에서 오비·하이트진로 ‘아성’ 무너져

곰표 밀맥주와 곰표 팝콘 제품컷(사진=BGF)
“엄청 팔려서 무섭다.”

‘곰표 밀맥주’ 상품기획자(MD)가 동료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다. 곰표 밀맥주는 지난해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와 대한제분이 협업해 내놓은 수제 맥주다.

지난해 5월 출시 때부터 곰표 밀맥주는 남달랐다. 출시 3일 만에 초도물량 10만개가 모두 팔리는 등 예상하지 못한 흥행에 관계자들이 놀랐다. 불티나게 팔린 곰표 밀맥주의 품귀 현상은 올해도 지속됐다. CU 관계자는 “매출 증가세가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2주 동안 곰표 밀맥주 판매량은 약 300만개에 육박했다. 당연히 물량은 바닥이 나고 있다. 곰표 밀맥주는 이번 주말 또 품절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CU는 오는 14일부터 일시적으로 발주를 정지하고 2주 뒤 판매를 재개하겠다는 발주 정지 안내문을 점포에 보내는 등 고육책을 동원했다.

곰표, 맥주 양대산맥 오비와 하이트진로도 제쳐
올해 CU는 품귀현상 대응책으로 위탁생산을 택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주류 제조 면허를 가진 제조사가 타 제조업체의 시설을 이용한 주류 위탁생산(OEM)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주류 구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곰표 맥주 제조사인 세븐브로이가 롯데칠성음료에 위탁생산을 의뢰하고 CU는 지난달 29일부터 각 점포에 물량을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다. 월 공급량은 총 300만개로 대폭 늘렸다. 지난해 월 20만개를 공급한 것에 비해 무려 15배에 달하는 규모이지만 2주만에 완판되면서 생산량이 판매량을 쫓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급량이 늘어난 결과 곰표 밀맥주는 국내 맥주 양대산맥인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대표 상품을 제쳤다. CU는 지난 6일 “지난달 29일 곰표 밀맥주의 물량을 대량 공급하기 시작한 뒤 이틀 만에 카스(오비맥주)와 테라(하이트진로), 하이네켄 등을 제치고 국산, 수입 맥주를 통틀어 매출 1위에 올랐다”며 "편의점 맥주 시장에서 대형 제조사 제품이 아닌 차별화 상품이 매출 1위가 된 건 지난 30년 간 처음"이라고 밝혔다. 편의점을 통해 맥주 판매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진 것이다.

곰표 밀맥주의 인기비결은
이 같은 열풍을 ‘허니버터칩 대란’과 연관지어 분석하는 시각이 있다. 2014년 해태제과의 과자제품 허니버터칩은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각종 유사상품을 양산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허니버터칩은 워낙 구하기 어려워 인근 편의점을 찾아다니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중고나라(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를 통해 1500원짜리 허니버터칩을 5000원에 판매하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CU 관계자는 “허니버터칩은 품절상품, 레어상품(구하기 힘든 상품)이라는 소문 때문에 판매량이 증가한 측면도 있었다”며 “소비자들은 구하기 어려운 상품일수록 강한 호기심과 소유욕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곰표 밀맥주도 이에 해당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1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서지혜가 이 제품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 3곳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곰표 밀맥주는 ‘핫템’으로 등극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서지혜 맥주’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곰표 밀맥주 인증샷과 먹방 콘텐츠가 유행처럼 번졌던 것이다.

지난해 주세법이 개정된 것도 곰표 밀맥주 인기에 한몫 거들었다. 주세법은 수제맥주의 세금을 인하해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을 낮췄다. 수제맥주를 만드는 소형 양조장은 대형 제조업체보다 재료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어간다. 당시 수제맥주의 가격이 한 개에 5000~6000원일 정도로 높았던 이유다.

하지만 주세법 개정에 힘입어 수제맥주는 ‘4캔에 1만원’이라는 착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국내 맥주와 수입맥주와의 가격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된 것이다. CU 관계자는 “최근 수제맥주 인기는 정부의 규제완화 덕분”이라며 “규제 완화의 가시적 성과가 매출 증가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뉴트로’ 트렌드에 따른 이색적인 컬래버레이션이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는 해석도 있다. 뉴트로는 '새로움'이라는 뜻의 '뉴(NEW)'와 '복고라는 뜻의 '레트로(RETRO)'를 합친 신조어를 말한다.

CU 관계자는 “처음부터 맥주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시도였던 팝콘이 히트를 치자 맥주도 (컬래버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맥주가 잘되자 이번에는 맥주 안주인 나쵸를 후속상품으로 기획하기로 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뉴트로 트렌드에 대한 단계적 접근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도움도 컸다. CU 관계자는 “SNS를 통해 맛있다는 리뷰가 퍼진 것, 이색적인 컬래버가 소개된 것도 곰표 밀맥주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국산 수제맥주 흥행 전망은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수제맥주시장 규모는 1180억원으로 전년대비 47.5% 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가정 내 맥주 소비가 늘면서 수제맥주 판매량이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또 회식이나 모임이 줄어들면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폭탄주보다 개성 있는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수제맥주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같은 흥행이 일시적 현상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가 2023년이면 3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해 CU 관계자는 “곰표 밀맥주의 후속 상품들인 ‘말표 흑맥주’, ‘오렌지는늘옳다’ 등 다양한 이색 맥주들도 덩달아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곰표 밀맥주가 그동안 잠재된 수요를 흡수하며 편의점 맥주 시장에 지각 변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맛과 콘셉트를 가진 수제맥주가 소비자들의 잠재된 수요를 자극했다는 의미다.

한편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지속 여부도 수제맥주 판매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CU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3년간 수입맥주는 국내 편의점 맥주 시장의 약 60%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되면서 수입맥주 매출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수입맥주 수입량은 2018년 39만 5021톤이 수입된 이후 2019년 36만 2027톤, 2020년 27만 9654톤으로 수입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식약처는 “이는 수입맥주 시장의 1위를 차지하던 일본산 맥주에 대한 불매운동과 와인, 수제 맥주 등 타 주류 소비 증가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일본산 맥주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 ‘편맥족’(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수입맥주 대신 국산 수제맥주를 택하면서 오늘날 수제맥주 열풍이 본격화된 셈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일본 맥주 수입량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일본 맥주 유통업체들이 저가 공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산 맥주와 국내 수제맥주의 빅매치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