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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ESG 경영 위한 민관의 ‘발맞추기’ 필요

  • 지난 13일 서울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한·미 ESG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지난해부터 시작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점점 세를 키우더니 올해는 태풍과 같은 기세로 한국 경제계를 흔들고 있다. 의미가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 용어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의 후계자쯤 되는 것으로 또는 그것이 좀 더 구체화된 개념으로 이해되고는 한다.

그러나 CSR은 기업이 이윤추구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는데 반해 ESG는 숫자로 측정할 수 있고 이러한 지표가 투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ESG의 출발점은 2006년 유엔(UN)이 발표한 사회책임투자원칙이다. 이는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기로 CSR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세계적인 투자회사인 블랙록의 회장 래리 핑크가 새로운 자산운용 기준으로 ESG를 내세우면서 아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돈 앞에서는 냉철할 뿐만 아니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난 이 회사가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을까.

일단 구체적인 감을 잡기 위해 개별 요소들을 하나씩 떼어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환경’(E)은 기업이 환경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투자와 운영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관련되는 중요한 이슈들이 있다.

첫째,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각국에 탄소배출 감축량 목표치가 주어진 데 이어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이 도입됐다. 이는 기업에 탄소배출량을 할당하고, 그것을 초과하는 탄소량은 시장에서 사고, 남는 것은 시장에서 팔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시장에서 기업의 형편에 맞게 탄소배출량을 조절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할당량이 타이트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나 시간이 갈수록 조여질 것이므로 이는 기업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ESG는 금융기관 투자를 통해 기업을 한층 더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둘째,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는 성장의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 그린뉴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는 전기차 및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수소산업 등 친환경적이면서도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친환경산업은 기존 시장을 대체하는 것으로 아직 경제성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통해 산업의 전이를 촉진할 수 있다. 그 흐름을 타고 자산운용사는 ESG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투자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은 때로는 기업의 수익성이나 경영방침과 상충할 수도 있다.

‘사회’(S) 분야에는 산업재해, 인권보호, 차별 철폐 등 광범위한 이슈가 존재한다. 이 분야는 그동안 유행해 왔던 CSR과 가장 유사하다. 공정한 가격으로 커피 원두를 구매한다는 스타벅스 공정무역과 같은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관심이 없거나 피하고 싶은 주제일 것이며 투자자 입장도 비슷할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관심을 가질 만한 분야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높은 산업재해율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ESG는 국민연금 등을 통해 정부가 바라는 방향으로 기업을 움직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때로는 투자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지배구조’(G)는 ESG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은 족벌경영으로 인해 지배구조에서 취약점을 보이고 있다. 투자자는 ESG를 통해 기업의 내부정보를 공개토록 함으로써 자신의 투자방향을 점검할 수 있고 기업의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과 반대되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블랙록과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는 지배구조에 있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총의 투표권 행사 등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한국 등 아시아 기업에 대한 주총 참여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순환출자 해소 및 총수 경영승계 때문에 지배구조 문제가 핵심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심한 홍역을 겪어 왔고 현대차의 경우에도 그러한 과정을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ESG는 숫자를 통해 객관적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투자자는 지배구조 변화에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데 있어 ESG라는 무기를 하나 더 가지게 된 셈이다.

현재 미국에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환경’이 하나의 정책기조로 설정돼 있다. 거기에 전통적으로 인권을 강조하는 민주당 정권이므로 ‘사회’도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더구나 노동자에 대한 옹호와 중산층 육성을 기치로 들고 있으므로 기업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말하자면 ESG가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바이든 행정부에는 블랙록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 마이크 파일 부통령 경제자문 등이 이 회사 출신이다.

내면이야 어쨌건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백악관과 블랙록이 한 몸처럼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블랙록이라는 자산운용사의 영향력에 더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힘이 가해짐으로써 기업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신속하게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ESG 관련 부서를 설치하고 전경련 주도 하에 K-ESG 얼라이언스라는 공동대응체를 만든 바 있다.

민간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에서 한국기업에 맞는 ESG 평가체계도 만들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가이드라인 성격의 ‘K-ESG 지표’ 초안을 발표한 바 있고 기획재정부도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에서 기관들의 ESG 항목을 발표할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600개의 ESG 평가지표가 난립하고 있다. 이것은 대부분 해외에서 작성된 것으로 국내실정과 맞지 않는 것이 상당수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우며 기업이 대처하기 곤란하다.

글로벌 투자자와 국내 투자자가 서로 다른 잣대를 사용함으로써 기업에게 이중의 압박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교통정리를 하고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토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ESG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또 하나의 규제로 비춰질 수 있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ESG가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민관 협조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자에 의해 심하게 휘둘리는 상황을 또 다시 맞을 수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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