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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미래다] 남양유업, 이사회부터가 고장나 있었다

  •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최근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양유업의 올해 1분기 보고서에서 ‘이사회에 관한 사항’을 찾아봤다. 이 회사의 이사회는 총 6명(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2명)으로 꾸려져 있다. 보고서는 각 이사의 선임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에 대해서는 “경영업무 총괄 및 대외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라고 적혀 있다. 양동훈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경영분야 전문가로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사회 운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함”이라 기재돼 있다.

그런데 선임 배경이 공란으로 처리된 한 명의 비상근 이사가 눈에 띈다. 연임 횟수가 무려 10회다. 대주주 일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주주와의 관계를 보니 ‘모’(母)라고 적혀 있다. 홍 회장의 어머니인 지송죽 씨다. 1923년생이니 올해 93세다.

지 씨의 이사회 참석률을 봤다. 올해 열린 총 8차례 이사회에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총 9차례 개최된 이사회 참석률도 역시 ‘0’다. 2018년에도, 2019년에도 이사회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지 씨는 이 회사의 이사인가, 아닌가?

사외이사뿐 아니라 사내이사 및 비상근 이사의 참석률까지 의무공시하게 한 것은 2018년부터다. 그 전의 지 씨 참석률을 공시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익히 짐작할 수는 있겠다. 이사회는 회사의 중요한 경영활동을 의결하는 한편 경영진에 대한 감독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이사회 구성은 회사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건전한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남양유업의 이사 6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명이 회사 측 사람이다. 이 가운데서도 3명이 대주주 홍 회장과 아들, 그리고 어머니로 혈연관계다. 나머지 1명은 회사 대표이사다. 90세가 넘은 어머니는 비상근 이사로서 이사회에 아예 출석조차 하지 않고 있다.

왜 이사로 선임했는지 그 배경에 대한 설명조차 회사 측은 버젓이 누락하고 있다. 회사로서는 뭐라도 적어 넣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회에 나오지도 않을 고령의 노인을 이사 자리에 앉혀 놓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사회를 정상적인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봐줘야 할까?

경쟁사인 매일유업의 올해 1분기 보고서에서 이사회 부분을 살펴봤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남양유업과 큰 차이가 난다. 총 7명의 이사진 가운데 과반인 4명이 사외이사다. 이사들에 대한 선임배경도 상당히 구체적인 편이다. 이사회 참석률은 100%다. 법적 의무가 없지만 이 회사는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감사위원 4명은 전원 사외이사로 채워넣었다.

과거 매일유업은 남양유업에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2013년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대한 물량밀어내기 등 갑질을 오랫동안 저질러왔다는 사실이 폭로된 이후 사세를 키워 업계 1위에 올라섰다.

남양유업이라 하면 소비자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도 ‘불가리스’라는 단어일 것이다. 남양유업의 간판제품이라서가 아니다. 지난달 13일 남양유업은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 발표내용이었다. 자사 발효유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예방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보도가 나가자 불가리스가 대형마트나 온라인 유통플랫폼에서 날개돋친 듯 팔렸다. 회사 주가도 크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연구내용이 허점투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의 의약적 효과를 과대포장하고 학술심포지엄을 자사 제품 홍보에 이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행정처분과 함께 검찰 고발을 예고했다.

특히 심포지엄 며칠 전부터 남양유업 주가가 움직인 것에 주목한 금융당국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조사에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는데도 남양유업 측은 발뺌 대응에 바빴다. 의과학연구원이 주관한 행사에서 발표된 내용이라며 자사와는 무관하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 심포지엄의 발표자가 남양유업 연구소 임원이며, 심포지엄 진행과 대외홍보 등에 회사가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뒤늦게 홍 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 회사 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지배구조 개선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담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누적돼 온 남양유업 관련 사건들이 다시 소환되면서, 회사에 대한 불신은 커져갔다. 지난 27일 결국 홍 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 회사 지분 53%를 모두 사모펀드(한앤컴퍼니)로 넘긴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거래금액은 3170억 원. 현재 주가 기준으로 남양유업의 시가총액은 3100억 원 정도다. 따라서 이번 거래에는 약 100%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양 측이 주식양수도계약(SPA)을 체결한 시점이 27일이다. 홍 전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지난 4일이다. 시간간격이 불과 한 달도 안 된다.

지분양수도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한앤컴퍼니 측이 최소한 회사 관련 각종 재무 및 비재무데이터를 중심으로 기초실사를 진행했을 것이다. 거래금액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계약서 문구를 작성하고 서로 검토하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대국민 사과 시점에 이미 대주주 측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잠정 결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왜 이렇게 속전속결식으로 손을 떼려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경영에 참여하건 하지 않건 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한, 회사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남양유업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과 회사 매각이라는 최종 귀결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중요성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현실감 있게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프로필

중앙일보, 이데일리를 거치면서 증권, 산업 담당 데스크를 지냈다. 기업의 국내외 거래를 둘러싼 금융 뒷거래를 심층 추적해 기자협회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전문매체 ‘글로벌모니터’를 전문 기자들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1일 3분 1공시>, <기업경영에 숨겨진 101가지 진실>, <기업공시 완전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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