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신컨테이너터미널에서 화물 컨테이너 작업 중 숨진 고(故) 이선호 씨 사고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기업들은 ESG, 즉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중에 무엇을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할까.

'ESG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시장조사업체인 버딕이 올해 2월 1일부터 4월 12일까지 241곳의 기업을 조사한 결과 45%가 '환경(E)'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이슈라고 답했다. '기업지배구조(G)'와 '사회(S)' 이슈를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기업의 비율은 각각 37%와 18%에 그쳤다.

뉴모로우 소달리(New Morrow Sodali)가 전 세계 40여 명의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환경 이슈인 '기후 변화'가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꼽혔다.

기업들이 환경 이슈에 민감한 이유는 국제 협약 등을 통해 환경 이슈가 정부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규제로 법제화되면 무조건 따라야 하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힘들어지고 비용도 많이 들게 된다.

또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탄소배출량 같은 환경 이슈들이 계량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성과를 보고하기가 더 쉽다. 지금과 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환경 문제들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2월 국내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산 투자·운용 관련 글로벌 트렌드의 최일선에 있는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의 60%는 ‘E·S·G’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환경’을 꼽았다. ‘사회’와 ‘지배구조’가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은 각각 26.7%, 13.3%에 그쳤다.

구체적인 세부 평가지표별로는 ‘기후변화·탄소배출’이 가장 중요하다는 답변이 26.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지배구조(17.8%), 인적자원관리(13.3%), 기업행동(11.1%), 청정기술·재생에너지(11.1%) 등의 순이었다. 전경련은 코로나19 이후 확산되고 있는 글로벌 친환경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게 대세인 것 같으나 우리나라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회나 지배구조 부문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23살 대학생 이선호씨가 평택항 항만 부두에서 300㎏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지 한달 여가 지났다.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일명 김용균법)이 시행된 지 1년5개월이 다 돼 가지만 현장에서는 외주업체 직원들의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비인간적인 용어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산재 사고로 882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하루에 2.4명꼴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ESG 평가지표가 국내외 600여개가 난립해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국내 기업상황을 반영한 한국형 ESG 지표를 올해 하반기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4월 21일 공개한 지표 초안에는 정보공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4개 분야에 61개의 평가문항을 담았다.

대표 문항 내용에는 사회 부문에 '최근 3년간 산업재해율은?'이라는 문항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882명 중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가 714명으로 81%를 차지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망자는 37명으로 4.2%에 불과하다. ESG를 중시하는 대기업, 중견기업은 좋은 직장이라서 산재 사망자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산업재해 관련 문항은 '최근 3년간 해당 기업과 전체 하청 단계 기업들의 산업재해율은?'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전경련이 올해 4월 발표한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 'ESG 준비실태 및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ESG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응답이 43.2%로 가장 높았다. 사회 분야 활동의 주요 대상을 묻는 질문에는 소비자가 31.7%로 우선 순위였고, 근로자(18.8%), 협력사·경쟁사(16.8%)는 후순위로 밀렸다. ESG의 최종 목표인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소비자'들에게 '기업 이미지 제고'를 통해 제품을 많이 팔아먹겠다는 생각이 대부분인 것 같다.

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가 선진국에 비해 너무 후진적이라는 건 상식이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는 오너 일가가 매우 적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계열사들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고, 그래서 기업의 의사결정이 일반 주주나 회사의 이해관계보다는 오너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사회에서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는 오히려 오너의 뜻에 의해 임명되기 때문에 그냥 '회사 소속이 아닌(社外) 이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에서 주로 따지는 이사회 내 여성 비율 등 이사회의 다양성보다는 이사회의 독립성이 더 중요한 이유다. 특히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려면 오너나 경영진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이사의 비중을 따질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정부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K-ESG' 지표를 개발한다고 해서 '또 웬 오지랖인가' 싶었다. 정부가 민간 시장에서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영업자들의 수수료를 낮추겠다며 만든 공공배달앱들은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배달의 민족'을 따라잡기는 커녕 아예 존재감이 미미하다. 민간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서 싼 가격으로 대중의 편의성에 딱 맞춘 서울시의 '따릉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산자부는 600여개의 ESG 지표가 난립해 있다고 했지만 이는 시장에서 결과적으로 정리돼야 할 일이지,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부가 진정 공익의 입장에서, 공공선(公共善)의 입장에서 ESG 지표를 하나 더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SG 지표를 통해 기업들이 산업재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시장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본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해서도 거래소 산하의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ESG 평가를 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를 토대로 거래소 자체의 연성 규제(법 제정과 형사처벌로 강제하는 경성 규제와 대비)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




정재형 여시재 자문위원 test@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