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중고차, 신차 가격과 비슷…가격 역전 현상도 발생

지난달 중고차 거래량 상위 10개 차종의 평균 시세가 6.1% 상승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공장 가동이 멈추고 신차 출고가 늦어지면서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중고차 시세도 크게 올라 인기 차종은 신차 가격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거래되고 있을 정도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 전까지 더 많은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고차 시세의 고공행진이 더 이어질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고차 유통 플랫폼 엔카닷컴에 따르면 쏘렌토 디젤 2.2 4WD 시그니처 2021년식 모델의 경우 중고차 평균 시세가 4301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차 가격 4117만 원보다 무려 200만 원 가량 더 비싼 것으로 중고차와 신차의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도 중고차 가격 급등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촉매로 작용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중고차 시장에도 여파가 미친 셈이다.

대형 세단과 SUV 쏠림 현상이 중고차에도 반영

자동차업계에서는 반도체 품귀 현상이 최소 상반기, 늦으면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어 중고차 가격 상승 추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고차 유통 플랫폼 AJ셀카는 지난 5월 중고차 거래량 상위 10개 차종의 평균 시세가 6.1%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난 4월까지 큰 변동이 없던 주요 차종의 시세가 급반등했고 올해 들어 평균시세 성장 폭이 가장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뉴 카니발, G80, 올 뉴 K7 등 비교적 고가격대의 준대형·대형 차종 평균시세 상승률이 약 20%를 웃돌면서 중고차 시장의 시세견인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올 뉴 투싼(8.9%), 올 뉴 쏘렌토(10.7%), 스포티지 4세대(3.2%) 차량의 평균시세도 7.6% 상승해 중고차 시장에서도 SUV 가치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K5 2세대(-3.0%), 아반떼 AD(-4.4%), LF 쏘나타(-10.8%) 등 준중형·중형 차량들은 하락세를 보여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반도체 부족사태가 원인이지만 최근 들어 신차 시장에서 나타난 대형·SUV 차종에 대한 선호 쏠림 현상이 중고차 시장에서도 반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견고한 입지를 보였던 중형급 세단 시장이 주춤하면서 중고차 시장 인기몰이의 주역이 다른 차종으로 분산되는 양상이 점차 짙어지고 있다.

물론 신형 모델이 아닌 기존 모델의 중고차 가격이 오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떨어지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차처럼 디지털 부품이 많이 들어간 모델은 현 추세로 봤을 때 중고차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안인성 AJ셀카 온라인사업본부장은 “중고차 시장에서는 올해 봄부터 이미 수요 증가 조짐이 보였다”며 “지난달 들어 주요 차종들의 중고차 가격이 상승했지만 내 차 팔기를 고민하고 있었던 소비자 입장이라면 오히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중고차 시장 상황은 우리 보다 먼저 움직였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중고차 평균 가격은 전월보다 10% 올랐다. 신차 출고가 늦어지고 중고차 매물 수가 1년 전보다 50만대 이상 줄어들며 공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13년 만에 최고 인상 폭(4.2%)을 기록한 것은 중고차 가격 급등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가성비 중요한 중고차, 반갑지 않은 가격상승

사실 신차 출고 지연과 별개로 최근 중고차 시장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자동차 전문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중고차 구입자 만족도는 최근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중고차는 감가율이 큰 만큼 가성비가 높고 차령 3~5년의 ‘비교적 신차’ 위주로 거래되면서 품질 신뢰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경기 악화로 소비자의 새 차를 구매할 여력이 줄어든 것도 중고차 시장의 인기를 끄는 요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중고차 구입자 만족도에는 가성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 1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고차 구입 이유로 ‘차량가격이 신차보다 저렴해서’가 22.0%(국산 22.9, 수입 16.8%)로 가장 많았고 ‘굳이 새 차를 살 필요 없어서’가 21.2%(국산 21.7, 수입 18.9%), ‘가격대비 품질이 좋아서’가 16.4%(국산 15.9, 수입 18.6%)를 차지했다.

중고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고차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고 실제로 차령 3~5년의 신모델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져 시중 유통되는 중고차의 품질 만족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최근 중고차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것은 자칫 중고차의 최대 장점인 가성비 측면에서 장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기업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대기업 진출이 국산 중고차의 신뢰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성비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중고차 시장 특성상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선택의 폭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기존 중고차업계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중소벤처기업부에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에는 산업 규모가 크고 소비자 후생 차원에서도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중기부에 전달한 바 있다.

게다가 기존 업계만 중고차 매매업을 할 수 있는 폐쇄적 중고차 시장 구조로 인해 일부 중고차 기업들이 허위 매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고차에 대한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중고차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는 소비자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결국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 완성차업계와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 중고차 업계는 이번 달 안에 만나 공식 협의체를 출범할 예정이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관으로 만나 향후 협의 내용이 담긴 협약서를 작성하는 등 공식적 협의과정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