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 기본소득이 뜨거운 정치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하다 보니 그 개념을 잡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다. 대선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니 한 번 그 내용을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 매달 기본적 생활이 가능할 만큼의 현금을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대상이며 어떤 조건을 달지 않는다. 매달 지급되므로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적이다.

기본적 생활이 가능할 만큼이므로 어느 정도 액수는 돼야 한다. 현물이 아니라 현금으로 지급되므로 개인이 원하는 곳에 쓸 수 있다.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되므로 가구원이 몇 명인가 등 복잡한 논의가 필요 없다.

첫째, 왜 뜬금없이 이 시점에 기본소득이 논란이 되는가? 그것은 과도한 양극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소득분배가 매우 평등하였으나 외환위기를 겪고 그 와중에 신자유주의가 정착되면서 90대10의 사회가 형성됐다. 10%는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90%는 남은 파이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 모습이다.

더구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는 끊임없는 자동화와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전을 가져와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제조업에서 10억 원 투자당 고용창출은 1997년 20.77명에서 2017년에는 4.81명으로 극적인 감소를 보였다. 또 근로자 1인당 로봇 장착률은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자료에 따르면 로봇 한 대가 추가될 때마다 5.6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제4차 산업혁명을 맞아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양대 축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이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다른 분야에서 일자리를 없앨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저히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 도리일 뿐만 아니라 사회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둘째, 기존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것보다 기본소득이 나은 점이 무엇인가? 기존 복지제도는 국가가 일정한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거둬 빈민에게 나눠주는 공공부조를 바탕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장려금이 그것이다. 여기에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청년수당, 아동수당 등 각종 수당이 첨가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세금을 내는 계층과 복지를 받는 계층을 분리시킴으로써 조세저항을 유발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면세점은 중위소득과 비슷해 거칠게 얘기하면 절반은 세금을 내고 나머지 절반은 복지를 받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다양한 복지체계가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부담·저복지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복지의 공동구매와 같은 것으로서 조세저항을 줄일 수 있다. 기본소득에 들어가는 세금을 누진적으로 하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내는 세금보다 받는 기본소득이 더 많아짐으로써 이득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같은 배를 타는 셈이다. 기본소득이 분배를 개선하는 것은 지급 평등이 아니라 세금 누진성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소비성향이 강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전은 소비로 이어짐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동화·무인화를 특징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더욱 높일 것이나 일자리 축소로 인해 소비를 줄일 것이 틀림없다. 이 경우 공급에 비해 수요는 줄어들며 결과적으로 경제는 위축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추세를 완화시키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셋째, 그러면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기본소득으로 전 국민 1인당 월 10만 원씩 지급하더라도 연 60조 원에 이르는 재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소액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지불하게 될 경우 소요재원은 엄청날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재정지출 구조 개편과 더불어 증세를 불가피하게 한다. 증세는 엄청난 조세저항이 따르기 때문에 정치적인 모험이 될 것이다. 대부분 사람에게 기본소득이 혜택이라는 확신을 주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초기에는 재정 조정과 세금구조 개편을 통해 기본소득의 원형을 갖춰 놓는 것이 불가피하다.

상당수 세금제도들은 역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연말정산에는 다양한 소득공제 혜택이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액, 보장성 보험공제 등 소득공제는 고소득자에게 유리하다. 높은 세율이 적용되므로 감액되는 금액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진적 세금제도를 폐지하고 그렇게 확보한 재원을 이용해 모두에게 나눠준다면 대부분 사람에게는 부담보다 혜택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세원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로봇이나 인공지능처럼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경우 그에 대한 세금을 물리는 로봇세, 인공지능세가 있을 수 있다. 또 데이터를 사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업자에 대해 과세할 수도 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기여해 만들어 놓은 자원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형태기 때문에 일정부분 사회에 환원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이 밖에 여러 가지 쟁점을 열어놓는다. 예를 들어 기존 복지체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모두 없애고 기본소득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니면 일부를 통폐합하는 형태로 남겨놓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기본소득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면서도 근로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지역화폐로 줄 것인가 현금으로 줄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하나하나가 모두 해결하기 만만치 않은 항목들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이미 가까운 지평 하에 떠오르는 이슈다. 이미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라는 형태로 그것을 체감한 바 있다. 그것은 아까운 국고를 털어 쓸데없는 데 허비한 것이 아니다. 그 상황에 맞도록 재정이 사용된 예다. 세금은 국민이 필요한 용도로 쓰기 위해 걷는 것이며 지출은 그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본소득이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감소에 대한 대안이 된다면 도입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포퓰리즘적 제도라고 미리 예단하지 말고 그 성격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쟁점에 대해 논의를 거쳐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제도를 발전시킨다면 이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우리나라는 제4차 산업혁명 선두에 선 국가이므로 그에 맞는 복지제도도 선구적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