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리나라는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이슈들 중 유독 E(환경)에만 주목하는 듯하다. 그 중에서도 기후위기와 탄소저감 문제가 최우선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대통령의 탄소중립선언, 최근 P4G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과도한 주목도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E 못지않게 SG(사회 및 거버넌스) 이슈도 중요하다. 본 칼럼에서는 ESG 각각의 균형을 잡는다는 면에서, S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서구권 국가에서는 S 이슈를 주로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로 설명한다. 이는 직장 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가치를 말한다. 인종, 성별, 학력, 국적, 문화, 종교, 세대, 성 소수성의 차이에 따라 차별 받지 않고, 다름 그 자체가 존중되는 일터 문화를 추구해 나가자는 것이다.

포춘500 기업들 중 39%가 다양성업무 전담 임원들을 두고 있다. ‘다양성 관할 최고임원’(Chief Diversity Officer)을 둔 곳도 상당수다. 이들의 역할은 조직 내에서의 차별방지, 원활한 소통, 수평적 조직문화로의 변화 관리다. 이를 통해 이들은 조직 내 DEI 확산과 수준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그렇다면 글로벌 기업들은 왜 고액 연봉을 지급하면서까지 특정 임원들에게 이런 역할을 맡기는 것일까. 글로벌 회계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DEI는 단순히 좋은 직장을 만들자는 구호가 아니고, 그것이 곧 경영성과로 연결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노력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유발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DEI를 존중하는 기업에서 직원들의 강한 동기부여가 일어나고, 소통과 협력이 증진되며, 이런 요소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 부가가치 창출의 원동력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가 경험했던 산업의 패러다임과는 달리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맞닥뜨린 미래 테크 지식산업 분야에서 조직 내 DEI 효능감은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고 본다.

DEI 이슈들 중 양성평등과 성 다양성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맥킨지의 ‘성 형평성의 경제적 사례’라는 자료를 보면 노동시장에서의 성 격차가 해소될 경우 한국경제의 경제성장률은 2030년까지 매년 0.9%포인트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17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였던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국내에서 열렸던 한 콘퍼런스에서, 노동시장에서 성 차별을 줄일 경우 인도는 27%, 일본은 9%, 한국은 10%까지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기업들을 분석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자료에 따르면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높은 기업의 평균 자기자본수익률(ROE)은 10.1%인 반면, 그렇지 않는 기업들은 이보다 36%나 낮은 7.4%에 머물렀다고 한다. 다양성의 효능감을 경험적이며 이론적으로 설명한 수치와 주장들이다.

국내로 돌아와 보자. 최근 LG 및 SK 계열사, 네이버나 카카오 등 기업들에서 성과급 배분을 놓고 홍역을 치렀다. 한 기업에서는 입사 4년차 직원이 CEO와 임직원들에게 성과급 배분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이것이 도화선이 돼 이와 유사한 문제가 여러 기업들로 확산됐다. 이런 문제제기를 한 직원들 대다수는 이른바 MZ세대들이다.

베이비부머들은 상상도 못할 ‘역린’ 수준의 일들이 지금 주식회사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봉급 명세서는 회사가 정한 일률적 획일적 기준을 감내한 대가의 청구서와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MZ들은 완전히 다르다. 자신들의 준거틀로 회사의 여러 정책들을 평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개진한다.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행동하는 세대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수천 년 동안 농업사회의 관습,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다. 농업사회는 근면성, 규칙성, 협동과 단합 수준에 의해 생산성이 좌우되는 특징을 갖는다. 우리의 이러한 오랜 특성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까지 일컫는 산업화의 동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인의 유전인자 깊숙이 내재한 상명하복, 일사불란, 근면 성실, 기계적 반복성이 오늘날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제철 등 각 산업 부문들에서 세계 일류기업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 직장인들은 그 유산의 최후 승계자일지도 모른다. 이제 베이비부머와는 다른 신인류가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이끄는 중견들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가치관은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다양성, 공정성, 투명성, 친환경성, 수평적 소통의 가치를 존중한다.

이러한 가치관에 부합하는 산업이나 직장에 근무하길 원한다. 또한 이들은 소비자나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위의 가치관과 합치되는 방향으로 소비하고 투자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베이비부머에서 MZ로의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닌 문화와 사회적 가치규범의 빅뱅 내지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SG의 S, 그중에서도 DEI는 MZ의 가치관과 상당부분 교집합을 이루면서 그들의 가치관과 입장을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직장 내 ESG의 S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자원을 배분하고 노력하는 것은 MZ세대를 위한 미래 투자라고 믿는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직장 내 소프트웨어를 버전 업하는 과업이다. 이 작업을 미루면 미룰수록 직장이라는 하드웨어 곳곳에서 마찰과 파열음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기업경영 성과의 후퇴로 직결될 것이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미래 세대의 편에 서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