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팰리스 메인 입구인 팰리스 게이트(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베일 벗은, 호텔의 신세계 ‘조선 팰리스’


공간의 첫 인상은 로비가 결정한다.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이하 조선 팰리스)의 웰컴 로비에 들어서면 화려한 인테리어에 놀라고 웅장한 조각상에 감탄한다. 팰리스, 글자 그대로 이곳은 궁전이다. 로비 안쪽으로 들어가면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을 연상시키는 조각상을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팰리스의 첫 인상이나 다름없는 이 조각상은 아름답기는커녕 곳곳이 부서져 있다. 상처투성이인 모세상 앞에서 방문객들은 한참을 서 있다. 로비는 잠시나마 작품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한 사색의 공간이 된다. 세계적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은 ‘BLUE CALCITE ERODED MOSES’라는 이 작품을 통해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옛 조선호텔을 계승한 조선 팰리스가 단순히 외관만 화려한 호텔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 팰리스 관계자는 “초기 조선호텔은 신문물의 체험 공간이자 만남과 사교의 장으로 역할을 해왔다”며 “서구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고 모던 걸, 모던 보이를 매료시킨 사교의 중심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선호텔의 헤리티지(유산)를 보존하면서 동시대의 시선을 가미해 조선 팰리스를 탄생시켰다”고 말했다.

다니엘 아샴 ‘BLUE CALCITE ERODED MOSES’(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럭셔리의 새로운 정의, 조선 팰리스
지난달 25일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새 브랜드 조선 팰리스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센터필드 웨스트타워에 문을 열었다. 조선 팰리스는 이곳에서 17개 층을 사용한다. 로비층 리셉션과 연회장(3, 4층), 고층부의 객실(24~36층), 다이닝과 웰니스클럽(수영장 및 피트니스 시설)으로 구성됐다. 객실은 총 254개다.

이번 조선 팰리스 개관으로 조선호텔앤리조트는 네 번째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게 됐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현재까지 자체 브랜드로 레스케이프, 그래비티, 그랜드조선, 조선 팰리스를 내놓았다. 이중 조선 팰리스는 옛 조선호텔의 문화를 계승한 최상급 호텔 브랜드라는 설명이다. 조선 팰리스 측은 “가장 높은 수준의 호스피탈리티(환대)를 경험할 수 있는 호텔이자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최상급 호텔에 걸맞게 조선 팰리스의 인테리어 컨셉은 1920~1930년대 유럽에서 유행한 아르데코풍 디자인이다. 여기에 곡선과 골드 컬러를 주로 사용해 고급스러움과 무게감을 살렸다. 호텔 전반적인 디자인은 앞서 그랜드조선부산과 그랜드조선제주를 디자인했던 움베르트&포예가 맡았다. 움베르트&포예는 전세계 숙박·외식산업계에서 주목하는 신진 디자이너 듀오다. 이들은 옛 조선호텔의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재해석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조선 팰리스 크레프트(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조선 팰리스의 또다른 럭셔리 포인트는 크레스트(방패형에다 얹은 문장)이다. 조선 팰리스 크레스트의 왕관은 소공동에서 비롯된 왕가의 거주지임을, 아래에 자리한 숫자 1914는 조선호텔의 역사를 나타낸다. 조선호텔을 상징하는 J로고 좌우로는 사자와 봉황이 새겨져 있다. 사자는 고귀함과 품위를 상징하며 봉황은 왕가와 영생을 의미한다. 또한 크레스트에 있는 은행잎은 조선호텔의 긴 역사와 새로 맞이할 시간을, 활짝 피어난 석류꽃은 풍요로움과 앞으로 번창할 미래를 뜻한다.

한편 조선 팰리스 곳곳에는 ‘현대 한국의 황금기’라는 컨셉 아래 국내·외 현대 아트 40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조선 팰리스 측은 “풍요로움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예술작품들을 통해 조선 팰리스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선 팰리스는 고객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한다. 내부 어디를 가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예술작품들이 곳곳에 있다. 그랜드 리셉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대형 캔버스가 반갑게 맞는다. 장 미셸 오토니에의 ‘Chrysantheme’이란 이 작품은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져 있다. 그랜드 리셉션 입구 오른쪽에는 21세기 대표적인 플랑드르 예술가 요한 크레텐의 ‘Glory’가 있다. 감각적인 공예 디자인과 화려한 골드 색상이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번영’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그랜드 리셉션(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슬로건, ‘당신이 빛나는 시간’
조선 팰리스의 슬로건은 ‘당신이 빛나는 시간(Exclusively Yours)’이다. 조선 팰리스 측은 “고객에게 완벽한 기본과 선별된 가치를 선사하며 호스피탈리티의 미학을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고객이 빛나는 시간은 정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선 팰리스가 위치한 센터필드 웨스트타워는 모던하고 심플한 직사각형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조선 팰리스 입구로 향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조선 팰리스의 시그니처 컬러인 골드가 정문을 메우고 있고 도어맨이 호텔을 향해 문을 열어준다. 조선 팰리스 측은 “최근에는 도어맨 있는 호텔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조선 팰리스는 방문객에게 진정한 환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어맨이 직접 문을 열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은 그랜드 리셉션에서도 빛이 난다. 그랜드 리셉션은 고객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투숙 고객들만의 전용공간이다. 체크인과 컨시어지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조선 팰리스는 모든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겠다는 철칙 아래, 호텔업계에서 일반적으로 구성하는 ‘객실만을 판매하는 상품(Room Only)’을 없앴다. 대신 모든 투숙고객이 그랜드 리셉션에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조선 터치’(The Josun Touch) 서비스다. 조선 팰리스는 다채로운 식음료 옵션을 준비해 개개인의 취향과 감성을 존중하고 있다.

객실 안의 가구와 소품들은 모두 독특했다.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소재, 색상, 형태 등이었다. 금속, 대리석, 유리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됐고 세련된 곡선과 원형이 다채롭게 활용됐다. 가구는 마치 예술작품 같았다. 호텔 객실이 아니라 갤러리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선 팰리스는 시각뿐 아니라 후각도 만족시켰다. 조선 팰리스의 문을 열자마자 은은하게 느껴지는 향의 이름은 ‘영원한 기억’(Lasting Impression)이다. 싱그러운 베르가모트, 그린 노트, 재스민, 샌들우드, 앰버 등 자연에서 유래한 향을 층층이 쌓아 만든 조선 팰리스만의 향이다.

더불어 총 5개의 고메 컬렉션은 미식의 정점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조선 팰리스는 한식 고급 레스토랑인 ‘이타닉 가든’, 중식당 ‘더 그레이트 홍연’, 뷔페 레스토랑 ‘콘스탄스’, ‘1914 라운지&바’, 부티크 델리 ‘조선델리 더 부티크’ 등을 마련했다.

한식 고급 레스토랑인 ‘이타닉 가든’(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동생 정유경 총괄사장과의 호텔사업 경쟁?
한편 ‘용진이형’으로 인기몰이 중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조선 팰리스 오픈 한 달 전부터 직접 홍보에 나서 화제가 됐다. 지난 4월 정 부회장은 역삼동부터 롯데월드타워와 강남세브란스병원 등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당시 사진을 찍은 장소는 밝히지 않았지만 대다수 팔로워들은 조선 팰리스 상층부에서 찍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정 부회장은 조선 팰리스 크레스트와 호텔 웨딩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등 조선 팰리스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정 부회장의 호텔 사업에 대한 애정은 최근 조선호텔앤리조트의 공격적인 행보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그랜드 조선 부산점과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서울 명동점이 오픈했고, 그해 12월 그래비티 서울 판교점이 문을 열었다. 올해 1월에는 그랜드 조선 제주점이, 지난달에는 조선 팔래스가 오픈했다. 1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호텔 5곳을 선보인 것이다. 이로써 조선호텔앤리조트가 보유한 호텔은 총 9곳이 됐다. 비즈니스급부터 최상급 호텔까지 라인업을 완성한 셈이다.

한편 호텔 사업을 운영중인 동생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문) 총괄사장과의 경쟁구도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으로 나뉘면서 두 남매의 영역이 충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호텔사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정 총괄사장은 첫 번째 자체 브랜드인 호텔 ‘오노마’를 오는 8월 대전에서 오픈할 예정이다.

롯데와의 새로운 격돌
조선 팰리스 개관으로 신세계와 롯데의 새로운 격돌이 화제가 될 전망이다. 이미 양사는 온라인 시장, 스포츠 마케팅 등에서 경쟁중이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매출이 감소함에 따라 양사는 온라인으로 돌파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신세계의 'SSG닷컴과 롯데의 ‘롯데온'은 두 유통업계 맞수들이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이다.

또 지난해 신세계가 야구팀 ‘SSG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스포츠 마케팅 경쟁에 불이 붙었다. 양사는 '롯데자이언츠’ 대 ‘SSG랜더스' 라는 대결구도를 형성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해 개관한 신세계의 조선 팰리스도 롯데의 시그니엘과 맞붙을 모양새다. 정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경쟁구도가 유통, 스포츠에 이어 이제는 호텔산업으로 확장된 상황이다.

노유선 기자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