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칼럼

세계경제포럼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밥.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업을 누가 소유하는가? 이 질문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와 같은 최근의 논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소유주는 주주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너(owner) 경영이라는 표현과 함께 특수 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를 기업의 소유주라고 지칭하는 데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대주주가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맞는 말일까.

1919년 미국 미시간주의 대법원 판례(Dodge vs Ford Motor Co.)는 이 질문에 시사점을 가진다. 포드자동차의 오너경영자였던 헨리 포드는 종업원과 소비자를 지극히 중시해서 업계 최고의 종업원 우대정책을 유지했고 종업원이 월급으로 자신이 만든 차를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소비자의 인기에 힘입어 급격한 판매증가를 보이자 포드는 이익을 남겨 주주에게 배당하는 대신에 가격을 대폭 할인해 많은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살 수 있게 하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1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다지 형제가 그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함으로써 그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이 판례는 주주가 회사의 소유주이며 경영자와 이사회가 주주 이익만을 위해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취지로 잘못 이해돼 왔다. 사실은 미국에서 그 판례는 그 이후 거의 사문화됐고 주주이익이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주주우선주의(shareholder supremacy)를 지지하는 판례가 아니라 소액주주에 대한 대주주의 책임에 관한 판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 판결을 내린 판사가 포드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이해했을 리 없다. 포드는 행복한 종업원의 생산성과 혁신역량이 높고 이직률도 낮으며, 소비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소비자 충성도와 신뢰도를 높여 기업 가치를 높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사회가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기업의 존재이유인 사회적 가치 창출과 이해관계자 가치에 대해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는 생각은 시장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의 소유자는 주주가 아니라 주주를 포함한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이며, 경영자는 그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이사회는 경영자가 그러한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고 감시할 책임을 진다.

주주는 기업이 아니라 주식을 소유하며 주주는 유일한 주요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주요 이해관계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소유(주식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사회의 기능이 잘 작동하기 어려우며 그것이 ESG 평가의 한 항목인 지배구조(거버넌스)의 개선을 어렵게 한다.

더구나 대주주가 절대적 권한을 가지므로 견제장치 없이 소액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몇 년 전 우리나라도 주주, 특히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수택책임원칙(스튜워드십 코드)을 도입했다.

주주가치 보호도 중요하지만 이제 ESG 투자 바람과 함께 사회와 환경을 고려해 전반적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활동을 하고 그 성과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보고하는 경영보고책임(accountability)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해관계자를 배려한 경제구조 및 기업경영, 즉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유래는 미국에서도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대전 이후 미국경제가 성장을 시작할 무렵 이해관계자 중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을 희생시키며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보편적이었다. 독일에서 종업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종업원의 가치를 경영의사결정에 반영하겠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초기 형태라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워드 보웬은 ‘비즈니스맨의 사회적 책임’(1953)에서 궁극적으로 기업은 이익, 권력 또는 개인적인 지위상승이 아니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1970년 밀턴 프리드만의 이익지상주의 발언과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영향력으로 주주자본주의가 득세했지만 1990년 대 이후 다시 이해관계자 중심 사고가 힘을 얻었다.

세계경제포럼의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저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2021)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하고 사람(people)과 지구(planet)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많은 문제를 가진다. 첫째, 추상적 개념 정의일 뿐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둘째, 주주지상주의를 부정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균형 있는 가치 창출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균형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우선순위를 말하지만 경제적 가치에 미칠 영향(impact)의 크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제외하고 기준도 원칙도 정당성도 없다.

셋째,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경영이 경제적으로도 최적의 대안이 된다고 강조하지만 학문적 증거나 실무에서 경험의 지지가 부족하다. 넷째, 이해관계자가 기업에게 지속가능성과 ESG 성과를 요구하면서 그로부터 발생하는 자신들의 책임과 희생을 감수할 의사가 없다.

이해관계자는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과 이웃에 대한 배려와 성찰을 필요로 한다. 소비자로서, 투자자로서, 종업원으로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위해 개인적인 희생과 헌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요구하는 것은 극도의 이기주의라 할 수 있다.

그 경우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에게 자선적 기부나 이미지 관리를 위한 입에 발린 말로써 이해관계자를 대할 것이다. 값싸고, 보기 좋고, 편리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기만 하면 소비자가 열광하는데 지속가능한 기업과 사회가 가능하겠는가. 기업은 이해관계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방법을 안다.

소비자가 편하고 값싼 상품과 서비스를 원하면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것이다. 소비자가 빠른 서비스를 원하면 빠르면서도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 협력업체, 환경 등의 가치를 희생하고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가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참여하고(engaging), 배려하고(caring), 정보를 가진(informed) 깨어 있는(woke) 소비자, 투자자, 종업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업의 책임 이전에 이해관계자 책임을 논하는 것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조건이다.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지속가능경영연구소 ESG 센터장)

●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프로필

현재 인하대 지속가능경영연구소의 ESG 센터장. 국내 최초로 대학원 지속가능경영·녹색금융 전공을 개설해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속가능경영 관련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환경경영학회 창립인으로서 회장을 역임했고, 국민연금기금 사회책임전문위원과 인천시 녹색성장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는 <책임지고 돈 버는 기업들> 등이 있다.



김종대 인하대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