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비스 신청만 하면 인정…실적 채우기 급급

2021년 5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21' 행사 개막식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개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규제 샌드박스는 문재인 정부가 신산업 규제 혁신 패러다임을 '선 허용, 후 규제'로 전환한 대표 사례다. 지난 2년간 혁신의 실험장이자 갈등 과제 돌파구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2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규제 샌드박스 2주년 성과 보고회‘에서 밝힌 발언이다.

비슷한 시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책임 여당으로서 민생과 경제 회복에 집중하겠다"며 "규제샌드박스 5법 등 규제혁신 법안 등을 임시국회에서 차질 없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샌드박스란 신산업ㆍ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샌드박스의 의미를 감안하면 나무랄 데 없는 경제 정책이다. 그러나 겉 포장지를 풀고 뚜껑을 열어본 실상은 속 빈 강정이었다. 특히 금융위원회 소관의 ‘혁신금융’은 전형적인 생색내기용 성과에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깜깜이로 바뀐 핀테크 예산o수시로 달라지는 일자리 개수

금융위는 2019년부터 혁신금융을 위해 비영리 법인‘핀테크 지원센터’를 보조사업자로 선정했다. 첫 해 100억원 남짓이었던 예산은 이듬해인 2020년 194억원이 책정됐고 주요 사업 내용을 설명하는 야심찬 보도자료도 배포했다. 하지만 올해 금융위의 핀테크 지원사업 및 예산 관련 보도 자료는 자취를 감췄다.

이와 관련 박주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과장은 “지난해 예산이 공개된 이유는 알 수 없다”며“앞으로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이어 “핀테크 예산을 공개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고 답변했다.

규제를 풀겠다는 혁신금융이 도입된 지 2년 만에 금융위가 예산 규모와 사업별 예산 분배의 투명성 공개를 거부한 것이다. 혁신금융 예산을 깜깜이로 처리하겠다는 이유나 배경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금융위의 혁신금융 성과가 과대포장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 2월 국무조정실의 2주년 성과자료집에는 혁신금융에 의해 창출된 일자리를 743명으로 집계했다. 그런데 두 달 후인 지난 4월 금융위가 배포한 2주년 성과집에 나온 혁신금융 창출 일자리는 562명이다. 두 달 만에 181명이 해고됐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얼치기 집계인 것인지 불분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핀테크 대기업의 포함 여부에 따른 차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금융위가 정부에 과대 포장한 실적을 보고한 것일 수도 있고, 정부와 금융위가 핀테크 대기업의 분류 기준을 공유하지 않아 혼선을 빚은 결과물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산 집행도 주먹구구식이었다. 엉터리로 예산을 집행한 조짐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10월말 금융위는 당해 예산액 101억원 중 집행률이 5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말까지 남은 두 달동안 남은 예산을 집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핀테크 기업들의 혁신금융 사례를 접수한 뒤 이를 심사하고 결과를 검토하기까지는 상당 기간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불과 두 달 내에 50억원 가량의 예산을 쏟아내기 위해 벼락치기 심사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밖에 읽히지 않는 대목이다. 혁신금융의 달성을 서비스 품질 평가가 아닌 기간으로 설정한 셈이다. 혁신금융 서비스당 기업은 1억원을 지원받는다. 산술적으로 두 달 동안 50건에 육박하는 핀테크 지원 예산을 검토하고 지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금융위 관계자는 “(핀테크)서비스로 판정된 모든 기업을 지원했다”고 답변했다. 이는 대기업, 대형 금융기관, 이동통신 3사도 포함된다는 것인지 재차 문의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 등에는 집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성과 집계방식도 문제로 지적됐다. 거의 동일한 유사 서비스를 여러 기업이 신청하면 각각의 서비스를 혁신금융 서비스로 인정해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온라인대출을 비교하고 모집하는 플랫폼 서비스 사업이다.

지난 4월 금융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혁신금융으로 인정된 출시 서비스는 총 78건이었고 이 중에서 핀다 등 15개사가 온라인대출 모집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대출 플랫폼은 거의 같은 서비스 개념이다. 그러나 금융위는 성과를 늘리려는 듯 유사한 서비스를 각각의 서비스로 인정해 15건의 서비스 출시로 집계했다. 한 분야에서 거의 같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15개사를 혁신금융 서비스 15개로 둔갑시킨 것이다.

보험 최초 가입 시 모든 절차를 거치면 그 다음부터 클릭 한 번으로 보험 가입이 가능해 혁신금융이라고 지정된‘온오프’(On-Off) 보험서비스가 있다. NH손해보험, 뱅크샐러드인슈어런스, 보맵파트너 등이 같은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이 역시 핀테크 출시 서비스 3개로 집계했다.

이처럼 유사 서비스를 늘려서 2년 성과로 집계한 혁신금융이 78건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중 대기업o금융o통신사를 제외한 순수 핀테크 기업만의 출시 서비스는 36건이다. 78건 중 온라인대출 플랫폼과 온오프 보험서비스 등 서비스의 차이가 거의 없는 형태의 유사 서비스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혁신금융 도입 2년의 핀테크 성과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옹색하다. 하지만 금융위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소기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금융위 산하 비영리법인, 관리감독 사각지대

지난해 핀테크 지원센터는 박람회등 행사비로 17억원을 사용했다. 핀테크 맞춤형 성장지원 프로그램 예산인 16억원보다 많다. 그나마 올해 예산은 깜깜이로 장막을 쳐놓았다.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융위 산하 비영리법인 중 업무를 위탁 받아 수행하거나 예산의 규모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인 경우 금융위에게 해당 비영리법인에 대한 정기적인 감독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금융위 산하에는 총 159개의 비영리법인이 등록됐다. 이들 법인은 회원사의 회비 및 금융기관 분담금 등을 재원으로 운영되면서 금융과 관련된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중 규모가 크거나 공공업무 위탁을 받는 주요한 일부 단체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과 같은 금융공기업들로부터 운영을 위한 분담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 의원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분담금의 규모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른다.

일부 비영리법인들의 경우 퇴직 임원에게 과도한 퇴직금을 지급하거나 해외연수 중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 일정을 짜면서 경비와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문제점이 밝혀졌다. 그러나 비영리법인에 대한 관리 감독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금융위가 최근 5년간 비영리법인들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횟수는 16회, 채용실태조사는 3회에 그쳤다.

이번 개정안은 금융위가 비영리법인의 예산과 결산은 물론 사업, 사무 등에 대한 검사와 감독을 정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