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칼럼

엑슨모빌은 다른 에너지 대기업들과는 달리 화석연료 투자를 늘리는 등 기후변화 문제에서 다른 정유 메이저사들의 행보에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얼마 전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이슈에 대한 투자자와 경영자 간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엔진넘버원(Engine No. 1)이 미국 최대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의 이사 자리 셋을 차지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주주총회가 열린 직후 엔진넘버원이 최소한 두 자리를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는데, 지난 3일 세 명으로 최종 확정됐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 경영진이 기후변화 대응에 너무 소극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저탄소 시대로의 전략적 이행을 요구하며 네 명의 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 지분을 불과 0.02% 보유한 조그만 펀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를 포함한 주요 기관투자자의 지지를 받아 경영진에서 추천한 이사후보 세 명을 제친 것이다.

미국의 금융 서비스 기업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이 주총 결과를 행동주의 펀드의 ‘역사적인 승리’라고 표현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입장이 엄청나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엑슨모빌은 다른 에너지 대기업들과는 달리 화석연료 투자를 늘리는 등 기후변화 문제에서 다른 정유 메이저사들의 행보에 뒤처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던 기관투자자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을 계기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건 아니다. ESG는 투자자 및 자본시장에서 시작했고 이들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지구 온난화와 자본주의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ESG 투자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런 문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리 없으니 ESG는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투자자에게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ESG를 투자자들이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속셈으로 들고 나온 캐치프레이즈 정도로 생각하고, 이 또한 한때 유행하다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제 ESG는 그들의 투자 원칙이 됐고 주주로서 기업이 그 원칙을 실행에 옮기도록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고 투자자들이 지적하는 것을 건성으로 듣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기업들에게 엑슨모빌 주총 결과는 큰 경고 메시지가 될 것이다.

물론 진작부터 정부는 기업에게 ESG 문제 해결에 기여하라고 이런저런 제도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정부 규정은 대개 그 취지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을 규율하는데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요구 수준만 충족하면 정부는 더 이상 간여하지 않는다. 정부가 어떤 특정한 ESG 목표를 달성키 위해 개별 기업의 여건과 능력을 따져보고 각각에게 최대한으로 ‘맞춤형’ 압박을 가할 근거도 없고 또 그럴 능력도 없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투자자의 관여는 정부보다 훨씬 집요하고 효율적이다. 예컨대 전 세계 산업체 배출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167개 기업을 선정해 2018년부터 ‘감시’하고 있는 투자자 연합체인 ‘기후행동 100+’는 지난 3월 이들의 기후대응 전략과 행동을 개별 기업별로 상세하게 평가한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여기에서는 10개 평가 기준에 맞춰 개별 기업의 넷제로(탄소중립) 선언 여부, 실행 전략, 추진 체계, 자료 공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올해부터는 제대로 진전을 보이지 않는 기업들에게 넷제로 추진에 동참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할 계획이다.

투자자는 정부, 사회단체 등 외부인과 달리 기업 활동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토록 할 힘을 가지고 있다. 주주로서 경영진과의 대화, 공개서한, 주주 제안, 주총 표결 등의 수단을 통해 기업 행동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적인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필요한 ESG 활동이 미흡하거나 경영진이 소극적이라고 판단할 경우에는 해당 경영진의 연임에 반대하거나 해임을 요구함으로써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시장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데 정부보다 더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다.

최근에 투자자들의 주주 관여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엑슨모빌이나 기후환경 100+ 사례는 투자자 간 협업이 성과를 보인 대표적인 경우고, 블랙록을 위시한 대규모 기관투자자들은 개별적으로 여러 ESG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업들을 독려, 압박하고 있다.

블랙록이 지난해 말 발간한 스튜어드십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기후 변화 이외에도 다양한 이슈에 대해 주주 관여를 실행하고 있다. 블랙록은 2019년 하반기와 지난해 상반기에 걸쳐 2000여 개 기업에 대해 3000건 이상의 주주 관여 활동을 했는데, 이는 전 해에 비해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지금까지 가장 높은 숫자다. 또 이 기업들이 블랙록의 주식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에 달했다.

블랙록은 의결권 행사 또한 적극적이다. 먼저 기후변화 이슈와 관련해서는 55명 이사 또는 이사 관련 항목에 대해 반대를 했다.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 자체는 가결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기업 행동을 바꾸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영국 런던 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350개 기업(FTSE 350) 중 블랙록이 임원 보수에 대해 반대한 경우에는 그 중 83% 기업이 12개월 내에 보상 정책을 변경했다. 또 미국 상위 3000개 기업(Russell 3000) 중에서 2019년에 여성 이사 선임을 요구하며 이사 선임안에 반대했던 경우에는 41%의 기업이 그 다음 해에 여성 이사를 늘렸다.

주주 제안은 건수가 늘고 있지는 않지만 점점 더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에서 이뤄진 환경 및 사회 이슈 관련 주주 제안은 매년 400건 내외였는데, 이 중에서 약 200건 가까이가 표결까지 이어지고 있다.

표결 결과를 보면 주주 30% 이상의 지지를 받은 비율이 35%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0년 15%, 2018년 23%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또 환경 및 사회 이슈에서 3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주주 제안 중 75%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기업이 제안 내용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미국, 유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결권 행사를 많이 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한 의안 중에서 16.5%에 반대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기 전인 2017년 반대율 11.9%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투자자들은 이처럼 자신의 인센티브에 맞춰 장기적인 ESG 목표를 세우고 자신이 투자한 기업들이 이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해주기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주주들의 요구를 허투루 여길 수 있는 경영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조신 연세대 교수

●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프로필

대통령 비서실 미래전략수석, SK브로드밴드 대표,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MD,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파리협정(2015) 체결 시 정책결정에 참여한 인연을 계기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기업 지배구조 관련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IT 인사이드> 등이 있다.



조신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