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앞서가는 중국과 일본, 실생활에 이미 접목시켜

( 자료=한국은행/연합뉴스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한국은행이 금융권을 대상으로 디지털화폐(CBDC)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실무 작업 준비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CBDC는 전자적 형태의 중앙은행 화폐이다. BIS는 대형 기술기업이 통화의 지배권을 보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CBDC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한은이 디지털화폐 용역 설명회 열자 열기 후끈

지난 14일 한은은 금융업계를 대상으로 ‘CBDC 연구 현황’ 설명회를 가졌다. 한은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자체 구축한 원격회의시스템을 통해 비공개 설명회를 개최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은이 지난달 ‘중앙은행 CBDC 모의실험 연구’를 위한 용역자 선정을 예고하자 관련업계가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은측에서 과열 조짐을 우려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기술력 인증 효과였다. 금융권은 물론 정보기술(IT) 업체들도 한은의 용역업체로 선정될 경우 기술력을 보증 받는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이 처음으로 민간기업을 참여시킨 이번 CBDC 모의실험 연구는 다음달 기술평가와 협상을 거쳐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한다.

오는 8월부터 모의실험 수행환경을 조성하고 CBDC 기본 기능에 대한 1단계 실험을 시작해 연말까지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어 조성된 실험환경을 통해 CBDC 확장기능 실험, 개인정보보호 강화기술 적용 여부 등에 대한 2단계 실험을 내년 6월까지 수행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창립 71주년 기념사를 통해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총재는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CBDC의 도입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 있는 만큼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핀테크 확산, 전자지급수단 다양화 등 지급결제 부문의 혁신은 안전성에 기반해 추진돼야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디지털화폐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던 미국도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 부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부에서 디지털화폐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화상 발표를 통해 이번 여름에 지급결제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대한 연준의 대응전략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공표했다.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도 외부 연설에서 CBDC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배경과 정책 및 기술적 고려사항 등을 언급했다. 이어 여름에 나올 연준의 보고서가 공개의견을 요청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오는 8월 주요국 중앙은행장들의 연찬회인 잭슨홀 미팅에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과 함께 CBDC 도입이 주요 의제로 논의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中 민생소비 분야 테스트, 日 디지털 급여 확대 논의

디지털화폐 발행에 적극적인 중국의 경우 이달초 열린 금융시장 관련 루지아주이 포럼에서 CBDC를 빠지지 않고 챙겼다.

포럼에 참석한 무장춘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장은 “현재 진행중인 디지털 위안화의 시범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보고했다.

무 소장은 “디지털 위안화 지급방식의 핵심은 디지털 전자지갑”이라며“디지털 위안화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보안등급 하위 전자지갑으로 돈을 보낸 후 바로 사용 가능한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테스트를 실시 중이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첫 번째 디지털 위안화 테스트는 지난해 5월 선전, 쑤저우, 청두 그리고 베이징 인근 슝안신구등 4개 지역에서 실시했다. 인민은행은 광범위한 소비자의 반응 등을 점검하기 위해 스타벅스, 맥도날드, 서브웨이, 앤트파이낸셜, 텐센트, 식당·소매점 등을 참가시켰다.

시범 테스트에서 중국 공산당원들은 국유은행을 통해 회비를 디지털 위안화로 지불했다. 쑤저우에서는 공무원의 여행 보조금중 일부를 디지털 위안화로 지급했다.

인민은행은 지난 12~14일 단오절 연휴 때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대규모로 디지털 위안화 시범 프로젝트를 추가 진행했다. 주민들에게 5925만위안(약 103억원)의 디지털 위안화를 지급한 것이다. 참여 대상은 백화점·음식점·관광지·자동판매기·영화관 등 주로 민생소비분야로 구성됐다.

한편 최근 일본에서도 디지털 화폐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근로자의 급여를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지급할 수 있는 디지털 급여 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디지털 급여 제도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먼저 도입됐다. 은행 계좌 개설이 곤란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페이롤카드(충전식 선불카드)로 임금 지급이 가능하도록 한 규제 완화가 그 출발점이다.

일본은 현재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프리랜서·개인사업자의 보수는 물론 경비까지 디지털머니 형태로 지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프리랜서 등이 디지털 급여를 선택하면 라인페이, 아시아페이 등 자금이체업자가 서비스하는 모바일페이의 디지털머니로 받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디지털머니는 민간 모바일페이 등에서 만든 것으로 중앙은행 CBDC와 다르다.

근로기준법상의 규제를 받는 근로자의 경우에도 일반 경비나 교통비를 정산할 때 자금이체업자의 모바일페이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 근로자의 급여는 디지털머니로 지급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시장 관계자들은 “약 280조엔(약 2877조원)의 근로자 임금까지 디지털 급여가 적용되면 기존의 은행 계좌를 통한 자금흐름과 금융시스템상의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디지털 급여의 도입은 결제나 송금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신규 비즈니스의 창출 등을 통한 국가 전체적인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기존 은행들의 영업환경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의 급여 통장을 통해 누려온 은행들의 이체수수료 수입이 감소하고 기존 고객도 이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은행은 디지털 급여 도입에 따른 장기적 영향을 미리 파악해 자금이체업자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경영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