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소비자물가, 상당한 상승 압력에 직면

( 출처=미국 농무부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 2위 업체 오뚜기가 오는 8월부터 라면 가격을 평균 11.9%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지난 15일 발표했다. 오뚜기의 라면값 인상은 13년 만이다. 인건비도 올랐으나, 무엇보다 라면의 원재료인 소맥·팜유가 1년전 보다 30~70% 이상 오르니 오뚜기로서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애그플레이션’의 위협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영향으로 일반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3대 곡물인 옥수수·소맥·대두, 올 상반기 50% 급등

국제금융센터는 7월 발간한 ‘국제금융 인사이트(INSIGHT)’에서 애그플레이션이 10년 만에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 곡물을 포함한 국제 농산물 가격이 지난해 8월 이후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최근 공급망 병목으로 들썩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농산물 가격의 급등세까지 가세하고 있다고 국금센터가 우려하는 이유다. 유엔(UN) 농업식량기구(FAO)의 실질 식품 가격지수는 지난해 5월 92.0에서 올해 5월 126.4로 12개월 연속 상승세다. 또한 11년 내 최고치이다. 단기 강세에도 불구하고 추가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금센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기상 여건 악화, 투기 세력, 식량 민족주의가 뒤엉켜 국제 곡물 가격이 초강세를 기록했다. 소맥 가격은 2007년 두 배 이상 오르는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해 애그플레이션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2010년 러시아와 미국 중서부의 큰 가뭄을 끝으로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애그플레이션이 최근 다시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오정석 국금센터 전문위원은 “무엇보다 수급불균형이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2020~2021년 세계 곡물 수급은 3,140만 톤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2021~2022년에는 공급과잉으로 전환될 수 있으나 그 폭이 크지 않으리라고 추정된다. 내년까지 곡물 재고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오 전문위원은 “생산국들의 농업기상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도 추가 강세를 자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가뭄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생산이 부진했던 유럽은 올해 다소 회복될 수 있으나, 2019~2020년 수준까지 올라오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곡물이 본격적으로 생장하는 7~8월 중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올해 생산량은 예상을 크게 밑돌 수 있다.

곡물 부문의 보복 소비도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 지원금 및 경기회복에 따른 소득 증대로 육류·유제품 소비와 사료용 곡물 수요가 동반 증가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미국과 갈등 중인 중국의 지난 1~5월 옥수수 수입은 1173만 톤으로 지난해 연간 기록을 넘어섰다. 소맥과 대두 역시 5개월 치 수입 누계치가 지난해 1년치를 벌써 웃돌고 있다.오 전문위원은 “바이오 연료의 중요성이 다시 확대되는 점도 곡물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탄올의 경우 옥수수와 사탕수수, 바이오디젤은 대두를 주원료로 하고 있다. 바이오 연료의 활성화는 곡물 수급과 가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하반기 중 애그플레이션의 영향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오 전문위원은 전망했다. 2008년에는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한 후 4~7개월 지나면 국내 물가에 반영됐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수입 곡물 가격이 10% 오르면, 전체 소비자물가는 0.39%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상반기 옥수수·소맥·대두 등 3대 국제 곡물 가격이 최대 50%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 소비자물가는 상당한 상승 압력에 시달릴 수 있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 최악 상황을 가정한 대응 방안 필요

한편 오 전문위원은 “농수산 발(發) 물가상승 압력은 선진·신흥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곡물 수출국들은 생산 농가를 중심으로 소득 증대가 가능하나 국내적으로 체감 물가가 높아진다. 축산업 등 곡물을 원재료로 활용하는 산업군에서는 생산비 부담이 늘어난다. 따라서 국가 전체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곡물 수입국의 경우 가격 상승의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특히 곡물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인해 저소득 국가들의 기아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자칫 정치적·사회적 불안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민주화 시위 ‘아랍의 봄’은 2010년 러시아의 대가뭄과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애그플레이션의 또 다른 우려는 기상 여건에 좌우되는 만큼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업제품과 달리 생산에 오랜 시간이 걸려 가격이 급등한다고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 없다. 수요 역시 비싸다고 곧바로 줄지 않는다. 식료품은 가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비탄력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애그플레이션의 경제적 파장은 물가 상승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는 금리 인상 등 통화긴축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애그플레이션이 물가를 높이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리면 서민의 삶은 이중삼중으로 더 힘들어진다. 오 전문위원은 계층 간 불균형이 심화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세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식량안보 차원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응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사료용을 포함해도 2019년 기준으로 21%에 불과하다. 쌀을 제외하면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식량 파동까지 대비하는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기이다.



박병우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