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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회피와 이익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크립토 유목민’

규제 손길 닿지 않는 국가로 옮겨 고위험 가상화폐 파생상품 유혹
  • ( 츨처=coin metrics,뉴욕타임스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돈을 좇아 규제와 위험을 피해 세계를 떠도는 ‘크립토 유목민’이 늘어나고 있다. 크립토는 영미권에서 주로 사용하는‘크립토커런시’의 준말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암호화폐) 를 의미한다. 따라서 크립토 유목민은 위험 회피와 이익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는 가상화폐 플랫폼을 제공하는 운영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비트코인 파생상품을 제공하는 가상자산 플랫폼들이 시장의 주요 거래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등 정부의 규제를 피해 다니면서 고위험·고수익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4시간 가동 가상화폐 거래소 본사는 규제없는 제3국

홍콩의 자정이 넘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29세의 샘 뱅크맨-프라이드는 6대의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세계 가상자산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가격 붕괴를 주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처럼 24시간 내내 일하고 도중에 컴퓨터 근처의 빈 곳을 찾아 백 가방에서 낮잠을 잔다. 지난 봄부터 시작된 가상자산 시장의 침체로 전 세계 손실은 1조3,000억 달러(약 1,497조 원)에 달한다. 그의 회사도 시장 붕괴에 일정 역할을 했다. 현재 대부분 국가가 규제에 나선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은 거칠고, 잦은 거래로 유명하다. 특히 뱅크맨이 운영하는 가상자산 플랫폼 FTX는 가격 급락을 유발시키는 거래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즉, 비트코인 현물보다 선물 등 파생상품 거래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고객의 수익 극대화를 미끼로 엄청난 차입 자금을 제공한다. 이른바 레버리지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거래이다. 물론 이익이 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지난 5월 비트코인의 붕괴는 이 같은 차입을 낀 파생상품 투자자들의 물량이 강제 청산된 영향이 크다. 특히 만기가 없는 ‘영구 스와프’(perpetual swap)가 대표적 파생상품이다.

파생상품이 강제로 청산될 때 가격급변은 극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융당국은 이 같은 고위험성을 우려해 규제에 나섰다. 이에 따라 뱅크맨처럼 국가의 규제를 피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가상화폐 플랫폼을 운영하는 크립토 유목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중국계 캐나다인 자오 창펑은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 창업자로 크립토 유목민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동아프리카 인도양 섬나라인 세이셸에 본거지를 둔 거래소 비트멕스(BitMEX)의 창업을 도운 디트로이트 출신 무역업자 아서 헤이스도 대표적인 크립토 유목민이다. 뱅크맨은 “하루 24시간, 365일 거래가 절대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가상화폐 거래소는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운영된다. 크립토 유목민들은 ‘다크 크립토 로드’와 같은 가명으로 돌아다닌다. 테슬라나 아이폰을 경품으로 받을 수 있는 고객을 위해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글로벌 놀이터도 만들고 있다.

카네기 멜런대 연구진이 분석한 업계 자료에 따르면, 이들 플랫폼이 제공하는 높은 차입 비율을 제공하는 파생상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루 파생상품 거래 규모가 비트코인 현물 거래 규모의 최대 10배를 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도박성이 높은 상품을 제공하는 거래소에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미국 관련 투자 자금들이 당국의 금지 조치를 피해 이 같은 글로벌 가상화폐 사이트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했다. 이와 관련해 티머시 마사드 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이런 고위험 상품이 다음 금융위기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하지만 이것이 텍사스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브라질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나비 같은 것일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 있다.

이에 대해 바이낸스 창업자인 자오는 "차입 투자로 변동성이 증폭된 것은 확실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차입이 고도로 활용되는 선물거래 형태의 파생상품은 증권가는 물론 외환시장에도 널리 퍼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 감독 당국이 이런 창의적인 투자 기회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을 제기했다. 억만장자 사업가이며 가상화폐 투자 광인 마크 쿠바는 FTX의 자금 조달을 돕고 있는 펀드 후원자이다. 그는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래소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금융 기회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FTX는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9억 달러(약1조원) 규모의 증자에 성공했다. 그때 회사 가치는 180억 달러(약 20조 원)로 평가받았다. 포브스는 이 거래로 회사 지분 60%를 소유한 뱅크맨 프리드의 재산이 160억 달러(약 18조 원)로 불어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뱅크맨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4년 동안 근무하다가 가상자산 산업에 뛰어들어 일약 억만장자 대열에 가세하게 됐다.

도박과 위험한 게임 즐기는 소액 투자자 타깃

그는 비트코인과 다른 가상화폐들이 때때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나의 자산에 두 개의 가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전형적인 차익거래를 시도할 기회를 포착한 뱅크맨은 미국에서 낮은 가격에 구매, 일본에서 더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그러나 결과는 복잡해졌다. 그가 빠르게 거액을 이체하려 하자 금융기관들이 그의 계좌를 폐쇄했다. 그는 또 현지 은행에서 거래를 마치기 위해 일본 국적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이런 초기 거래로만 수천만 달러를 벌었다. 뱅크맨은 2018년 중국에서 열린 가상자산 관련 회의에 참석한 후 홍콩에 정착했다. 그는 홍콩에서 파생상품을 전문으로 하는 FTX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전통시장에서 파생상품은 농부나 다른 사업체가 석유·곡물 같은 상품의 미래 가격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농업, 에너지, 금속 등 분야에서 옵션과 선물을 제공한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일부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CME은 연방정부의 감독을 받는 전형적인 거래소이고 전문 트레이더만이 차입 거래 한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제약을 달았다.

비트멕스를 만든 가상화폐 혁신가 헤이스는 파생상품에 특화된 플랫폼을 구상했다. 그래서 출시한 상품이 영구 스와프였다. 영구 스와프는 만기가 되지 않는 미래 가격 변동에 대해 내기를 거는 파생상품이다. 차입 시 투자 비율은 100배까지 올려줬다. 즉, 1,000달러를 걸면 비트코인의 미래 가격에 대해 10만 달러만큼의 내기로 즉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트멕스가 노린 것은 애초 전문 거래자뿐만 아니라 도박에 취미가 있는 소액 투자자와 위험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까지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헤이스는 “얼핏 비트코인 개인투자자를 겨냥하는 듯 보이나, 차입이 높은 고위험 파생상품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퇴폐적인 도박꾼을 노리는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곳이 있다”며 “우리도 똑같이 해보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소셜 미디어 광고를 시작했다.

적어도 사업 초기에는 비트멕스와 바이낸스도 기업의 의무 사항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최근에는 미국 투자자들의 거래를 억제하려는 조치도 도입했다. 지난해 말 미국 법무부와 분쟁이 발생한 후에 헤이스는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만든 고차입 파생상품 모델은 규모가 더 커졌다. FTX와 바이낸스는 대부분 아시아에 기반을 둔 12개 이상의 글로벌 가상자산 플랫폼이다. FTX의 하루 이용자는 100만 명이다. 그들이 하루 거래하는 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200억 달러(약 23조 원)로 추정되고 있다. 플랫폼 간 경쟁도 치열하다. 뱅크맨은 비트멕스를 앞지르기 위해 FTX 파생상품의 차입 비율을 101배 이상까지 올렸다. 그러자 바이낸스는 125배로 상향 조정했다. 이 플랫폼들은 거래자에 대한 기본 가상자산의 가격이 변동해 강제 청산 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를 받아 간다. 지난 5월 중국 내 가상자산 탄압 소동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오락가락한 언급에서 촉발된 영향으로 가상화폐의 가격 추락이 시작됐다. 파생 상품의 강제 청산도 가격 폭락에 일조했다. FTX, 바이낸스, 비트멕스측은 고객 중 극히 일부만이 실제로 높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소액 투자자도 가격이 급락하면 손실이 빠르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18일 하루 동안 주요 거래소 등에서 청산된 물량만 16억 달러(약 1조8000억 원)로 추산된다. 가상자산 파생상품 업계에서는 지난 5월 중순까지 강제 청산된 총규모를 200억 달러(약 23조 원)로 파악하고 있다. 자오는“당신이 선물 거래 시 매번 최대한의 차입 비율로 투자한다면 단 한 번의 실수에 모든 걸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 선물 거래업자들의 최우선 규칙은 위험관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마이클 그린 암호학 평론가는 “파생상품 시장은 본질적으로 초보 거래자들을 상대로 하는 쌓기 게임”이라며“비트코인 파생상품 시장은 사실상 미등록 카지노”라고 비판했다.

본사 주소는 제3국이지만 직원은 미국에서 근무하기도

한편 바이낸스는 2017년 7월 상하이에 사무소를 설립했다. 그러나 두 달 후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에 대한 단속을 발표하자 이 회사는 도쿄로 이전했다. 그러자 일본은 새로운 암호 교환 규칙을 발표했다. 자오는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다음 기착지는 중부 지중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몰타였다. 현재 자오는 회사의 본사가 어디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암호화폐 거래소 데리빗은 지난해 자회사인 DRB파나마에 의해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본거지를 네덜란드에서 남미의 파나마로 옮긴 것이다. 또한 임원 몇 명이 중앙아메리카로 이주했다고 회사 관계자가 밝혔다. 이에 맞춰 간부들의 소셜 미디어에는 야자나무와 열대지방의 풍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파생상품 전문거래소인 BTSE는 본사를 두바이에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로 옮겼다. 그러나 일부 가상화폐 거래소는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허위 주소를 흘리고 있다. 가령 비트멕스가 섬 공화국 세이셸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했지만 미국 연방 수사관들은 직원 대부분이 뉴욕, 홍콩,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만 해도 홍콩은 가상자산 업계 종사자들의 주된 모임 장소였다. 그들은 홍콩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현지 술집이나 카페 등에서 토론회를 가졌다. 이때 바이낸스의 설립자인 자오가 모임에 자주 나타난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자오는 대부분의 가상자산 관련 모임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했다고 NYT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대해 "매우 독특한 괴짜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간혹 열정이 넘쳤다"고 묘사했다. 개인적 연관성은 때때로 금전적 유대로 이어진다. 자오의 무역 회사는 뱅크맨 프리드가 설립한 거래소의 초기 투자자였다. 또한 뱅크맨 프리드의 무역 회사는 자오가 만든 바이낸스의 고객이었다. 또한 그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뱅크맨과 자오는 별도의 인터뷰에서 비록 자신들의 영업이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더라도 미국의 규정을 준수할 것임을 약속했다. 바이낸스는 “최근 감독 당국의 정밀 조사는 가상자산 시장을 주류로 수용한 데 따른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미 당국의 조치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뱅크맨은 125배까지 치솟은 파생상품 차입 비율은 극단적인 투기로 비칠 수 있어 철회해야 할 때라는 입장을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 파생상품 시장은 계속 급상승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업체들이 여전히 파생상품 게임에 돈을 쏟아붓는 분명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2개 이상의 미국 내 민간 회사들이 케이맨 군도와 기타 해외 지역에 지사를 설립했다. 그들이 바이낸스와 FTX의 파생상품 플랫폼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기업을 만들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pbw@hankooki.com
  • ( 출처 : 카네기 멜런대학교,뉴욕타임스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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