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공급대책 1년, 신규 택지 후보지 실제 진척된 곳 없어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이 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2028년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13만2000가구 신규 물량을 공급하겠다.” 정부가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이라며 야심차게 발표한 8·4 공급대책이 발표 1년이 된 가운데 이렇다 할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며 지지부진하고 있다. 발표 직후부터 ‘들끓는 부동산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급조됐다’는 비판이 일어왔던 8·4 대책은 1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실효성과 현실 가능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주민 반발 등에 부딪혀 전체 3만 3000가구 규모의 신규택지 후보지 가운데 사업계획이 확정된 곳은 현재까지 한 곳도 없는 상태다.

성난 부동산 민심 돌리려 급조된 태생적 한계

8·4 공급대책은 △도심 고밀 개발을 위한 규제 완화 △수도권 재건축 용적률 상향 △유휴부지o국가시설 부지 활용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도심 공실 상가·오피스 활용 등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부동산 실수요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에 13만2000 가구의 신규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당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대책은 사실 태생부터 폭발하는 부동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급조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8·4 대책에 두 달 앞선 6·17 대책이 규제지역을 수도권 전역으로 넓히고 전세대출을 막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어 부동산 민심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론을 달래기 위해 급히 만든 8·4 대책은 처음부터 한계를 안고 시작했다.

우선 관심을 모았던 3만3000 가구 규모의 신규택지 후보지 중 지구지정, 사업계획 승인 등 실제 진척이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당시 정부는 노원구 태릉골프장(1만가구)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유휴부지(4000가구),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가구), 상암DMC 미매각부지(2000가구) 등을 신규택지 후보지로 제시했다. 앞선 공급 대책에서 8000가구였던 용산철도정비창은 1만가구로,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는 800가구에서 3000가구로 공급규모를 늘려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진척 내용을 들여다보면 ‘첩첩산중’이다.

용산의 경우 용산철도정비창 공급 계획을 주민들이 반대하며 ‘용산개발 정상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또한 해당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조성해야 한다며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주택 공급안을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규택지 후보지중 가장 큰 부지인 태릉골프장은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에 제동이 걸렸다. 교통난과 녹지훼손 등의 이유로 주민들과 시민단체들도 맞서고 있다. 노원구는 공급 계획의 절반 수준인 5000가구 규모로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줄어든 물량만큼 대체부지에 옮기는 방안도 거론되는 중이다.

태릉·용산·상암·과천 등 주요 부지 주민 반발 부딪혀 난항

8o4 대책의 주요 아파트 공급 부지 중 하나였던 서울 상암동에도 서울시가 원안대로 주택을 공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상암DMC 미매각 부지는 당초 업무지구로 조성하겠다는 정부 계획을 변경하는 것에 대한 주민 반발이 거세다.

과천청사부지 4000가구 공급계획도 난항에 빠졌다. 주민들의 반대여론으로 김종천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까지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청사부지 대신 대체지를 통해 4300가구를 공급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서부면허시험장과 서초구의 서울지방조달청 부지 등은 대체부지를 선정하지 못했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신규 택지 중 계획대로 진행중인 부지는 아직까지 한 곳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더라도 택지 조성부터 개발 등을 합쳐 몇 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1년의 시간을 허비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도심 공실을 상가·오피스로 활용하겠다는 공공재건축 부분도 마찬가지다. 5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후보지로 선정한 5곳 중 사업을 추진 중인 곳은 정부가 당초 제시한 목표의 3% 안팎에 불과하다. 후보지였던 관악구 미성건영(695가구)은 공공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포기하고 민간 재건축으로 결정되는 등 기존 후보지 중 참여 결정을 철회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기부채납 비율이 높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이 시행되면서 사업성이 떨어져서다.

국토부 “주요 사업 차질 없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

이에 대해 정부는 “부동산 관련 주요 사업은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다”고 적극 해명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일 보도 설명자료를 내고 작년 8·4 대책과 뒤이은 올해 2·4 대책의 핵심 공급 계획은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는 “태릉 골프장과 과천 정부청사부지 등 8·4 공급대책의 신규 공공택지 사업은 개발계획 마련과 지자체 협의 등 통상의 절차를 착실하게 밟으며 정상 추진 중이며, 이달 중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태릉 골프장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의 경우 발표 직후부터 관계기관 협의에 들어가 현재 상당 부분 사업 절차가 진척됐고, 이달 중 교통o공원녹지o일자리o문화재o경관 등 도시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마치고 구체적 개발구상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과천 정부청사 부지 사업의 경우 사업이 철회 또는 취소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입지를 구해 계획이 수정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공공재건축, 공공재개발 등 공공정비사업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 도심 내 주택 공급사업도 후보지 선정과 주민동의 확보 등 사업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공공재개발과 공공재건축은 현재 총 32곳, 3만4천호의 후보지를 발굴했다는 것이다.

사업 추진도 이 후보지의 조합 설립 절차를 발표 후 1년 이내로 대폭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반대 의견이 있는 곳은 구체적 사업효과와 인센티브 등을 제시하고 충분히 설명하되, 주민 의사를 존중해 예정지구 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에도 8·4 대책 자체가 실제 사업 타당성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악화된 부동산 여론에 대응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실제로 8·4 대책 발표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집값 상승과 투기조장만 부추길 뿐”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대책 발표가 나온 날 성명을 통해 “지금처럼 집값에 거품이 잔뜩 낀 상황에서 분양가를 찔끔 낮춘 새 아파트가 시장에 나오더라도 오히려 주변 집값을 자극할 뿐”이라고 밝혔다. 지금의 집값 폭등이 부족한 공급 물량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 경실련은“대책으로 발표된 26만호 가운데 서민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은 일부에 불과하고 70%는 과거처럼 판매용 아파트”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대규모 공급 대책 발표 후 1년이 지났지만 의도했던 부동산 시장 안정 효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정부는 8·4 대책을 기점으로 그동안 수요억제책에서 공급 정책으로 기조를 전환하고자 했으나 집값은 그칠 줄 모른 채 치솟고 있다. 대책 발표 후에는 한두 달 가량 집값이 안정화되는 듯한 기세를 보이다가도 다시 상승폭이 커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전국 아파트값 15년만에 최고 수준

서울 아파트 수급동향은 최근 다시 급등 분위기다. 매매, 전세, 월세 등 모든 거래에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일 발표한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지난 6월 매매수급동향 지수는 121로 5월보다 11.1포인트 올랐다. 수급동향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높으면 집주인이 우위인 시장이 형성되는 것으로 판단한다.

8o4 대책에도 전국 아파트값은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다. 지난해 7월부터 11개월간 전국 아파트값은 10.8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2006년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른바 ‘패닉바잉’(공황구매)으로 불리는 2030세대의 매수 열풍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신고일 기준)는 4240건 중 30대의 아파트 매매건수가 1491건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이하 거래까지 포함하면 2030세대 매수 비중이 40.7%에 달할 정도다.

“부동산 정책 담당자 처벌” 국민청원도 등장

이에 따라 정부가 추진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했다며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국민청원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집값폭등! 국가는 국민에게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린 청원인은 지난 1년간의 과정을 신랄하게 묘사했다.

청원인은 “연일 집값이 고점이라고, 집값이 큰 폭으로 내릴 수 있으니 추격 매수를 자제하라고 경고하지만 국민은 비웃는다”며 “1년 전 전임 장관도 ‘거품이다,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투자)하지 말고 기다려라,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집값은 배 가까이 올랐고 약속한 3기 신도시 분양가도 2배로 올려 분노케 했다. ‘정부 말 들은 무주택자만 벼락거지 됐다, 지금사야 가장 싸다’는 두려움에 무주택서민은 오늘도 패닉바잉 중”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을 초등학생 딸이 있는 47세 가장이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아예 ‘부동산 정책 담당자의 징계와 처벌’을 직접적으로 청원했다. 그는 “무리하게 대출 받아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시점도 있었지만 ‘부동산 정책 자신있다’ ‘지금 사면 후회할 것’이라는 자신 만만한 정부의 이야기를 믿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결혼하고 거의 20년 동안 큰 싸움 한번 없던 저희 부부가 요새 거의 매일 싸움이다. 3억원짜리 전세가 내년에 5억5000만원이 된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머리를 짜내서 궁리를 해도 2억5000만원이 나올 구멍이 없다. 답도 없고, 해결 책도 없고, 희망도 없는 문제를 두고 부부가 거의 매일 싸우고 있다”고 호소했다.

시장에서는 현재 대통령 선거를 8개월 앞둔 시점에서 정부에 시장 안정을 위한 묘수를 담은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지난 6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부동산과 관련해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방법이 있다면 정책을 어디에서 훔쳐라도 오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한국부동산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토연구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택금융연구원 등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서울 목동 등의 공인중개사를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일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부동산 시장 및 시장 참여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8월 예정된 신규택지 13만호 발표, 민영주택 등에 대한 사전청약 확대 등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