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6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물가 안정 vs 경기 회복’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여부를 놓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을 위해 시장에 메시지를 전해왔던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오는 26일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앞두고 고심하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와 기록적인 가계부채로 금리 인상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금리인상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이 받을 타격이 커져 경기침체도 우려되고 있어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있다.

소비자물가 9년여 만에 최고 상승폭…“물가 상승압력 확대”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가 2.6% 상승해 9년여 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4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이다. 특히 농축수산물 물가는 올해 2분기에만 11.9% 올라 1991년(12.5%) 이후 30년 만의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

이에 따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012년 이후 9년 만에 2%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6월 물가안정목표 보고에서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 압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지난달 15일 열린 금통위에서도 ‘꾸준히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인플레이션 기대가 물가의 지속적 상승을 부르는 이른바 ‘인플레이션 소용돌이(inflation spiral)’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물가 상승 압력이 더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한은의 고민이 묻어 있는 대목이다.

가계부채 증가율도 2004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

역대 최대치를 보이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율도 한국은행으로서는 금리 인상 카드를 빼들어야 할 부담 요소다.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풍부해진 시중 유동 자금이 부동산 및 각종 자산시장에서 거품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40조2000억원으로 6월말보다 9조7000억원이 늘었다. 7월 증가액 기준으로는 2004년 통계 집계 이래 최대다.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한 달간 6조1000억원이나 늘었고 6월보다 증가 속도도 빨라졌다.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 기타대출 증가세도 두드러졌다. 6월 1조3000억원이 증가했던 기타대출은 7월에는 3조6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카카오뱅크, 에스디바이오센서 등 공모주 청약 관련 자금수요의 영향이다. 박성진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7월 이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효과를 비롯해 주택시장 상황,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 등 복합적인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면서도 “현재 주택매매 자금 및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 수요 등을 볼 때 당분간 가계부채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집값 역시 오름세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가격과 수도권 아파트값은 2002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가 잇달아 강경한 규제와 매머드 공급 계획을 담은 부동산 정책을 선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을 더 부채질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 커질수록 고개 드는 금리 인상설

이처럼 치솟는 물가와 집값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에 금리 인상의 이유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경기 위축 우려에 쉽사리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금리를 인상하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취약계층이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2000명 안팎을 기록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진 것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경기 부진이 심화될 경우 경기가 침체되는 데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대체적으로 금리인상설에 힘을 싣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기준금리 인상은 모든 면에서 부담 요인”이라면서도 “최근 시장금리의 반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과 한은과 기획재정부에서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의 종료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망했다.

교보증권도 이주열 총재가 금융 불균형 누증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문제라고 평가하며 시급성을 언급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은은 코로나19의 부정적 영향은 학습효과로 인해 점차 감소하는 이슈지만 가계의 과도한 위험 추구는 부정적 영향이 높아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금리인상설에 힘을 실었다. 구체적으로 “금통위 구성 상 4~5명의 위원이 금리인상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10월 한 차례 인상 이후 내년 초 한 차례 추가로 금리가 인상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