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금융업 미등록…허술한 ‘사각지대’가 피해 키워

경찰이 대규모 환불 사태를 일으킨 머지포인트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18일 서울 영등포구 머지포인트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20% 무제한 할인 서비스’라는 전무후무한 파격 할인혜택으로 고객을 끌어 모았던 머지포인트가 결국 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가입자 100만명을 무기로 11번가·G마켓·옥션·위메프·티몬 등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에서 판매는 물론 KB국민카드와도 제휴를 맺었던 이 회사는 갑작스럽게 판매를 중단하고 사용처를 축소했다.

이에 따라 고객들의 환불 요청이 들끓고 있지만 환불이 제대로 이뤄질지, 정확한 피해액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미지수다. 금융당국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정치권에서도 사태를 엄중히 대할 것을 예고했지만 아직 상황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00만명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이 이렇듯 순식간에 부실 폭탄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뭘까.

머지포인트, 3년만에 가입자 100만명·거래액 1000억원대 돌파

지난 2018년 2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머지포인트는 할인 결제 플랫폼이다. ‘이커머스’ 업체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하는 머지머니와 월간 구독료 1만5000원을 내면 가맹점에서 20% 상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구독형 멤버십 머지플러스 서비스를 출시했다.

초반에는 1만원, 5만원 등 소액 판매 위주였지만 사업을 확대하면서 지난해부터는 50만원까지 판매액을 꾸준히 늘려왔다. 이용자 확보를 위해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에서는 20%를 할인해 포인트 바우처도 판매했다. 이 같은 파격 할인과 공격적인 판매 방식으로 머지포인트는 서비스 출시 3년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 동안 발행한 머지머니는 1000억원 대, 제휴 가맹점 수는 8만개까지 늘어났다.

KB국민카드는 지난 6월 초 머지포인트와 업무 협약을 맺고 머지포인트가 운영 중인 정기구독 서비스 관련 특화 혜택 등을 담은 상업자표시 신용카드(PLCC)를 연내 출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머지포인트는 다양한 구독형 상품인 ‘머지패스’ ‘머지플러스 연간권’ 등도 내놨다.

미등록 업체로 운영하다 금융당국 권고로 가맹점 90% 축소

문제는 지난 11일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가 머지머니 판매를 중단하고 사용처를 축소한다고 기습 발표하면서부터다.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전자금융업’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운영하고 있는 점을 지적 받자 판매를 중단하고 사용처도 10분의 1 규모로 축소한 것이다.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채 영업을 해 온 머지플러스는 ‘머지플러스 서비스가 선불전자지급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가맹점을 음식점으로 축소시켰다. 2개 이상 업종에서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으면 선불전자지급 수단이기 때문에 음식점업으로만 제휴처를 축소해 위법 논란을 피하는 미봉책을 쓴 것이다.

이에 따라 이용률이 높았던 대형마트·편의점·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등은 가맹점에서 빠지고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식당 위주로 남게 된 것이다.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에 따르면 2개 업종 이상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려면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앞서 머지플러스는 8월 말까지 선불전자지급업 등록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관련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고 있다.

수백억 원대 피해액 예상…환불 절차 여전히 미지수

머지포인트 피해액은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머지플러스가 등록업체가 아니어서 아직 정확한 피해규모도 집계되지 않고 있다. 회사 측은 현재까지 총 7차에 걸쳐 환불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환불 규모와 시기는 공지하지 않았다. 또 환불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도 없어 고객들이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머지포인트와 직계약을 체결한 영세자영업자도 대금 정산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맹점 축소가 덜 알려진 초반에는 영세 음식점을 위주로 머지포인트를 결제하는 사례도 왕왕 빚어져 피해 규모가 커졌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본사에 몰려가 항의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결제 대금을 제휴업체에 내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질 경우 영세 자영업자들에 대한 피해도 점점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환불 조치 및 영업 여건도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소비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 운영 실태 조사 이어 경찰 수사 요청

금융당국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집중하겠다며 머지포인트에 대한 경찰 수사를 요청했다. 금융감독원은 머지포인트의 서비스 축소·환불 지연 사태와 관련해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고 포인트·상품권 발행업체를 대상으로 운영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정은보 원장 주재로 머지포인트 사태 상황 점검 회의를 연 금감원은 고객 불편과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금감원은 “비록 (전금법) 감독 대상으로 등록되지 않은 업체에서 야기된 문제이긴 하나, 환불 및 영업 동향 등을 면밀히 점검하는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고객 피해 최소화를 유도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불업에 해당하는 영업을 하는 사례들을 파악해 점검하고 재발 방지 노력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말 기준 금융당국에 등록된 선불업자는 65개사로 발행 잔액이 2조4000억 원대다. 금감원은 이들에 대한 고객자금 외부신탁, 보증보험 가입 등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계획이다.

경찰 수사도 본격화됐다. 금감원은 최근 경찰에 머지플러스에 대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수사를 의뢰했다. 8월 말까지 선불전자지급업 등록을 완료하겠다고 한 머지플러스가 재무제표 등 관련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자금융업자 미등록 업체인 머지플러스는 금융당국의 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수 없다. 머지플러스는 전자금융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채 선불전자지급수단 영업을 한 혐의를 받는다. 미등록 영업을 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따라 경찰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은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내사에 들어갔다.

미등록 업체 관리 부실이 키운 ‘머지 사태’

그러나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관리 부실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금감원은 2018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머지플러스가 각종 소셜커머스를 통해 거래액 규모 1000억원대까지 몸집을 불려왔지만 정확한 서비스 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머지플러스는 선불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채 관련 영업을 3년간 지속해 온 것이다. 한 이용자는 “소셜커머스 업체에서 매일같이 광고를 볼 정도로 유명한 업체였는데도 아무 안전장치가 없어 소비자가 충전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왔다는 것이 황당하다”며 “당국의 관리 감독이 없을 경우 소비자나 가맹업체가 모두 이같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것인가”라며 당혹스러워했다. 금융권에서도 1000억원대 거래액을 기록중인 사업자라면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이 필요했다며 미등록업체라 들여다볼 수 없었다는 것은 금감원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머지포인트 판매한 이커머스 업계는 책임 없나

불똥은 이커머스 업계까지 튀고 있다. 11번가·G마켓·옥션·위메프·티몬 등 이커머스 업체들은 머지포인트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며 판매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판매 마케팅에 집중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소셜 커머스의 할인 마케팅이 아니었다면 머지포인트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라며 “적어도 현금성 상품권을 판매하는데 최소한의 검증은 해야지 등록도 안된 업체의 상품권을 1000억원이나 팔면서 수수료만 받았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울분을 토하는 등 판매처에 대한 비판 의견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이커머스 관련 기업들은 사실상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자사 플랫폼에서 구매한 상품권을 머지포인트 앱에 아직 등록하지 않았다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등록 이후에는 사실상 환불이 어렵다는 것이다. 머지포인트 앱과 정보공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환불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이커머스 업계의 해명이다.

금감원은 뒤늦게 유사사례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금감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미등록 전금업자들의 영업 활동을 발견할 경우 정식 등록 계획을 점검키로 했다. 그럼에도 해당 업체가 미등록 영업을 지속할 경우 바로 검찰과 경찰에 고발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법상 미등록 전금업자는 금융당국의 감독 대상이 아니어서 적발에 어려움이 존재했다. 금감원의 감독 대상은 정부의 인허가·등록·신고를 받은 금융회사로 미등록 전금업자는 검찰과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 머지포인트처럼 서비스 형태로는 전금업자지만 미등록업체일 경우 관리 감독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사각지대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뒤늦게 내놓았다.

한은 “전금법 개정안으로 소비자 보호 체계 수립해야”

전금법 개정안이 국회 . 또 고객별 1일 총 이용 한도(1000만원)를 제한하고 미등록 업체의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등을 매길 수 있게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은 지난 18일 개정안을 조속히 논의해 소비자 보호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급결제 관련 사항을 제외한 전금법 개정안을 논의함으로써 전자금융거래의 소비자 보호 체계를 시급히 확립해야 한다”며 “소비자 보호 관련 일부 조항은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정안 중 선불 충전금 보호를 위해 송금액 100%, 결제액의 50%를 외부 금융기관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하는 법안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결제액 100% 외부 예치를 의무화한 영국·독일·중국 등의 사례를 살펴보고 개정안에서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법이 온라인 플랫폼과 핀테크 등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감독 사각지대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한 금융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금융 서비스는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가 이들을 파악해 규제안을 내놓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며 “이 같은 점을 악용하는 업체도 생길 수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