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트’(NIMT:Not in my term)라는 단어가 있다. 기업이나 정부가 인력 구조조정, 폐기물처리장 건설 등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은 자기 임기 중에 하지 않으려는 현상이다.

님트는 역으로 생각하면 내 임기 중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면 뭐든지 선언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최근 경제 단체 관계자와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직접 ESG를 담당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솔직히 앞으로 20년, 30년 후 일이고 기업 임원들은 자기 임기 중에 이뤄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반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좋은 일 한다는데 괜히 반대해서 욕 먹을 필요 없이 ‘한다 그래’라고 답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SG, 탄소중립은 매우 어려운 과제지만 자기 임기 중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 쉽게 선택할 수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가겠다”고 밝혔다. 첫 탄소중립 선언이다. 이후 문 대통령은 P4G 녹색미래 정상회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탄소중립을 국제사회에 재확인했다.

탄소중립 선언에 환호해야 할 환경 단체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로 냉랭했다. 환경 단체 관계자는 “탄소중립 선언 자체는 매우 환영할 일인데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선언이 먼저 나와서 선언에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선언한 2050년 탄소중립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비중을 70%(3안 기준)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 70%를 달성하려면 국토의 3% 정도를 태양광, 풍력으로 채워야 한다. 서울 면적이 국토의 0.5%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의 6배 면적에 태양광 패널을 깔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뜻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원자력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는 만만치 않다. 현재 국내에는 24기의 원자로가 설치돼 있고 전체 발전량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전기로 대체하면 전력 수요는 2배로 늘어난다. 원전이 현재 발전 비중을 유지하려고 하면 48기가 돼야 한다. 재생에너지처럼 원전으로 70%를 체우려면 100기가 넘는 원자로를 설치해야 한다. 100기가 넘는 원자로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발전뿐만이 아니다. 건축물의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앞으로 지어질 모든 건물을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 받지 않는 제로 에너지 건물로 지어야 한다. 기존에 있는 건물도 100% 그린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산업 분야 역시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철강 산업은 철강업의 핵심인 고로를 현재 존재하지 않는 기술인 수소환원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석유화학 업계는 플라스틱의 주원료인 석유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해운, 항공업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전동 선박, 항공기로 각각 40%, 20% 전환해야 한다.

먼 미래의 일을 선언하기는 쉽지만 당장 행동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막상 현실이 되면 탄소 중립에 대해 누가 찬성하고 반대하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동안 문 대통령과 여당은 탄소감축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2050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 했는데 당장 행동으로 이어져야 할 2030년 탄소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토대로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올해 안에 실현 가능한 2030년 감축 목표를 공약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실현 가능한’이라는 어구가 포함된 점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기후위기대응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 법안에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겼다.

야당은 감축 목표가 너무 소극적이라며 반대했다. 임의자 국민의힘 의원은 “NDC 35%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목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지적했고 같은 당 김웅 의원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법안이 아니라 기후악당법”이라고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NDC 목표 50% 이상, 2050 탄소중립 의무화 명시 등을 요구하며 “제대로 된 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여당 보다 더 소극적이었다. 환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온실가스 배출이 역사상 가장 많았던 2018년 대비 30% 감축안이었다. 이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약 5억톤 남짓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제사회에 제출했다가 기후악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2017년 대비 24.4% 감축안’과 비슷한 수준이고,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50% 감축, 3억톤에 비해 2억톤이나 많다.

기후위기 대응이 먼훗날, 먼나라 이야기로 인식 될 때는 목소리를 높이기 쉽다.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탄소중립을 강하게 외치다가 당장 행동이 요구되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태도를 전환했다.

기업 차원의 ESG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ESG를 외치지만 돈 벌이가 될 것 같은 친환경 산업을 추진하는 데는 대규모 자본 투자가 이뤄지지만 탄소 감축 투자를 시작하는 곳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선언을 한다고 탄소가 줄어들진 않는다.

권순우 머니투데이 방송 기자

●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프로필

서강대 신문방송/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경제 기자로서 경제금융계를 10년간 취재하다 지금은 전자, 자동차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담당하고 있다. 유튜브 <발칙한경제>를 진행하고 있고 KBS1 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와 유튜브 <삼프로TV>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SG에 관심이 많고 저서로는 <수소전기차시대가 온다>, <발칙한경제>가 있다. ESG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경영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취재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