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 폐지 틈타 가격 덜 민감한 소비자 타깃

독일 전통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빌트’(Auto Bild)가 진행한 PHEV SUV 비교 평가에서 투싼 PHEV가 1위를 차지했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기차가 보편화되기 전 과도기에 어울리는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이 국내 시장에서 수입 브랜드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현실적 친환경차로도 꼽히는 PHEV 수입 브랜드 판매량이 올해부터 사라진 정부 구매 보조금 없이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PHEV는 내연기관차 엔진과 전기차 모터·배터리가 모두 탑재돼 있는 차량으로 충전이 가능하다. 처음 30~50㎞ 구간은 전기차처럼 주행하고 이후 엔진으로 달릴 수 있어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미흡한 현 시점에서 활용도가 높다. 이에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다른 해외 브랜드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의 PHEV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현대차, 국내 보조금 폐지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

유럽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장점을 동시에 지닌 PHEV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완성차업계와 소비자의 공감대가 높게 형성된 덕분이다. 특히 PHEV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이에 현대차 역시 준중형 SUV 투싼에 PHEV 모델을 추가해 친환경 SUV 라인업을 강화하는 중이다.

현재 유럽 PHEV SUV 시장에서는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이런 유럽에서 현대차의 존재감도 절대 밀리지 않고 있다. 독일 전통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빌트’(Auto Bild)가 진행한 PHEV SUV 비교 평가에서 투싼 PHEV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투싼 PHEV는 파워트레인, 주행 성능, 친환경성 등 다양한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탁월한 경쟁력을 증명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해외에서만 싼타페·니로·쏘렌토 등 주요 SUV 차량의 PHEV 모델 5만 3000여 대를 판매했다”며 “하지만 국내에서는 차 가격이 비싼데다 보조금 폐지 등의 이유로 PHEV 판매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국내 PHEV 환경부 보조금 500만 원이 지난해까지 지급되다 올해부터 폐지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PHEV는 여전히 인기가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수입 PHEV는 1만 2711대가 판매돼 전년 동기 대비 283.4%나 증가했다.

기본적으로 PHEV는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1000만 원 정도 더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PHEV 시장은 정부 보조금 폐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럽에서 PHEV에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보조금 정책이 전용 전기차와 수소 전기차 중심으로 편성되고 있다.

하지만 수입 브랜드가 판매하는 PHEV는 대부분 고가 모델로 가격에 비교적 민감하지 않은 소비자가 주 타깃이다. 특히 수입 브랜드들이 이런 국내 상황을 파악하고 월별 할인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등 가격 경쟁력을 꾸준히 키우고 있는 것도 주효했다. 이 외에도 국내 완성차업계가 올해를 전기차 원년으로 삼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전기차 커뮤니티의 한 관계자는 “여전히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고 충전 인프라도 미흡하기 때문에 충전과 주유를 병행할 수 있는 PHEV는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카드”라면서도 “다만 구매자 입장에서 비싼 가격대 친환경차 중 보조금 혜택이 없는 PHEV를 구매하는 것보다 보조금 혜택이 있는 아이오닉 5 등의 전기차를 구매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MW·벤츠·볼보 등 반사효과로 국내 시장 잠식

현대차그룹은 쏘나타·아이오닉·K5·니로의 PHEV 모델을 출시했다. 하지만 지금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PHEV는 니로뿐이다. 반면 수입 브랜드는 고가 모델 위주로 PHEV가 꾸준하게 판매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BMW 530e가 2700여 대 판매됐고 벤츠 E300 e4MATIC 모델이 1800여 대 판매됐다. 또 벤츠 GLC 300e 4MATIC, 볼보 XC60 T8 AWD도 상반기에만 1000여 대가 판매됐다.

수입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PHEV 환경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며 “실제로 지난해 이 기준을 통과한 수입 PHEV 모델은 도요타의 프리우스 프라임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입 브랜드 보조금 혜택은 이미 적용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보조금 폐지는 오히려 수입차업계가 반사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PHEV 모델은 전기차로 바로 넘어가기에 고민이 많은 구매자들에게 여전히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BMW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플러그인 PHEV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BMW코리아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PHEV에 이어 신형 순수 전기차를 잇따라 국내 시장에 내놓고 친환경차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BMW코리아는 총 5개 차종, 13개 트림의 PHEV를 판매하고 있다.

아울러 PHEV와 전기차 차주 간 충전 갈등도 심화되고 있어 정부 등 관련 기관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PHEV 차주들이 어댑터를 사용해 급속충전기를 완속충전기로 사용하는 등 충전소에서 오랫동안 주차를 하고 있어 전기차 차주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활한 급속충전기 이용을 위해 마련한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시행령’(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에 PHEV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은 없다. 다만 ‘PHEV는 완속충전기를 이용해 달라’는 정부 권고가 있었고 여전히 완속충전 변환 어댑터를 이용하는 PHEV 사용자의 장기주차로 전기차 사용자와 갈등을 빚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PHEV는 운전자 선택에 따라 전기 주행이 가능하지만 하이브리드 모드 등으로 변환하면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쓸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PHEV 충전 시 완속충전기 이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PHEV의 급속충전을 아예 금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로, 없던 규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심사를 엄격하게 타진해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